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협정 세계시를 기준삼은 표준시 속에서 매일 86,400초로 이뤄진 하루를 모두가 동일한 속도로 살아내고 있지만, 개인의 경험과 사고 그리고 감정은 서로 다른 속도에 의해 진행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이와 관련 고대 헬라어로 '때'를 의미하는 두 개의 단어가 있는데, 하나는 어떤 시각에서 어떤 시각까지의 사이인 '시간(時間)'을 의미하는 '크로노스(χρόνος)'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의 어느 한 지점인 '시각(時刻)'을 의미하는 '카이로스(καιρός)'이다. 다시 말해 크로노스는 객관적, 형상적, 계기적, 물리적, 절대적인 시간을 의미하고, 카이로스는 주관적, 정신적, 인격적, 논리적, 상대적인 시각을 의미한다.
즉, 우리의 삶은 오직 한 곳으로만 향하는 크로노스라는 절대적 시간을 따라서 흐르는 중이지만, 그 과정에서 느낀 특별한 경험과 감상적 찰나는 해체적이고도 비선형적인 방식을 통해 다른 기호와 사유를 담아 재해석된 카이로스라는 심리적 시각을 인식하곤 한다.
지금도 누군가는 출근하기 싫은 아침이 다가옴을 느끼며 크로노스적인 시간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하루를 길게 쓰는 느낌이라며 카이로스적인 시각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느끼는 경험의 속도감이나 지속감은 개념적 시간의 고정된 시점에 비추어 보기도 하지만, 우리의 가치관에 의해 평가되는 개인적 시간, 즉 심리적 시간에 의해 계측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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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소중함, 삶의 유일성과 그에 대한 가치는 너무나 당연하고도 진부한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실제 인식하고 매 순간 적용하며 살아가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 시대와 공간을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로서 삶의 이유와 가치, 시간의 흐름과 인생의 목적 그리고 그에 대한 고민과 성찰, 깨달음 속에서 현재를 살고 있는 까닭이다.
나는 때때로 지식적으로는 알고 인정하지만, 가슴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입에서 맴돌기만 하는 진리와 삶의 괴리감을 부정하면서도 때로는 순종함으로써 체득하는 깨달음의 반복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본다. 그리고 당시에는 몰랐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어느덧 변하게 된 스스로를 바라보며 "시간이 답이다."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도 돌이켜보며, 반드시 사건을 발생시키고 싶다면 흘러가는 시간 속에 언제나 나를 과감히 던져야만 한다는 진리를 새삼 실감한다.
지나간 시간 속에서 체득한 경험과 남겨진 교훈이 현재의 우리를 존재케 하고, 받아들이기 속상하지만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일련의 사건들, 사람들 덕분에 나에게도 계속해서 나아갈 이유와 기회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카이로스적 시각의 인식을 통해 이뤄지는 감상이라니, 새삼 감사함을 느낀다.
사진: Pecado
글: Peca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