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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넘어야 했던 그 모든 경계 앞에서

by Pearl K

참혹하지만 꼭 되새겨 보아야 하는 역사가 있다. 말도 안 되는 명분을 앞세워 조선을 침략하였던 일제강점기. 조선의 철도부설권, 금광 채굴권 등의 난개발로 논과 밭을, 각종 문화재를 도적질 하더니 결국 말과 글을 빼앗고 문화와 얼을 짓밟기 시작한 일제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힘없는 조선 사람들을 무작위로 납치하여 마루타로 삼고 일명 731부대라 불리던 곳에서 각종 잔인한 실험을 자행했고, 수없는 사람들이 그들의 악랄한 ‘인체실험’ 때문에 애꿎은 목숨을 잃어갔다. 일제는 아시아의 나치나 다름없었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했다.


위와 같은 배경 속에서 전개되는 드라마 '경성 크리처'가 지난 12월 말에 1~7부가 공개되었고, 1월 5일 금요일에 8~10부가 공개되며 시즌1이 마무리되었다. 박서준, 한소희 주연의 이 드라마를 며칠 전 N사 OTT로 완주하였다.


광복으로부터 10개월 전부터 패배의 기운이 짙게 드리우자 일본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려고 생체실험을 중단하고 자료를 모두 파기하였다. 또 그 어떤 증거도 남기지 않으려는 과정에서 마루타로 끌려갔던 조선인들을 화학약품과 총, 칼로 무차별로 학살하였다.


일부의 친일파들은 일제에 동조하며 조선인들을 더욱 괴롭히기도 했으나, 많은 이들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걸고 싸웠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동지들을 팔아 변절한 사람도 있었고, 계속되는 일제의 탄압 속에 오히려 독립운동가로 나서게 된 이들도 있었다.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서 경성 최고의 전당포인 금옥당의 장태상(박서준)은 경무국장인 이시카와(김도현)의 애첩인 기생 명자, 일본이름 아키코를 찾아달라는 반강제 의뢰를 맡게 된다. 사실 장태상은 자기 한 목숨 살아내기에만 집중하던 전당포의 대주였다.


이시카와 경무국장은 장태상에게 명자를 찾아내지 않으면 그가 가진 전 재산을 빼앗겠다는 협박을 한다. 기한은 사쿠라가 지기 전까지. 이제 막 하얀 꽃망울이 피어나기 시작했고, 일단 피기 시작하면 곧 지고 마는 벚꽃의 특성상 아키코를 찾아낼 기한은 너무도 촉박하다. 그러다 사라진 사람을 잘 찾아낸다는 만주에서 온 토두꾼 부녀(조한철, 한소희)와 엮이게 되며 그들에게 일을 의뢰하게 된다.


조사를 통해 명자, 아키코가 군 병원인 옹성 병원에 있다는 걸 알게 된 그들은, 이시카와의 애첩을 구하러 이유 없이 경비가 삼엄한 옹성 병원에 잠입하게 된다. 알고 보니 옹성 병원은 평범한 병원이 아니라 일본군 731부대의 실험실이었고, 셀 수 없는 조선인들이 그곳에서 억울하게 희생되고 있었다.


특히 ‘나진’이라 불리는 기생충을 인간의 몸에 주입하여 괴생물을 만들어내는데, 인간이라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선까지 이미 진작 넘어 버렸던 일제의 잔악성을 새삼 느낄 수 있게 한 작품이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토할 만큼 역겨운 그들의 악랄함에 치가 떨리고 화가 났다.


김해숙, 박지환, 수현, 위하준, 옥자연, 현봉식, 최영준, 김도현 등 걸출한 배우들의 살아있는 연기와 철저한 고증을 통해 구현된 1930년대 경성의 풍경, 실제 인물들을 기반으로 한 캐릭터 구축 등이 작품에 더욱 생생한 몰입감을 안겨주었다.


무엇보다 작품 속에서 배경으로 표현된 시대적 상황은 동일하지만, 각기 다른 모습으로 그 시대를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 막연히 흑백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어떤 가치를 우선에 두어야 하는 것이 맞는지 생각하게 하는 지점들이 많았던 것 같다.


올해 안에 다시 ‘경성크리처’ 시즌2가 나온다고 하는데, 시즌1에서 관심을 끌었던 작품들 대부분이 시즌2에서 어마어마한 혹평을 듣고 있는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좀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짜 볼만한 작품으로 완결을 맺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시즌 1의 마지막에 온갖 떡밥들을 많이 뿌려놔서 과연 어떻게 회수를 할지 모르겠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경성 크리처를 통해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의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메시지가 잘 드러나길 바란다.


이 작품이 완전히 끝나는 지점에서 나는, 우리는, 당신은 작품 속에서 뛰어넘어야 했던 그 모든 경계 앞에서 그것들을 얼마만큼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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