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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Feb 11. 2024

사람은 무엇으로 소통하는가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많은 사람을 만나며 살아가게 된다. 낳아준 부모를 만나고, 동네 친구를 만나고, 학교에서 선생님과 또래 학급 친구들을 만난다.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기도 하지만, 내게 고통을 주는 이들을 만나기도 한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혼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지금껏 살아온 내 인생이 그리 길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의 평균수명으로 계산해 보면 이제 반환점은 넘은 나이가 된 거 같기도 하다. 필요한 혹은 불필요한 수많은 만남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나 자신, 불특정한 타인,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 끊임없이 ‘소통’을 갈구한다. 원활한 소통은 삶을 평온하게 만들지만, 반대로 소통하고 싶어도 통로가 일방적으로 막힌 경우는 삶이 무척이나 괴로워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우리가 사용하는 소통의 도구는 매우 다양하다. 각자가 사용하는 소통의 도구가 다르면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다. 어린 아기는 울음소리로, 자랄수록 각각의 모국어로,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는 눈빛과 몸짓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기도 한다. 갓 부모가 된 이들이 아기의 울음소리를 이해하는 순간 새로운 육아의 세계가 펼쳐진다. 


   아이가 자라 말을 배우면 또 다른 세계가 시작된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연인들은 상대의 언어를 배우면 사랑이 더 깊어질 기회를 얻는다. 너무도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할 때, 혹은 끊임없는 노력으로 상대의 언어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을 때 우리는 소통이 잘 된다고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 속에서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본능적으로 나와 잘 맞는 사람들을 알아보는 눈이 생긴 것 같다. 신기하게도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법으로 만나든, 대화를 오래 나누어 보지 않아도 “아! 이 사람과는 잘 통하겠구나”하는 확신이 드는 사람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예감은 대부분 딱 맞아떨어졌다.


   반대로 결이 너무 다르거나, 가치관이 달라 “이 사람과는 너무 가까워지면 안 되겠다.” 싶은 사람도 있다. 인간이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물론 100%라고 확언할 수는 없다. 가끔 첫인상은 친해지기 어렵겠다 생각했지만, 실제로 관계를 맺어보면 너무 좋은 분이신 경우도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세상은 넓고 나는 아직 미숙하구나’하고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현대에서는 더더욱 소통은 면대면에서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게 되었다. 나 역시 어릴 때는 완벽한 오프라인의 세상에서 살다가 고등학교 때부터 펼쳐진 다양한 온라인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다. 사람을 좋아하고 수다를 즐겨하다 보니 과거부터 현재까지 각종 SNS는 모두 경험해 보았다. 다수의 네트워킹 서비스를 경험하면서 단지 글 몇 자로 사람을 알아가고 친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지만 신기하고 새로웠다. 


   최근에는 인스타와 연계된 새로운 플랫폼, Thread(스레드)에서 올라오는 글을 읽는 재미에 한창 빠져 있다. 별로 길지도 않은 500 자라는 분량에 기본 반말모드로 쓰인 짧은 글로 이렇게나 위로를 받는 나 자신이 신기할 정도다. 스레드에 글을 올리는 얼굴도 이름도 사는 곳도 나이도 심지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이들. 조곤조곤 자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스레드의 글들을 보고 있노라면, 특별히 말을 더 보태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공감되는 지점들을 만난다. 


   이어폰을 끼고 들으면 녹아내리게 만드는 가수들의 목소리에 고막 남친, 고막 여친이라는 말을 붙인다. 스레드는 일종의 ‘고막 스토리텔러’라고 해야 하나. 이전의 온라인 모임과는 무언가 다르다. 친구와 편안하게 속삭이며 수다를 떨 듯 이야기를 들려주고, 댓글로 서로를 위로하고 다독이고 보듬어 준다. 사용하는 말투 자체가 친근해서 마치 친구가 옆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듯 몰입하여 빠져들게 된다. 짧게 짧게 적힌 글들을 쭉 따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인간사의 농축된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란 생각도 든다.


   애초에 타인인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인간의 오만은 아닐까. 인간이란 어쩌면 자기 자신만을 이해하기에도 평생이 걸리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소통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단지 우리는 공감으로 소통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나의 경험과 너의 경험은 다르지만, 각자가 경험한 비슷한 감정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것으로 말이다. 


   K콘텐츠가 전 세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게 된 가장 큰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작품에 훌륭한 감독, 뛰어난 배우의 연기 덕분이기도 하지만, 언어가 다르고 상황이나 환경이 다른 것을 뛰어넘는 공감의 지점을 잘 건드린 게 아닐까 하는 거다. 그렇게 보면 결국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소통의 도구는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인 공감을 만드는 능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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