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만큼은 꼭 보슬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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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진주

2020년 봄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우선 그의 부재를 인정해야 한다. 그가 더 이상 나와 같은 세상에 발 붙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의 심장은 더 이상 뛰지 않고, 그의 몸뚱이는 점점 썩어갈 거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 후엔, 가죽만 남은 그를 좁은 관에 넣는 것에 동의해야만 한다. 내 손으로 그의 부재를 확인하고, 인정해야만 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알 수 없는 약품을 뒤집어쓰고 수의를 입고 곱게 누워있는 그는 분명 내가 아는 사람이다. 내 기억 어딘가에 흐릿하던 그가 마주하는 순간 선명해진다. 단지 세월이 흘러갔을 뿐인데, 이제 그는 없는 사람이란다. 그는 멀리 떠나야 된다고 했다. 우린 그를 붙잡지 말고 보내줘야 된다고 했다. 잘 갈 수 있게 그렇게 보내줘야 된다고 했다.

다음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보러 같이 가지 않을래? 고작 한 살 더 먹었다고, 퉁퉁 불은 몸뚱이가 수마를 벗어나지 못해 미뤘다. 그냥 다음에 갈래. 지금은 더 잘래. 아침이잖아. 어리석었다. 다음은 없었어. 지나고서야 겨우 알아챈다. 다음은 없었다.

한 데 모인 사람들은 자신들이 기억하는 그의 조각을 보따리에서 꺼낸다. 각기 다른 추억들이 모여 ‘그’라는 조각보가 완성된다. 나는 끼어들지 않고 구석방에 가서 쪼그려 앉기를 택한다. 아무도 찾지 못하게. 난 꺼낼 조각을 그날 잃었으니까. 가슴 한 구석이 쿡쿡 찌르듯 아려왔다. 그래도 괜찮은 척. 나는 슬퍼할 자격도 없으니까. 그냥 그렇게.

아마도 그가 있을 너머를 바라본다.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어야 했다.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기 보단 무감해 보이는 낯이 더 나았다. 꾸며내는 데에는 이미 도가 텄다.

땅을 깊게 파 내어 관을 넣는다. 그는 그 안에 조용히 잠들어 있다. 분명 있는 사람인데, 하루 아침에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없다고 그랬다. 그는 이제 없다. 항렬 순으로 돌아가며 흙을 뿌린다. 차가운 땅에 그를 영원히 묻어야 했다.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하다. 무엇이라도 그 귓가에 이야기하고 싶다. 그러고 싶은데, 고작 아침잠에 어쩌면 마지막이었을 그와의 재회를 팔아넘겼다. 그는 이제 영원히 잠들었다. 목구멍이 턱턱 막혔다.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해서도 안 됐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탔다. 창 밖으로 보이는 봉긋한 흙더미에는 막 심은 잔디가 듬성듬성 보였다. 오늘만큼은 꼭 보슬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그를 위한 마지막 기도다. 할 수 있는 게 그것 밖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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