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청객 Jul 04. 2017

3. 내 탓이오

전반적으로 멍청해요




내가 근무하던 팀에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인턴이 들어왔던 적이 있다. 그 인턴에 대한 팀의 평가는 가혹하지만, 한 마디로 멍청함이었다. 간단한 업무를 요청해도 그 업무를 이해하고 소화하는 속도는 남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 같은 설명을 2-3번은 반복해야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이니까 그럴 수 있다는 핑계로 예쁘게 포장해줄 수 있는 수준도 넘어섰다. ‘차라리 내가 하는 것이 빠르지’라는 한숨 섞인 불만들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나라고 다를 것이 없었다. 그 인턴이 불안했고, 답답했다.




그래서인지 그 인턴에게 어떤 일을 알려줄 때는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것까지 알려주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사소한 부분까지도 설명을 했다. 빠르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지만 더디더라도 자세하게 설명하는 방법을 택했다. 주의가 필요한 부분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짜증이 느껴질 정도로 반복해주었다. 오죽했으면, 인턴의 입에서 ‘선배님은 저를 유치원생 다루듯이 다루시네요’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말이 나왔을까. 불행 중 다행으로 한 때 꿈이 선생님이었을 정도로,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알려주는 것을 좋아하기에 그 시간이 힘들지는 않았다. 약간의 귀찮음과 성가심이 있었을 뿐.




그런데 그런 시간이 쌓이자 적어도 그 인턴이 나에게 해주는 업무의 질은 말도 못 하게 달라졌다. 잔 실수들은 여전했지만 그 인턴으로 인해 업무에 차질이 생길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팀원들은 계속해서 그 인턴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지만 나는 큰 불만이 사라졌다. 팀원들이 인턴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던질 때, 겉으로는 동조해주었지만 속으로는 동조하지 않았다. 완벽한 인턴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지 아니한가'라는 생각을 할 수준에는 이르렀다. 그래서 나는 그 인턴과 일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았고 또 아무렇지 않았다.







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회사 내에서 일명 '드림팀'이라고 불리는 팀이 있었다. 그 팀의 사람들은 하나 같이 상냥하고 부드러웠지만 일에 있어서는 똑 부러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나도 그 팀을 늘 부러워했고 더군다나 그 팀에 속해 있는 그 사원에 대한 부러움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나도 저런 팀에서 일을 배우고 일을 함께 하고 싶다는 질투심이 가득했다. 우리 팀, 나의 사수에 대한 비교가 더해지자 그 질투심은 더욱 강렬해졌다. 그런데 그 팀에 속한 사원과 점심을 함께 하고 나자 내가 그간 얼마나 큰 착각과 오만에 빠져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저도 팀원들이 백 퍼센트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작년 연말에 장문의 카톡과 함께 케이크 기프티콘을 보냈었어요.
까칠했던 대리님도 그 후부터 저한테 대하는 게 달라진 것 같긴 해요.




나는 우리 팀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투정을 쏟아냈을 뿐 한 번도 이 관계를 개선시키려는 노력을 하지는 않았다. 비겁한 변명이지만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관계라고 단정 짓고 멀어지는 관계를 방관하고만 있었다. 박수도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틀어져버린 관계에는 그들 말고도 나에게도 탓이 있었던 것이었다.




천주교에서는 미사가 시작될 때면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라는 기도를 하며 자신의 가슴을 크게 세 번 치는 행위를 한다. 세상 모든 일이 내 탓이라고 생각하면 너무나도 억울하겠지만, 그렇다고 세상 모든 일이 남의 탓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는 있지는 않은지 가슴을 크게 세 번 쳐봐야겠다. 그래야 엄마가 늘 나한테 말했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삶의 모토가 조금은 가능하지 싶다. 내 탓으로 돌리고, 반성하고, 현재의 상황을 즐기거나 혹은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나 찾아야지.

작가의 이전글 2. 돈을 선물한 여자, 시간을 선물한 남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