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살에 처음으로 독립 중입니다
독립
1. 다른 것에 예속하거나 의존하지 아니하는 상태로 됨
2. 독자적으로 존재함
33살까지 나는 가족과 함께 살았다.
동생은 어학연수로, 엄마는 죽음으로, 아빠는 자취로 집을 떠나면서 함께 사는 구성원의 변화 속에서도 나는 그대로였다. 학교나 회사가 집과 가깝지도 않았으니 때때로 길에 버리는 시간이 아까웠다. 혼자 있고 싶은 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들이 ‘독립해야겠다’라는 결심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친구들의 자취방을 수없이 드나들었던 경험이 ‘나도 독립을 해볼까’라는 생각으로 연결되지도 않았다. 그렇게 나에게 독립은 지나칠 정도로 낯선 단어였다.
누군가 나에게 왜 독립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나는 ‘굳이’ 독립을 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독립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은 누군가에게는 ‘이상하게 느껴질 만큼’ 단란한 가족의 문화 때문이었을 터. 외출 후엔 엄마에게 밖에서 있었던 일들을 자세하게 공유하는 것이 나에게는 밥을 먹으면 양치를 하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이었다. 서로 다른 지역에 있는 회사를 다녔지만 동생과 나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일부러 퇴근 루트와 시간을 맞추어 가면서까지 집에 같이 갔다.
결혼이라는 하나의 제도를 통해 나에게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생기지 않는 이상 내가 지금의 가족을 떠나 독립을 할 것이라고는 (상투적이지만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꿈에도 몰랐다
인생의 모든 변화가 늘 그렇겠지만 나의 첫 독립도 마음의 준비를 할 틈도 주지 않고 날벼락처럼 찾아왔다. 2022년 무더운 여름, 나는 이직을 했다. 옮기는 회사의 모든 조건이 완벽할 정도로 좋았지만 나에게 걸리는 딱 한 가지는 회사의 위치였다. 나의 시간을 길바닥에 무한정 기부하더라도 살고 있는 집에서의 출퇴근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물론 세상에 100%는 없으니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10년 무사고 장롱 면허인 내가 왕복 200km를 매일 운전하면 가능할 수도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이동 수단에서 보내는 시간이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과 거의 비등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궁지’에 몰리자 상상도 못 했던 독립이 현실이 되었다. 대신 반쪽짜리 독립이었다. 회사 기숙사에 살게 된 것이다. 이건 독립이 아니라 합숙 정도로 정리해야 맞는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내 인생에 있어 이 기념비적인 모멘텀을 나는 독립으로 정의하기로 했다.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독립도 독립이지만 가족과 분리된 채로 일상을 쌓아가다 보니 많은 것들이 새롭게 보이고 많은 것들을 새롭게 알아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서른이 넘은 지금에서야 정신적인 독립을 경험하고 있달까.
무엇보다 단어가 주는 힘이 있듯이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일련의 과정을 독립으로 명명해야만 내가 비로소 독자적인 ‘나’로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독립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