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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블 Jun 16. 2020

나만의 나이테를 그려나가는 일

쌓여가는 시간의 힘에 대하여


"내가 배우고 습득한 이론들을 삶에서 마주하며 재정립하는 시간, 내가 경험하고 느꼈던 일들을 몸속에 퇴적하며 어루만지는 시간. 그런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았으니 몰랐었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뚫고 얼마 전 신청해둔 강연이 열리는 곳으로 향했다. 강연장은 전시실과 함께 쓰는 모양이었다. 빗속을 뚫고 온 탓인지 강연장의 하얀색 천장과 벽면은 차갑고 한기마저 느껴졌다. 사람들 틈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각 디자이너 안상수 선생님의 강연이었다. 빨간 모자에 회색 점프슈트, 파란색 외투를 걸치고 인사를 하셨다. 한눈에 보기에도 연령대가 높아 보였는데 그에 비해 외적인 모습은 자유롭고 활기차게 보였다. 어쩐지 흥미로운 마음이 피어올랐다.     


<한글 멋짓>이라는 강연 주제로 한글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부터 한글 역사 이야기까지 다양하고 폭넓은 강연이었다. 강연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어린아이와 노인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신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실 때엔 눈이 반짝거렸고, 역사에 대한 이야기나 지식을 전달하실 때엔 연륜의 눈빛이 흘렀다. 1시간이 넘게 이어진 강의는 지루할 틈 없이 밀도 있었다. 한기가 느껴지던 강연장이 늦여름 풀벌레 소리가 울려 퍼지는 마당 위 평상으로 변해있었다. 강연을 듣는 모두가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강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강연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맴돌았다. 지금 시간이 별 볼 일 없어 보이더라도 그 시간은 몸 안에 쌓이는 시간이라고. 그러니 우리는 참을성을 길러야 한다고. 그 말 한마디가 비바람에도 굳건한 나무처럼 든든하게 다가오는 밤이었다.     


다음 날은 비가 개었다. 하늘은 어제를 잊은 듯 맑고 눈부셨다. 점심시간에는 산책하기 위해 근처 공원을 찾았다. 익숙하게 발걸음을 움직였고, 산책 시간의 끝자락엔 즐겨 찾는 고목으로 향했다. 300년쯤 살았다고 표지판에 적혀있는 나무. 오래 살았다는 건 무엇일까. 그 시간은 어떻게 쌓이는 것일까. 나는 한참 동안 나무를 올려다봤다. 나에겐 나이 듦은 죽음을 향해가는 여정, 주변인들이 줄어들어 쓸쓸한 것, 결국은 외로워지는 것으로 한정 지어 생각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정말 내가 생각하는 것이 전부일까.     

 

어제 강연을 들었던 안상수 선생님의 눈빛이 떠올랐다. 눈빛에선 여유로움이 느껴졌고, 말투에선 겹겹의 세월이 묻어났다. 그건 순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보고 듣고 느꼈던 시간이 몸 안에 퇴적되어 드러난 것이었다. 눈앞에 있는 나무 또한 살아오는 동안의 비와 바람, 햇살까지 저 안에 품고 살게 되었으리라. 우리의 눈엔 허리둘레를 늘려가는 일 말곤 큰 변화가 없어 보여도 시간은 조금씩 나무에 쌓여갔다. 오래된 나무 앞에서 모두가 숙연해지는 마음은 그 세월의 무게를 우리 또한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릴 땐 20대가 지나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외적인 성장이 끝났으니 완전히 성장했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진짜 성장은 그 후로부터였다. 내가 배우고 습득한 이론들을 삶에서 마주하며 재정립하는 시간, 내가 경험하고 느꼈던 일들을 몸속에 퇴적하며 어루만지는 시간. 그런 시간은 눈에 보이지 않았으니 몰랐었다. 어른의 시간은 어린 시절처럼 즐거운 일들이 많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삶의 즐거움은 다양했다. 지루해 보이는 기다림의 시간이 내 안에 쌓이는 기쁨, 꾸준한 시간이 만들어준 내면의 여유로움이 내게서 흐를 것이다. 시간의 흔적을 나이테로 두르는 나무처럼 사람의 인생 역시 그 사람의 눈빛과 말투에서 흐를 것이다. 나는 오늘도 조용히 나만의 나이테를 그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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