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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Dec 05. 2023

괜찮아! 울어도 돼

올해의 독서동아리 마지막 시간은 시집을 고른 후, 그중 한 편의 시를 선택해 패러디하여 시화로 만드는 수업을 진행하였다. 다양한 주제의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 총 열다섯 편의 패러디 시화가 탄생하였다.


   수업을 시작하면서 기쁜 소식이 한 가지 있다고 했더니, 아이들이 그게 뭐냐고 했다. "오늘이 독서동아리 마지막 수업이야. 1년 동안 수고 많았어." 했더니, "그건 슬픈 소식이잖아요."라고 대답해 주었다. 모두가 모든 시간에 열심히 참여했던 건 아니었지만, 나름 의미가 있었던 시간이었나 보다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찡해졌다.


   내내 주로 숙면만 취하던 아이도, 무얼 하든 열심히 참여하던 친구도, 매사 진지하던 친구도, 항상 엉뚱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던 아이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패러디 시화를 만들어 주었다. 마지막 수업이라고 이야기해서 그런지, 아니면 일찍 끝내고 제출하는 사람은 그 뒤에 자유시간을 주기로 해서인지 모르겠다.


   수업을 다 마치고 아이들이 그린 패러디 시화를 한 장씩 보는데, 유난히 마음이 먹먹해지는 작품들이 많았다. 특히, 닉네임 ‘괜찮아 울어도 돼’ 친구가 만든 시화가 내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켜 주었다. 패러디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힘듦

                  괜찮아 울어도 돼


처음부터 힘들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힘듦이 닥쳐왔다


괜찮아요. 울어도 돼요.

숨기지 말아 주세요.


원작: 나태주 시, <인생 1>


   아이가 만든 패러디 시화의 그림에는 커다랗고 무거워 보이는 짐 덩어리 두 개가 오른쪽 아랫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짐 덩어리 위에는 전체의 2/3가 까맣게 죽어버린 하트가 그려져 있는데, 아주 조금 남은 핑크색 하트 부분도 곧 꺼져버릴 듯 위태로워 보인다. 작가의 닉네임 옆에는 울고 있는 친구에게 어깨동무해 주며, "괜찮아, 울어도 돼!"라고 말해주는 또 다른 친구가 곁을 지키고 있다.


   3월부터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적응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노력을 나름대로 많이 했다. 신기하게도 극 F 성향인 내가 T가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업무를 진행할 때는 J 성향이 많아 얼핏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내가 F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다는 말에 쓴웃음이 났다.


   그건 겉으로는 모두가 친절하지만 깊은 마음을 나눌만한 관계는 맺을 수 없었다는 뜻이다. 애초에 서로 이야기를 나눌 물리적인 시간조차 거의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시스템이 체계적이지 않은 부분이나 정작 중요한 소통이 아쉬운 지점은 있었다.


   최소한 아이들과 행복하게 행사도 하고 수업도 할 수 있으니 그냥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괜찮다고 넘어가지 말고 그때마다 지친 마음을 살살 달래어 스스로 풀어주어야 했나 보다. 아이의 시를 보며 나도 모르게 눈이 시큰해졌다. 아이의 마음을 표현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마치 내게 해 주는 말 같기도 했다.


   꼬박 5년 전에 과호흡이 와서 힘들었던 적이 있다. 오늘 그때와 비슷하게 중간중간 숨이 잘 안 쉬어지는 증상이 다시 나타났다. 아까 하루 일과를 거의 마치고 한숨 돌리고 있는 와중에 갑작스럽게 목이 조이는 것처럼 쇄골 위와 목 사이가 답답해지는데 꽤 당황했다. 집에 가면 무조건 쉬어야지 생각하면서 돌아왔다.


   내가 와서 반가운지 우리 집 강아지가 빙글빙글 돌다가 단번에 내 품으로 뛰어 들어왔다. 봉봉이를 꼭 안아주었더니 나를 반겨주며 내게 뽀뽀 세례를 퍼붓는 거다. 너무 귀여워서 안고 토닥여 주는데, 목에서 계속 느껴지던 이물감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다행히도 목이 답답한 증상은 찾아왔을 때처럼 사라질 때도 갑자기 사라졌다.


   아직 방학까지는 한 달이 더 남았고, 여기저기서 떠넘겨진 업무와 체계 없는 예산 배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시스템 등으로 그사이에 해내야 할 일은 나름 일잘러인 내게도 버거울 정도로 많다. 제대로 된 자기 관리는 몸 관리, 생활 관리뿐만 아니라 마음 관리가 꼭 필요하니까. 가능한 한 틈틈이 짬을 내어 내 마음을 세심하게 돌보는 시간이 필요하겠다. 지치지 않고 한 해를 잘 마무리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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