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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청객 Jul 10. 2017

4.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누구나 자신의 속마음을 날 것 그대로 타인에게 보여주기란 힘들다. 그래서,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도 당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그 상대가 누구이든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다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건 우리가 저지르는 가장 큰 착각 중 하나이다.




하루는 엄마의 병원에서 우리 가족이 다 같이 백문 백답류의 질문들을 서로 나누었던 적이 있다. 가족이면 누구보다 서로에 대해 잘 알아야 하지만, 생각해보면 정작 서로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질문은 다양했다. 좋아하는 색깔에서부터, 좋아하는 과일, 음식 등등. 소개팅에서나 할 법한 질문들이 우리 사이에 오고 갔고,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그리고 질문을 할수록 우린 서로에 대해서 생각보다 훨씬 더 무심했구나 라는 반성도 더해졌다.




질문 중에는 가장 좋았던 여행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각자가 가장 좋았던 여행들을 말했고, 삭막했던 병실의 공기는 어느새 행복했던 여행의 기억들로 채워져 훈훈해졌다. 재작년 여름휴가쯤 엄마와 동생, 그리고 내가 함께 한 태국 여행에 대한 기억들도 소환되었다. 비가 억수로 내리던 카오산 로드, 2번이나 먹은 인생 볶음면, 우여곡절 끝에 갔던 루프탑 바. 그런데, 루프탑 바 이야기가 나오자 엄마는 갑자기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리며 내게 말했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은빈이한테 너무 미안해.
사실 말은 안 했지만 돈도 너무 아까웠고,
저녁이라 몸이 피곤하기도 했고...




나는 태국 여행에 가기 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루프탑 바가 있었다. 그 장소에 걸맞은 옷과 신발도 챙겼고, 친구들에게 자랑할 만한 인생 샷도 찍어오겠노라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루프탑 바를 간 그 날 저녁, 엄마는 별 것도 아닌 것들에 딴죽을 걸기에 바빴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며 결국 나도 화가 났고, 서로 기분이 상한 채로 그곳에서 내려왔었다. 근 2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되었지만, 엄만 루프탑 바의 말도 안 되는 음료 가격이 싫었던 거였고, 저녁이라 몸이 피곤했던 거였다. 엄마가 말하기 전에 눈치 빠르게 알아차렸어야 했지만 나는 엄마의 그런 마음을 알지 못했고 결국 서로의 마음에 상처만 남겼다.




물론 그 후에 자연스럽게 화해를 했지만, 엄마에게 그 기억은 두고두고 되새김질할 만큼 아픈 기억으로 남았던 것이다. 엄마의 울음에 나도 그만 울음이 터졌고, 괜찮다며 엄마를 위로하며 이번에는 반대로내가 엄마에게 미안했던 여행의 기억을 털어놓았다.




대만 가족 여행 중 있었던 일이다. 대만 가족 여행은 가족이 다 함께 하는 첫 번째 해외여행이었다. 엄마는 아팠고, 아빠는 바빴고, 동생은 미숙했기에 여행의 계획부터 현지 가이드 역할까지. 1부터 100까지 온전히 모두 나의 몫이 되었다. 만발의 준비를 했지만 여행에서는 모든 것이 예측 불가였다. 풍등을 날리는 스펀에 도착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은 상상 이상으로 많아 붐볐고, 점심으로 먹으려고 찾아둔 닭 날개 밥집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엄마가 배가 고프다며 길거리에 파는 문어 튀김을 사 먹겠다 말하였다. 물론 나도 배가 고팠지만 이왕이면 가족들에게 스펀의 명물로 점심을 먹게 하고 싶었다. 다른 음식을 먼저 먹으면 내가 미리 찾아둔 점심을 맛있게 먹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런 나의 마음을 모두가 알아주길 바랐고 당연히 알거라 지레짐작하고는 엄마에게 뭐 그런 걸 먹냐며, 먹지 말라며 버럭 화를 냈다. 화를 내는 그 순간부터 이미 화를 내는 것이 잘못되었음을 알았지만 돌이키기엔 늦었었다. 어색해진 분위기 속에서 엄마는 내 눈치를 보며 문어 튀김을 먹었고 그 모습을 멀찌감치서 지켜보던 나는 가슴으로 울음을 삼켰었다.




엄마에게 태국 루프탑 바의 기억이 목구멍의 가시처럼 남아 있었다면, 나에게는 스펀의 대왕문어 튀김의 기억이 제대로 얹힌 체기처럼 가슴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날 병원에서 엄마와 나는 흡사 고해성사를 하듯 서로에게 각자의 미안함을 털어놓았고, 이제는 그 기억을 잊고 서로에게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잊자고 해놓고 아직도 이렇게 또렷하게 미안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서로의 생각이나 마음을 상대방에게 또렷하게 표현했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줄 거라는 혼자만의 추측은  ‘왜 내 마음을 몰라주지’라는 서운함으로 이어졌고 그 서운함이 결국은 싸움으로 번져 서로에게 상처가 되었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내 마음과 생각은 오롯이 나의 것일 뿐 입 밖으로 내뱉어 그 마음과 생각이 상대방에게 닿기 전까지는, 오롯이 나의 것이다. 내 마음과 생각을 알아주길 바란다면 끊임없이 얘기하는 수밖에 없다.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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