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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블 Jun 09. 2020

마음의 밑바닥

화를 대하는 태도


화의 모양은 제각각이지만 화를 가진 사람들의 마음은 비슷하지 않을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불안한 마음 같은 것들. 




아침 댓바람부터 바쁘다.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커피 쿠폰을 쓰기 위해 카페로 향한다. 카페에 도착하니 매장 안에는 이미 대여섯 명의 사람이 보였다. 평일 아침부터 나처럼 커피를 마시려는 사람들인가?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문을 열고 뒤이어 줄을 섰다. 앞사람의 주문이 끝나나 싶더니 직원이 수납장에서 상자를 꺼내 고객에게 건네고 있었다. 사은품을 주는 이벤트 기간이었나 보다. 10분이 지나도 줄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아 다른 방법으로 주문을 하려 하니, 순식간에 사람들이 매장을 빠져나갔다. 이유는 몰랐지만, 곧 내 차례가 되어 주문을 했다.


“재고가 없으면 재고가 없다고 말을 해줘야지, 기다리는 사람이 뭐가 됩니까?” 조용한 아침의 적막을 깨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은품을 받기 위해 줄을 섰던 사람 중 한 사람이었나 보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매장을 빠져나갔는데 이 사람은 화가 난 모양인지 직원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이라며 직원은 고개를 숙였고, 직원의 그런 행동에도 남자는 계속해서 화를 내며 비슷한 말을 반복했다. 큰 소란에 저절로 눈이 가늘게 접혔다. 주문한 커피를 가지고 서둘러 2층으로 올라왔다.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아래층 소리에 귀 기울여 보니 남자의 목소리는 더 들려오지 않았다.      


우리는 일상에서 화난 사람과 마주하는 순간이 있다. 화난 사람들을 보면 얼굴에서부터 표가 난다. 얼굴색은 시뻘게져 있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으며, 열이 나는지 손부채질을 하곤 한다. 물론 냉정하게 화를 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사람은 비슷하다. 말투도 비슷하다. ‘내가 옳고 너는 틀리다.’ 혹은 ‘나는 억울하고 이 원인은 모두 당신에게 있다’라는 말투다. 화를 참으면 자신에게 병이 된다고 하지만 화날 때마다 표현하고 살면 자신에게 독이 된다.      


난 이전에 꾸준히 화내는 사람이었다. 10대 시절에는 부모님 다툼으로 집안의 공기가 가라앉은 날엔 그것이 못마땅하여 화가 났고, 교우 관계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그것이 내 탓 같아서 화가 났다. 20대, 30대가 되면서 화의 모양은 점점 다양해졌다. 화는 수시로 날 찾아왔고, 화낼 때마다 조금씩 몸집을 불렸다. 왜 나는 이렇게 쉽게 화를 내는 걸까? 그 생각 끝엔 비난의 화살이 외부로 향했다. 곪아 터진 내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20대 후반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나는 엄마와 함께 지내다 타지로 독립을 했다. 가족 모두 각자의 섬으로 흩어졌다. 홀로 되고 나서야 내가 가진 불안의 감정이 보였다. 어린 나에겐 위태로웠던 가족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었다. 불안의 원인을 몰랐으니 화가 났고, 속마음은 불안으로 꼬깃꼬깃 접혔다. 그때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난 후부터 불안했던 그때의 나를 만나 보듬어준다. 그 아이는 가끔 울곤 하지만 이전처럼 화만 내지 않는다. 화난 감정을 알아차렸고 또한 보듬어주었으니까.      


카페에서 아침부터 화를 내던 그 남자를 다시 생각해본다. 그 남자는 자신의 노력이 보답받지 못했으니 화가 났던 거겠지? 매장을 소란스럽게 했던 그 남자를 향한 좋지 않았던 마음에서 안쓰러운 마음이 고요히 퍼진다. 화의 모양은 제각각이지만 화를 가진 사람들의 마음은 비슷하지 않을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불안한 마음 같은 것들. 흉악한 범죄의 제일 밑바닥에도 이런 마음이 있을 것이다. 화는 불과 같아서 내가 퍼뜨린 불씨가 나를 태우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태우기도 한다. 우리가 가진 이 불씨를 화로만 발산할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위한 연료를 쓰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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