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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청객 Dec 21. 2016

0.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브런치를 시작하는 이유

엄마가 돌아가셨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은 1달 전쯤부터 수도 없이 들어왔다. 그래도 한 번쯤은 말도 안 되는 기적이 우리 가족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런 기적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이런 류의 마음의 준비는 어떻게 하는가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어디에서도 배운 기억이 없었다.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해보기도 했다. 끊임없이 엄마의 죽음을 상상해보고 미리 아파했다. 일종의 예방접종이랄까.




그래도 하나도 소용이 없었다. 기적은 없었고, 마음의 준비는 필요가 없었다. 상상 이상으로 아팠고, 아직까지 너무 아프다. 언제 엄마가 가장 보고 싶냐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매 순간 엄마가 보고 싶다. 믿기지도 않는다. 엄마는 먼 곳으로 여행을 갔고 곧 돌아오실 것만 같다. 집에 들어설 때면 '다녀왔습니다'라고 엄마에게 말해야 할 것만 같다. 나쁜 생각이지만 차라리 엄마보단 아빠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그만큼 딸이었던 나에게 엄마는 너무 큰 존재였다. 인생에 있어 큰 부분이 사라진 지금의 나는 그 공허한 공간에 무엇이라도 채워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리는 중이다. 배가 불러 화가 날 정도로 먹었다. 일부러 친구들을 만나 과하게 웃어댔다. 잠깐의 여유가 주어지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까지 찾아 했다. 그러던 나를 일순간 무너트린 건 한 편의 시였다. 공허함을 다른 일들로 채우면서 괜찮은 척하던 나를 전혀 괜찮지 않게 만들었다.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 정채봉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 시간도 안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 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 보고 
숨겨 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참아왔던 감정들이 폭발했다. 굳이 먼저 말하지 않아도 엄만 내 눈만 보고도, "딸 오늘 무슨 일 있었지"라고 먼저 물었었다. 내가 어떤 이야기든 시작하기만 하면 늘 내 편에서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무거웠던 고민들도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말도 안 되게 가벼워졌다. 시리도록 외로워졌다. 이젠 그 이야기를 누구한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걸까. 엄마가 만에 하나 휴가를 나온다고 해도 말하고 싶은 일이 한두 개 아닐 텐데.




그래서 글을 써보기로 했다. 3년여의 시간 동안 아픈 엄마를 지켜보면서 배운 것들을 담아내고자 한다. 엄마에게 그 시간들이 나에게 아프고 힘들었지만, 결국은 좋은 자산이 되었다고 말해주고 싶어서. 그리고 엄마 없이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있었던 일들도 덜어내 보고자 한다. 먼 훗날 엄마를 만나게 되면 까먹지 말고 엄마에게 다 말해주고 싶어서.




엄마 없이 벌써 17일이 지났다. 그런데 엄마에게 하고픈 이야기는 17개도 훨씬 넘어 버렸다. 시간은 흘러도 이야기는 남는다. 그래서 엄마는 오늘보다 내일이, 모레가 더 보고 싶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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