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인간이란 자신의 삶이더라도 도무지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인간들 중 삶의 모든 순간이 마냥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사람은 누구도 없을 거다.
인간의 삶에는 예상치 못한 즐거움도 있지만, 그보단 예상 못하게 닥쳐오는 어려움과 고통의 시간이 많은 것 같다. 아마도 인간의 뇌가 다시는 그런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 행복했던 기억보다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부분을 더 길게 새겨놓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과거애 비해 현대의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의 체감 정도는 예전보다 좀 더 복잡하고 개인화되며 내밀해졌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문제가 다른 이에게는 생사를 오가는 통증이 되기도 한다. 죽도록 힘든 상황을 버티고 끈질기게 살아내기도 하고, 허망하게 아까운 생명을 잃기도 한다.
'이재, 곧 죽습니다'의 주인공 최이재(서인국)는 어려운 집안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노력하여 온 젊은 청년이다. 취업을 준비하며 최선을 다했으나 기대했던 직장에서 모두 탈락한다. 자신의 상황이 답답해지자 이상한 열등감이 고개를 들어, 아껴주고 기다려주던 여자친구마저 떠나보낸다.
그는 쉴 새 없이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를 받지 않는 채, 앞날이 보이지 않는 스스로의 인생을 비관하며 죽음을 선택한다. 그렇게 생명을 다하면서 이재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들은 '죽음'(박소담)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린다.
'죽음'은 최이재에게 무시무시한 징벌을 내리기로 한다. 그의 죄목은 첫째, 죽음이 찾아가기 전 건방지게 먼저 생명을 끝낸 것과 둘째, '죽음'을 한낱 도구로 여긴 것이다. 지옥의 풍경으로 이재를 잔뜩 공포에 질리게 한 죽음은 그를 용서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재가 받아야 할 징벌의 내용에는 열두 개의 총알이 사용된다. 총알을 하나씩 맞을 때마다 각각의 다른 인생에 들어가, 다시 죽음의 시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친절하게도 그녀는 숫자가 커지는 만큼 갈수록 죽음이 점점 더 고통스러워질 거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열두 개의 총알, 열두 가지 인생, 열두 번의 죽음이 모두 끝나고 나면 최종 심판만이 남는다. 이재는 지옥으로 떨어지거나 긍휼히 여긴 신의 은총을 받게 될 수도 있지만 그 모든 건 죽음을 우습게 여긴 이재의 태도가 변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 작품운 가장 평범한 삶을 바랐던 한 취준생이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는 선택을 하고 죽은 후, 타인의 생과 죽음을 다시 겪으며 오히려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새롭게 배워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재는 마지막 열두 번째의 인생을 통해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가장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으며 알아가게 된다.
작품 속에서 던져주는 메시지는 묵직하고 근엄했다. 인생을 지나치게 연민하지도, 신성시하지도 않았고, 죽음을 대단한 해결책이나 잔인한 독재자로 묘사하지도 않았다. 그저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현재를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담담하게 보여주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 슬픔의 날을 견디면 / 기쁨의 날이 찾아오리니 / 마음은 미래에 살고 / 현재는 늘 괴로운 법 / 모든 것은 순간이며 지나가는 것이니 / 지나간 것은 훗날 다시 그리워지리니"_푸시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