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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계절이 또 이렇게 흘러간다

by Pearl K

유난히 길었던 여름도, 장마로 제대로 물들지 못했던 단풍도 뒤늦게 알록달록 자신이 가진 고유한 색을 뽐내고 있는 가을이다. 운전하며 지나치는 가로수마다 빨갛게 혹은 노랗게 단풍이 들었는데 그 단풍들마저 하나씩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을 보니 가을은 미처 느낄 틈도 없이 지나가 버려 짧게만 느껴진다.


최근 며칠간 몸의 통증이 유난히 심해졌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갈수록 통증의 농도가 진해져 갔고 부위도 다양하게 복합적인 통증이 나타나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조차 너무도 고통스러운 수준이었다. 근근이 진통제로 버티며 조금만 참으면 좋아지겠지 하다가 미련하게도 더 이상 고통을 참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급히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 들은 주요 원인은 내 몸이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점심시간에 동료 직원으로부터 흰머리가 여러 개 보이는데 뽑아도 되냐는 질문을 받고 충격을 받은 참이었다. 5년 가까이 난소를 무리시켰던 탓일까. 그동안에도 조기 폐경에 대한 경고는 계속 들어왔는데,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현재는 폐경이행기로 배출이 잘 안 되면서 에스트로겐이 과다 분비되어 난포와 낭종이 더욱 커진 상태라 골반통과 복통, 가슴 통증을 느낀다는 거였다. 의사의 말로는 그런 상태로 내원하는 갱년기의 환자가 더러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고 했다. 호르몬 주사를 맞고 2주 정도 가라앉기를 기다려 보는 것뿐. 버티기 힘든 통증은 진통제와 진경제 등 통증을 줄여주는 약을 5시간마다 3알씩 처방해 주었다. 그렇게 호르몬 주사를 맞고, 집에 가서 알약도 먹고 누웠지만 통증은 쉬이 잦아들지 않았다. 끙끙거리며 꼬박 앓고 나서야 겨우 잠에 들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불덩이가 떨어진 듯 아팠던 곳들이 이제야 진통제가 드는지 좀 참을만해진 것 같다.


인생에도 여름이 계속될 줄 알았는데, 어느새 청춘의 시절은 지나가고 몸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시기인가 보다. 잊고 살았던 내 나이가 새삼 자각되는 경험을 하며, 오랫동안 소망해 왔던 것도 이제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해졌고, 마지막까지 갖고 있던 작은 미련도 내려놓아야 하는 타이밍이다. 10대 때는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실패했을 때 내 인생이 끝난 것 같았고, 20대 때는 제때 취업을 하지 못했을 때 그러했다. 30대는 결혼이 늦어질 때였고 결혼을 하고 나니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이 내 존재 가치를 없애버리는 일 같았다.


이제 몇 년 후 반백살을 앞에 두고 남들보다는 조금 일찍 백내장과 노안, 조기 폐경을 겪으면서 내 인생의 실패감과는 별개로 몸은 착실하게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구나 싶어진다. 이제부터라도 낡아져 가는 몸을 잘 돌보며 더 이상 갖지 못할 것에 미련을 두지 않고, 나 스스로 나를 아끼고 사랑을 베풀고, 무엇보다 소중하게 보듬어 주며 남겨진 삶이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인생의 가을이 너무 짧게 끝나지 않도록 나다운 생을 더욱 실하게 이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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