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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Apr 22. 2024

예상치 못한 방문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 늦은 오후, 책을 정리하다가 손에 잔뜩 묻은 먼지를 씻으려 모둠학습실 안에 마련된 개수대로 향했다. 습관적으로 핸드 클리너를 손바닥에 펌핑한 후, 골고루 비벼주면서 물을 틀어 손을 깨끗이 씻는데 하수구 쪽에서 무언가 다리가 많은 벌레가 꿈틀거리며 기어 나오고 있었다.


  “으아아아악!!!!” 자세히 볼틈도 없이 나도 모르게 입에서 비명이 새어 나왔다.


   길이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에 10개가 넘는 다리가 달려있는 새카만 벌레는 내 눈에는 마치 지네처럼 보였다. 다른 방법이 없어 수도 호스를 활용하여 자꾸만 기어 나오려는 벌레의 이동을 저지하고 다시 하수구로 밀어 넣으면서도 비명을 그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가장 극혐 하는 두 가지가 다리가 너무 많은 벌레와 날아다니는 벌레다. -몇 년 전 말벌이 집에 들어온 사건을 글로 적어둔 적이 있는데, 내가 쓴 글임에도 읽다가 소름이 돋아 몇 번을 몸서리쳤던 기억이 있다. - 분명 머리로는 지네가 아니란 걸 아는데도 소름 돋아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하기 힘들었다.


   비명 소리를 듣고 같이 책을 정리하던 도서부 아이들이 뛰어왔다. “선생님, 무슨 일이에요?”, “저.. 저기 지네가 있어.” 내 말을 듣고 남학생 한 명이 개수대로 가서 상황을 살폈다. 아이는 “아~ 이거 돈벌레예요. 나쁜 벌레는 아니에요.” 했다.


   돈벌레란 절지동물 그리마목 그리마과에 속하는 벌레로 부자들만 사용하는 따뜻한 보일러 옆에 주로 서식하고 있어 예전부터 익충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아무리 익충이라고 해도 징그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개수대 아래 온수를 보관하는 통이 있는데 거기에 들어와 있었나 보다.


   남학생에게 좀 잡아달라고 부탁했더니 벌레를 볼 수는 있는데 잡을 수는 없다고 했다. 천만다행으로 옆에 있던 1학년 여학생이 휴지가 많으면 잡을 수 있다고 믿음직하게 말했다. 덕분에 겨우 해결할 수 있었고 더 이상 식은땀을 흘리지 않아도 되었다.


   찰나와 같은 짧은 순간이었지만 지옥에 다녀온 것만 같았다. 실제와는 관계없이 내게는 수십 분이 흐른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한창 바쁜 시즌이라 주말을 앞두고 피곤이 몰려들어 지쳐있던 상태였다. 이 사건으로 쏟아지던 잠은 어딘가로 다 달아나버리고 무거워지던 눈꺼풀은 번쩍 떠졌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충격이 컸던 건지 이틀 내리 꿈속에 발이 수십 개씩 달린 벌레가 등장해 온몸의 세포가 따끔따끔해질 정도로 곤두서기도 했다. 하루는 생각보다 길고 인생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법인 것 같다. 부탁인데 이런 방문은 다신 받고 싶지 않다. 그리마야 이제 오지 마.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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