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쓰는 찰나라는 말의 어원은 산스크리트의 '크샤나' 즉, 순간을 의미하는 말에서 왔다고 한다. 관련 문헌의 기록에 따르면 1 찰나는 75분의 1초. 약 0.013초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불교에서는 1 찰나마다 생겼다 멸하고, 멸하고 생기면서 모든 것들이 계속되어 나간다고 가르치기도 했단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짧은 이 찰나의 순간에 벌어질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고 어마어마한 것 같다는 생각을 지난 이틀 동안 거짓말 조금 보태서 수십 번은 했던 것 같다. 이번에 옮긴 직장은 사는 곳에서 차로 30여 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실제 거리로만 따지면 15분 이내에 도착할 수 있을 만큼 멀지 않지만, 가는 길이 꽤나 막히는 편이다.
살고 있는 도시의 중심부를 가로질러 갈 수 있는 큰 도로이기도 하고, 중간에 고속도로 인터체인지로 빠지는 곁길이 있다 보니 어느 시간이고 차들로 가득 차 있다. 거기에 대형 트럭이나 레미콘 등 공사용 차량들도 많이 다니곤 한다. 첫 출근을 앞두고 도로 위 운전이 긴장되어 예정시간보다 조금 더 일찍 잠을 청했다. 피곤한 상태에서 운전을 하면 아무래도 위험할 것 같고, 월요일이다 보니 평소보다 더 막힐 것 같다는 예상을 해서였다.
예정 출발시간을 5분 앞당겨 출근하는데, IC로 빠지는 차량들 때문에 안쪽 차선으로 들어가야 했다. 깜빡이를 켜고 왼쪽의 2차선으로 무사히 진입했는데, 차량들이 많아 IC에서 들어오는 차와 나가는 차량이 뒤섞여 대혼란이 벌어졌다. 간발의 차이로 차선을 변경했기에 망정이지 타이밍을 놓쳤다면 혼돈 속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뻔했다.
도로의 특성상 달리는 내내 좌우측 모두 곁길이 생겼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기에, 내가 갈 목적지까지 쭉 갈 수 있는 차선을 잘 선택하는 것에도 지혜가 필요함을 새삼 느꼈다. 차선을 잘못 택하거나 갑작스러운 공사로 막힌 차선이 되는 날에는 그야말로 멘털붕괴의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유롭고 너그러운 마음이다. 하지만 혹시 준비가 늦어지면 그만큼 마음도 조급해질 성격이라는 걸 스스로 너무 잘 알기에 다음에도 미리미리 준비하고 출발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오늘은 학생들의 진급처리 작업을 하던 중에 전체 명단이 필요한 일이 있었다. 사실 다른 분들은 어제 미리 다 받았는데, 나만 업무용 메신저가 안 되어 오늘에서야 따로 요청을 해야 했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오는데 한 학년이 처리가 안 되면, 다음 학년을 처리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으니 더욱 동동거리게 되었다. 마음은 급한데 모두들 바쁜 시기라 답이 늦어지니까 괜스레 초조해졌다.
그러던 중에 작년 부장님이 파일을 보내주신다고 해서 '살았다' 하는 마음으로 파일을 받자마자 작업을 진행했다. 깔끔하게 끝난 작업에 나름 뿌듯함을 느낀 것도 잠시, 곧 더 커다란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어제부터 여러 번 찾아와 말을 걸던 최고참 학년의 아이들에게 학번과 반이 맞는지 질문했는데, 내가 받은 명단과는 전혀 다르다는 걸 확인했다. 다시 파일을 확인해 보니 아뿔싸, 받았던 명단은 2월 중순에 정리된 거였다.
최종본은 어제 날자로 보내주신 명단인데 두 가지를 이름 순으로 정렬해서 비교해 보니 1명 빼고 모든 아이들의 반과 번호가 달라져 있었다. 뒤늦게 작업을 되돌릴 방법을 고민하고 문의도 해봤지만 새로운 시스템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등록 버튼을 누르기 전,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명단을 한 번 더 확인했으면 이렇게 손발이 고생할 일은 없었을 텐데. 안 그래도 바쁜 시기에 내가 내 발등을 아주 세게 찧어버리고 말았다.
일단 한 반이라도 미리 재작업을 해 두고 났더니 이미 퇴근 시간이 훌쩍 넘어 있었다. 나머지 반들은 내일 작업하기로 하고 귀가하는 길, 집에 거의 도착해서 단지 안으로 들어왔는데 차량의 진행방향 바로 앞을 지나가는 아저씨가 있었다. 천천히 가고 있었지만 더욱 브레이크를 밟으며 속도를 줄였다가 다시 출발하는데, 그 순간 길 양옆에 주차된 차량들 사이에 가려 보이지 않던 체육복 입은 학생 한 명이 지근거리에서 그야말로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 기겁해서 브레이크를 꽉 밟았는데 차 안의 모든 물건들과 내 몸까지 앞으로 훅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 그 찰나의 순간 나는 최악을 상상했다. 너무도 다행스럽게도 그 상상은 단 0.1%도 실현되지 않았다. 온몸에 힘이 들어갔는지 팔과 어깨부터 허리까지 온통 근육통이 느껴졌다. 자기도 갑자기 튀어나왔다는 걸 인지했는지 고개를 꾸벅하며 사과하고 지나간 학생 덕에 조금은 긴장이 풀렸다. 간발의 차이로 학생은 무사히 길을 지나갔고 나 역시 무사히 집까지 올 수 있었다. 비록 손이 떨리고 다리도 후들거리긴 했지만 말이다.
한 끝 차이로, 그 찰나의 순간에 교통지옥에서 빠져나왔고, 도로 위의 줄타기를 했고, 성급하게 서두른 대가를 치러야 하고, 타인의 삶과 나의 삶 모두에 지울 수 없는 고통을 안길 뻔했다. 무사히 집에서 쉼을 누릴 수 있는 지금, 지난 이틀간의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들이 가까우면서도 엄청 오랜 기억처럼 아득하다.
우리가 인지하듯 그렇지 못하든, 인간의 삶이란 이런 찰나의 순간들을 하루에도 수십 혹은 수백 번 마주치며 살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한 순간에 지속될 수도 혹은 끝날 수도 있는 것이 삶이라면 지금보다 조금 더 너그럽게, 한 번 더 감사하며 그렇게 사는 것이 좋겠다. 나의 생이 언제 끝나더라도 후회나 미련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는 매 순간 더 잘 살아갈 의무가 있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