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arl K Dec 31. 2023

마지막은 새로운 시작

앞으로 대략 세 시간 후면 2024년 새 해의 첫날이 된다. 내가 일곱 살 때부터 이웃 아주머니의 전도로 다시 교회에 나가게 된 엄마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날이 되면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기 전에 미리 우리 집만의 고유한 연말파티를 준비했다.


   평소에는 잘 사용하지도 않는 커다란 교자상 위에 엄마가 잔뜩 솜씨를 부린 맛있는 음식들이 놓이고, 아빠가 사 온 치킨과 케이크가 마지막을 화룡점정으로 장식했다. 엄마를 따라 우리가 모두 교회에 다니던 때에도 아빠는 여전히 교대근무를 핑계로, 신보다는 내 주먹을 더 믿겠다는 말들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었다.


   아마도 엄마의 연말파티는 우리가 모두 송구영신예배에 가면 혼자 쓸쓸히 마지막 날을 맞이할 아빠를 배려해서 준비했던 게 아니었을까 하고 지금에서야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보게 된다. 덕분에 우리 가족의 12월 31일은 언제나 가족회의를 겸한 파티 같은 느낌으로 지내게 되었다.


   물론 그 가족회의는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발언권이 있다기보다는 아빠의 잔소리와 우리들에 대한 훈계의 시간이거나, 혹은 하나님께 기도로 우리를 맡긴다며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은 은근히 다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가장 괴로웠던 건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두고 냄새를 맡으면서도 엄마의 식사기도가 좀처럼 끝날 줄을 몰랐다는 것이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시간을 재어가며 길고 긴 엄마의 기도가 언제쯤 끝날는지 눈치싸움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12월 31일의 가족 파티는 참 좋았던 기억으로 나에게 남아있어서, 남편을 만나 새로운 가정을 이룬 후에도 한 해의 마지막 날은 가족파티 느낌으로 함께 보내고 있다. 우리 둘에 봉봉이까지 단출하게 세 명뿐인 멤버지만 변함없이 오늘도 케이크와 간단한 주전부리를 준비해서 2023년의 마지막 밤을 나는 중이다.


   또 올해는 섬기는 교회의 송구영신 예배 시간이 유난히 빠르게 시작되어서 8시부터 9시 40여분까지 송구영신예배가 진행되었다. 이맘때쯤 되면 드는 생각은 언제나 마지막은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2023년의 마지막 해는 졌지만, 곧 2024년을 밝히는 새로운 해가 새 시작의 의미를 담아 떠오를 것이다.


   올 한 해 수고하고 애썼던 모든 시간을 뿌듯함으로 남기고, 2024년에 회복시키시고 감사하며 허락하실 은혜를 간절히 구해야겠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이 마지막에 내뱉었던 대사처럼 "내일은 언제나 내일의 태양이 뜰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300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