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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cado May 11. 2024

내가 여기에 나타난 이유

    멀리서 보면 엄전하여 얼핏 우러러 보인다 한들, 거친 풍파에 깎여나간 기암괴석과 같은 몰골로 세상에 우뚝하니 홀로 서있는 이 내 마음을 어찌 누가 알까. 오직 죽음을 향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유일한 낙은 지각이나, 알면 알수록 더 채워지지 못하고 어딘가 허하게 비어 오는 공허함을 지울 수 없다.

    황대권은 야생초 편지에서 이를 ‘默內雷(묵내뢰)’라고 정의한다. “겉으론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속으론 우레와 같다.”는 의미다. 외면이 편안하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그 내면에는 나름의 고뇌가 있는 것이지. 나에게는 그 고뇌가 늘 어떤 시작, 존재의 이유에 대한 물음에서 온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도 그랬다. 나는 매일 "나란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에 나타났는가?", "도대체 무슨 영달을 누리려고, 내 귀중한 시간과 열정을 이 공간에 쏟는가?"라는 질문들을 반복하며 고뇌했다.

     내 경험이나 생각의 일부분을 외부로 드러낸다는 것은 무척이나 두렵기 때문에 글을 쓰는 일처럼 특정 행위를 한다는 건 대단한 결단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자기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사고와 인식의 과정이 부조리한 존재를 초월하고 사유를 더욱 명확히 밝혀주리라고, 치유와 자유를 얻을 수도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래서 용기를 낸다.


     나란 사람의 유년기는 주어진 환경과 현실의 체제에 순응하는 시간이었고, 청년기는 내가 지닌 달란트와 가능성에 천착하던 시간이었으며, 장년기는 나태와 권태 그리고 각태를 탈피하는 시간들로 채워지고 있다. 나의 기구하고 쓸쓸하고 외롭던 생애 중에 크고 작은 파도에 올라도 봤지만, 강한 자성에 이끌리듯이 찬란하고 충족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나란 사람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무수한 광풍을 맞으며 왜 사는지, 왜 태어났는지 정체성을 찾아 번민함으로 인해 지난 삶과 앞으로의 삶에 대하여 어렵게 의미를 얻는 자이고, 기인 같은 삶에 빠진 필부로서 허무와 무상을 벗으로 삼는 재미없고 외로운 자이며, 자신이 책임지지 못했던 지난 사랑의 기억들로 오랜 세월 뭔지 모를 부채 의식을 느끼며 살아온 자이다.

     나란 사람은 언제나 정직하려고 노력하지만 가끔은 돈 주앙 같은 거짓말도 하고, 언제나 성실하려고 노력하지만 가끔은 도리언 그레이처럼 비행과 일탈도 즐기며, 언제나 빠른 취침 그리고 양질의 수면을 취하려고 노력하지만 하루키의 잠 속 가정주부처럼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채 아침을 맞이하는 날도 많다.


     나란 사람은 지난 5년간 대부분의 시간을 호텔에 기거하며 숱한 글을 써왔다. 그 과정에서 과거와 현재를 끊임없이 교차하는 기억과 경험의 회고, 사물과 현상에 대한 탐구, 심지어 오랫동안 감춰왔던 과오와 치부까지 들춰내고 반추하고자, 때때로 나의 의식은 이런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 영소 하여 정서를 번식하고 강화해 왔다. 자아의 유폐다.

     언표 내적 행위로 발화를 기다리던 의지와 욕망들은 이제 모두 흩어지고 없다. 그저 가끔씩 어떤 공간, 상황, 사물, 대상이 나를 끌어당기면 혼자만의 감정에 치달아 흐려진 기억들을 더듬을 때가 있는데, 그 감정의 편린들만 이곳에 주워 담기를 반복할 뿐이다.

     고로 이 세계는 나의 내면을 지배하는 또 다른 기억의 창고이자, 인지된 공간이다. 이런 공간에서 무의미한 글을 읽고 남기는 일 자체가 고단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출구이자, 알 수 없는 초시간적 지각과 미처 예기치 못한 심상이 쏟아져 들어오는 입구가 되는 것이다.

     상념으로 잠 못 이루는 밤, 플로어 스탠드 불빛 아래 소파에 앉아 몸을 늘어뜨리고 코냑 한 잔을 손에 들고서 헛헛함을 느낄 때 스스로를 반추할 도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이 세계에 정착하기로, 숨김없는 자기 고백과 자아비판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사진: Pecado

글: Pec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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