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을 살리는 말 글 공부_01
일상의 말, 글, 문화에 담긴 의미를 탐구하고 한의학 이론과 연결해서 해석하는 한의사 박성동입니다. 말과 글에는 당대의 철학과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후대로 전해집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일상에 살아 있는 말들은 백년 전, 천년 전의 문화와 이어지는 일종의 고리가 됩니다. 생명력을 가진 말은 살아 남고 생명을 다한 말은 사라지지요. 살아 있는 말들 중에서 우리의 몸을 이해하고 건강을 일깨울 수 있는 것들을 골라 요리조리 뜯어보고 맞춰보고 재해석하는 작업을 시작하려 합니다. 가벼운 이야기지만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로 가지고 온 주제는 오장육부 중 쓸개와 관련된 이야기 입니다. 줏대 없고 나약한 사람을 타박할 때 “이 쓸개 빠진 놈아”라고 합니다. 쓸개의 어떤 특성 때문에 이런 말이 나오게 되었는지 우선 한의학 이론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의학입문 장부조분에 “쓸개는 중정(中正)의 기관이며 결단(決斷)이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중정이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곧고 올바르다는 뜻입니다. 벼슬 이름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중국 진나라와 고려에서 인재 등용을 담당하던 벼슬 이름이었으며, 동학에서는 직언을 하는 강직한 사람을 앉히는 직위로 중정을 두었습니다. 곧고 올바른 사람은 사사로운 정에 흔들리지 않으며, 좌고우면하지 않고 결기 있게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인재를 천거하거나 직언을 하는 벼슬이나 직위는 공정성과 강직함이 생명이기에 이런 사람을 임명하였던 것입니다. 인사위원회나 감사위원회에서 강직한 판단을 내리지 못할 때 정권이나 기업이 추락하는 사례를 보더라도 중정의 가치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튼 한의학에서 쓸개는 결단을 내리는 기관으로 인식하였습니다. 담대하다, 담력 테스트, 간담이 서늘하다와 같은 단어에 사용된 것을 보더라도 뜻이 통합니다. 따라서 결단이나 포부, 용기가 부족한 사람을 쓸개 빠진 놈이라고 했을 거라는 게 첫 번째 추론입니다.
다른 해석으로는 쓸개즙의 쓴맛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와신상담이라는 고사성어는 전쟁에서 진 후에 복수를 위해 쓸개즙을 맛보고 나무토막을 베고 잠을 잤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불편함과 고통을 상기시키며 준비를 했다는 뜻이지요. 쓸개즙은 쓴맛이 강하므로 인생의 쓴맛에 비유되며, 실패와 좌절을 상징합니다. 쓸개 빠진 놈은 이런 인생의 굴곡과 쓴맛을 모르는 철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한의학에서 쓸개를 약재로 사용합니다. 많이 알려진 우황청심원은 소의 쓸개에 형성된 황금색 결석인 우황을 약으로 이용합니다. 우황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경기를 치료하는 효능이 있어 깜짝 놀라거나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복용합니다. 또 어린 아이가 경기를 할 때 진정시키는 효능도 있습니다. 귀한 약재인 웅담 역시 우황과 비슷한 효능이 있으며, 간효소를 활성화하고 담즙분비를 촉진하는 효능도 있습니다. 스트레스로 발생하는 시력감퇴, 고혈압을 치료하는 효능도 있습니다. 우황이나 웅담은 매우 귀하고 값비싼 약재이기 때문에 쓸개가 빠진 놈은 '값어치가 없는 형편 없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잘 놀라거나 겁이 많은 증상을 한의학에서는 담이 허하다고 진단을 내립니다. 이때 온담탕(溫膽湯)이라는 약을 처방하여 치료하는데, 겁이 많고 꿈을 많이 꾸며 답답한 증상에 쓰는 약입니다. 전화벨 소리에 깜짝깜짝 잘 놀라는 사람, 자동차 사고 후 밤에 잠을 못자고 깨어 보채는 아기, 가슴속 화를 풀어내지 못하고 속앓이를 하는 사람 등 담이 허약한 사람에게 써서 효과를 봅니다. 담을 따뜻하게 한다(=보양한다)는 뜻이 있으므로 쓸개에 대한 인식과 진단, 처방이 일관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쓸개는 해부학적으로는 담즙을 저장, 농축하고 십이지장으로 흘려보내는 소화기관입니다. 요즘에는 담낭결석이 생겼을 때 별 고민 없이 떼어버리는 수술도 많이 합니다. 쓸개가 없어도 간에서 만들어진 담즙은 담도를 타고 십이지장으로 바로 분비될 수 있어 소화력에도 크게 지장이 없습니다. 또한 경험적으로 쓸개를 떼어냈다고 해서 줏대가 없거나 철이 없는 사람으로 변하지 않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따라서 '쓸개 빠진 놈'은 쓸개가 결단을 주관하고 인생의 쓴 맛을 비유한다는 것에서 나온 관용적 표현일 뿐, 쓸개를 떼어냈다고 해서 "쓸개 빠진 놈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겠습니다.
쓸개에 담긴 이야기 재미 있으셨나요? 일상에서 건져 올린 유쾌한 이야기를 가지고 또 찾아 오겠습니다.
**유튜브 채널 [짱EZ하니]에 37화 연재 중이며, 매주 1편 업로드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