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을 살리는 말 글 공부_02
사회적 통념에서 일탈한 집안을 빗대어 ‘콩가루 집안’이라는 말을 쓰지요. 어떤 가족이든 늘 행복하지만은 않고 갈등과 다툼이 있게 마련이지만, 콩가루 집안이라는 낙인이 찍혔다는 건 매우 심각하고 회복이 힘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대체로 콩가루 집안은 다음과 같은 뜻으로 사용됩니다.
첫째, 가족 간에 단합이 되지 않고 각자 제 멋대로 사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는 그래도 양반이고, 재산이나 유산 문제로 법정 다툼이 벌어지면 심각해지지요.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왕가의 싸움에 있어서는 서로를 죽이는 잔혹한 상황까지 발생하고 맙니다.
두 번째 경우는 도덕이나 규범에서 일탈한 가족입니다. 흔히 족보를 무시한 근친혼이나 겹사돈으로 촌수가 복잡해지는 경우에도 사용합니다. 유교적인 문화를 중시하던 시대에는 보다 엄격했으나 갈수록 이런 인식은 느슨해지는 것 같습니다. 불과 30여 년 전까지 동성동본 혼인 금지가 법률로 규정되어 있었으니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닙니다. 가족을 돌보지 않고 부부 간에 맞바람을 피운다든지 자식을 버리고 사랑이나 유희를 찾아 집을 나가버리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네요. 막장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출생의 비밀도 이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막장 가족을 비유할 때 왜 애꿎은 콩가루를 갖다 붙였을까요. 비밀은 콩가루의 특성에 있습니다. 콩가루는 끈기가 없어서 반죽이 잘 되지 않지요. 반죽이 잘되는 밀가루와 쌀가루에 비해서 잘 뭉쳐지지 않고 찰기도 없습니다. 인절미를 만들 때 찰떡에 콩가루를 묻히는 이유도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콩의 분리되는 성질은 레시틴이라는 성분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대두 레시틴은 유화 물질로 잘 알려져 있는데, 기름을 작은 입자로 쪼개어 물에 섞일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이런 작용 때문에 레시틴은 체내에서 동맥경화를 예방하는 물질이 되기도 하고, 화장품을 만들 때 유분을 수분 속에 일정하게 녹아 분포하도록 도와주는 재료로 사용됩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이승만 대통령이 했다는 유명한 말이지요. 전체주의, 집단주의 체제에서 구성원의 결속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개인성에 대한 억압과 희생이 강요되었던 어두운 과거이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반어적으로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또 권위주의 시대에 강조되었던 가족애, 자녀에 대한 헌신과 기대도 역발상으로 생각해 봅니다. 이런 끈끈함이 되레 강요나 학대로 이어지기도 했고 불화의 씨앗이 되기도 해서 이에 대한 반성적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요.
한약재로서 콩의 효능을 살펴볼까요. 동의보감에 대두는 성질이 평(平)하고 맛이 달다고 하였습니다. 비위를 따뜻하게 하고 편하게 하는 효능이 있습니다. 쥐눈이콩이라고 하는 서목태는 복부비만에 도움이 됩니다. 콩가루에 대한 효능도 나오는데 소화를 돕고 더부룩한 증상을 개선하며 부종을 내려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살펴본 것처럼 콩가루에는 부정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고, 효능으로 보나 변화된 시대정신으로 보나 긍정적 의미도 많습니다. 가족 간에도 개인의 취향과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해졌고, 수평적 관계 속에서 감정적 유대감을 쌓는 것이 필요해졌습니다. ‘콩면’이라고 하는 칼국수 반죽은 밀가루3:콩가루1 비율로 반죽하여 글루텐을 줄이고 더 고소한 칼국수 면을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이제 콩가루에 대한 편견은 접어두고 장점을 잘 살려 더 건강한 사회, 행복한 가족 관계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뭉치는 것만이 지고지선하다는 고집을 버리고 개성과 창의력을 존중해 주는 방향으로 세상의 변화를 인정한다면 우리의 사회문화적 힘은 더욱 단단해지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