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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 모두 우리의 이야기

by Pearl K

아주 작은 시골마을, 한 아버지가 평생을 일구어 온 작고 특별한 책방이 있다. 이야기는 이곳에서부터 시작한다. 아빠, 엄마, 아들로 단란했던 가족은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단둘만 남게 된다.


여섯 살, 초등학교 1학년 핼러윈 코스튬을 입은 아이들은 교단 앞으로 나와 각자 무엇을 표현했는지 발표한다. 샤워 가운을 입고 파마용 구루프를 말아 올린 아이는 "누구를 표현한 거야?" 하는 질문에 "우리 엄마요!"하고 대답한다. 돌아가신 엄마의 모습을 핼러윈 코스튬으로 재현한 앨빈과, 아이들은 잘 보지 않는 영화 '멋진 인생'에 나온 천사 코스튬을 한 토마스는 그렇게 서로의 친구가 된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작은 책방을 일찍이 물려받은 앨빈은 고향에 남았다. 친구 토마스는 앨빈이 생일날 선물해 주었던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에 나온 서문을 계기로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결심한 대로 대학교 지원을 시작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쓰며 4권의 책을 내고, 여러 상도 수상하는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작년 크리스마스이브 앨빈의 아버지가 긴 병환 끝에 세상을 떠나고, 토마스가 추도사를 맡기로 했었다.


그때로부터 1년이 지났다. 여러 가지 이유들로 바쁜 도중에 지난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앨빈이 호숫가 다리 위에서 뛰어내렸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 토마스. 예전부터 둘이 약속했던 대로 앨빈의 장례식에 직접 쓴 추모사를 하기 위해 고향에 도착한다. 하지만 글이 도무지 한 줄 이상 나가지 못하는데, 고민하는 토마스 앞에 어린 시절과 언제나 똑같았던 앨빈이 등장해서 둘만의 추억들을 담은 이야기들을 읊어준다.


사실 아주 예전에 이 공연이 올라온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좋아하던 배우가 출연해서 보고 싶었는데 그때는 여러 가지 여건이 안 되어서 미처 보지 못했었다. 마음 한편에 언제나 아쉬움으로 간직하고 있었는데, 한 달 전에 공연이 다시 올라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좋아하는 배우가 참여한다고 해서 냉큼 예매해 두었다가 드디어 볼 수 있었다.


몇 년 간 나름대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직접 쓰는 사람으로 살다 보니, 토마스의 고민이 꽤 생생하게 다가왔다. 게다가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으니 앨빈의 상황이나 마음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겨울에 꼭 보아야 하는 따뜻한 공연이라는 소개는 보았는데, 그래도 공연이 진행된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게 될 줄은 몰랐다.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일명 스옵마는 친구의 죽음 앞에서 다시 예전의 기억들을 돌아보는 토마스를 통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릴 때는 매일 만나는 친한 친구였지만, 어른이 되고 서로의 삶이 달라지면서 앨빈에 대해 과거의 친구일 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던 토마스였다.


앨빈의 부고를 받고 토마스는 두 사람이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 계속 고민하지만 아무리 예전의 이야기를 뒤져봐도 원하는 답을 찾지 못한다. 그렇게 지난한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삶에 정말 중요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깨달아 가는 토마스의 여정에 나도 모르게 속으로부터 눈물이 차올랐고 여러 번 울컥하게 되었다.


나도 토마스처럼 그랬던 것 같다. 나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삶이, 썼던 글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가 최근에 몇 차례 있었다. 그래서인지 공연을 보는 내내 마음 깊이 다정한 울림이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공연이 끝나기 전에 다시 한번 보러 가고 싶다. 따뜻하고 엉뚱했던 앨빈과 무뚝뚝해 보이지만 다정한 토마스를 만나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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