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간절히 기다려본 적이 있는가' 하는 질문을 수업 중에 아이들에게 던졌다. 역시나 가장 먼저 나온 건 택배였다. 뒤이어 배민이요, 쿠팡이츠요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때 한 아이가 손을 들고 말했다.
"저 진짜 간절히 기다렸던 적이 있어요."
"뭘 기다렸는데?"
아이의 입에서 나올 말이 무엇 일지에 대한 실마리는 없었다. 엄마일까? 여자친구인가? 뻔한 답들만 머릿속에 맴돌던 순간, 아이는 이렇게 입을 떼기 시작했다
"제가 초등학교 때 일인데요. 저는 날마다 집에 오시는 요구르트 아줌마를 진짜 열심히 기다렸어요. 왜냐하면 요구르트를 엄청 좋아했거든요. 어느 날은 요구르트 아줌마가 안 오신다고 해가지고 도대체 왜 안 오시냐고 엄마를 붙잡고 운 적도 있었어요."
"요구르트 아줌마를 몹시 사랑했구나."
내 말에 아이는 배시시 웃더니 "아마, 그런가 봐요" 하고 대답했다. 미소 짓는 아이의 얼굴 속에서 요구르트 아줌마를 기다리던 시간의 설렘이 읽히는 듯했다. " 참 좋은 추억이겠네. 또 다른 걸 기다렸던 친구 있을까?" 아이들은 앞다투어 손을 들며 "저요!", "저요!" 하고 외쳤다.
시끄러운 아이들 틈에서 조용히 혼자 손을 들고 묵묵히 기다리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의 추억이 궁금해 물어보았더니, 예상과는 다른 답변을 내놓았다.
"저는 어른이 되는 걸 기다리고 있어요."
"어른이 되면 뭘 하고 싶은데?"
"그냥 어른이 되면 내 생각대로 살 수 있을 거 같아서요."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어도 되는 일인데 괜스레 한마디를 보태고 말았다. "어른이 된다고 모두가 자기 생각대로 살 수 있는 건 아니지, 학생 때와는 또 다른 지켜야 할 것들이 생기거든." 그렇게 말하고는 머쓱해져서 "어른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도 좋지." 했다. 웅성웅성 아이들의 말소리를 들으며 내가 무언가를 간절히 기다려 본 적은 언제인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인간의 삶과 기다림이라는 것은 도무지 떼어놓을 수 없는 동반자 같은 관계가 아닌가 싶다. 무언가를 이루기에 삶의 시간은 짧고, 인간의 능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성급하게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 하지만, 그 어떤 성취도 기다림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실체가 없는 기다림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더구나 간절함의 크기에 비례하여 기다림은 더욱 길고 어렵고 힘들게 느껴진다. 그러나 기다림의 고통이 클수록 마침내 기다리던 것을 만났을 때의 짜릿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몇 년간 막연한 기다림에 지쳐 기다리라는 말만 들어도 자꾸 분노가 올라왔는데, 아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기다림의 즐거움에 관해 조금이나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렇듯 아이들에게서도 매일매일 내가 몰랐던 것들을 배운다. 어마어마하게 어렵겠지만 언젠가 찾아올 그 찬란한 기쁨의 시간을 위해 지금의 기다림도 즐길 수 있기를.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