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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Dec 07. 2023

1년을 기다렸다

전임지에서 마지막 인수인계를 하던 날, 새로 부임하신 선생님이 지난 학교에서 진행했던 ‘그림책 만들기’에 참여한 아이들의 작품을 마무리 편집하시는 것을 보았다. 나는 시도해 본 적 없는 프로그램이어서 호기심이 생겼다. 


   3월부터 출근하게 된 곳에서도 ‘그림책 만들기’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는 걸 첫 출근을 하자마자 알게 되었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고 성취감도 느꼈다며, 2학기에 공문이 오면 꼭 신청하라는 신신당부도 하셨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1학기가 쏜살같이 지나가고 여름방학도 눈 깜짝할 새에 끝났다. 2학기 시작과 동시에 머릿속에서는 ‘그림책 공문 신청 잊지 말자’가 맴돌았다.


   정신없이 2학기가 흘러가고 10월에 준비한 대회를 마쳤는데도 기다리는 공문은 오지 않았다. 생각보다 타이밍이 늦어지나 싶어 교육지원청에 전화해 보았더니, 예산 부족으로 올해는 해당 사업을 진행하지 않는다고 했다. 1년 내내 그 사업을 기다리던 내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나도 경험해 보고 싶던 프로그램이기에 아쉬움은 더 컸다. 


    어떻게든 이 프로그램을 진행해 보고 싶어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먼저, 교육청을 통해 작년에 사업을 진행했던 강사분의 성함과 연락처를 받았다. 다음은 강사비와 재료비, 책 제작비 등을 포함한 예산을 짜고, 현재 예산 잔액으로 시행 가능한지 확인했다. 다행히 딱 맞게 진행할 수 있는 금액이 있었다. 그제야 강사님께 메일과 문자를 통해 개별 학교에서도 프로그램 진행이 가능하신지 문의했다. 


   프로그램을 오픈하려고 했던 요일은 이미 일정이 있다고 하셔서, 여러 번의 조정과 조율을 통해 목요일 방과 후로 시간을 맞췄다. 다음으로 필요한 건 ‘그림책 만들기’ 프로그램에 참여할 학생들을 모집하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매주 수, 목은 전교생 대부분이 방과 후 강의를 수강하고 있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다양한 방법의 홍보와 관리자분의 적극적인 추천 덕분에 그림책을 만들 열 분 정도의 신인 작가님들을 모실 수 있었다.


   총 6주 동안 진행되는 프로그램인데 오늘까지 해서 4주 차까지의 그림책 만들기가 진행되었다. 그동안 아이들은 자신의 진로나 꿈과 관련하여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를 고민해 보았다. 그림책으로 만들 스토리를 정하고, 주요 캐릭터와 그림을 디자인했다. 어떤 순서로 구성할지 스토리보드 위에 글과 그림의 배치를 개략적으로 스케치하고, 그림책 작가로서의 필명도 정했다.


   스토리보드에 있는 그림을 두께감 있는 종이에 하나씩 정성 들여 옮겨 그리고 나서, 채색하는 것이 ‘그림책 만들기’의 메인 활동이자, 제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기도 하다. 고맙게도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은 집중력이 이렇게 좋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그림책을 만드는 작업에 몰입하고 있다. 길지도 않은 짧은 시간에 그림책 한 권이 완성되어 나온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다 싶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그림을 일일이 정성 들여서 봐주시고 조언해 주시는 강사님이 참 존경스럽기도 하다. 


   아직 우리에겐 2주의 시간이 남아있다. 한참 A형 독감과 코로나, 감기까지 재유행하는 시기라 출석이 들쑥날쑥한 아이들도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잘 참여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나도 아이들과 함께 똑같은 한 명의 그림책 작가가 되어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 시간이 있다는 것이 요즘같이 지치는 나날들에 위로가 되어준다. 마지막 주에 열 분의 작가님들과 함께 축하할 ‘그림책 출판기념회’가 어느 때보다도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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