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헌 서재 Jul 22. 2020

<글의 품격>

“삶이 곧 하나의 문장이다”

<글의 품격>
“삶이 곧 하나의 문장이다”

                                                 해 헌 (海 軒)

오늘은 섬세하고 따뜻한 문체를 가진 작가의 새로운 책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저자인 이기주작가는 기자생활을 하다가 대통령의 스피치라이터(연설문 작성자)로 일했고
작가 및 컨설턴트로 활동 중입니다. 저서로는 “언품(言品)”과 “언어의 온도”, “말의 품격”
“한때 소중했던 것들” 등이 있습니다.

그의 책들을 몇 번 소개한 적이 있었고, 오늘은 최근에 작가가 낸 “글의 품격”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

★ 삶에서 글이 태어나고 글은 삶을 어루만진다

글과 삶은 어느 순간 하나로 포개진다. 때론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이 나를
쓰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얼마 전 요양병원에 계신 할머니를 뵙고 왔다.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신다.
지금은 치매가 심해져 사람을 못 알아보시지만, 병원에서 치매 진단을 받던 날 할머니는
먼 길을 떠나는 사람처럼 아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기억이 녹아서 흘러내리는 것 같아. 단어가 잘 생각나지 않아서 말을 하지 못하겠어.
머릿속에 안개가 자욱해...”

의사는 말했다. “치매 초기엔 기억력이 감퇴하고 언어 능력이 저하되기 시작해요.
그래서 대화를 나눌 때 고유 명사 대신에 대명사를 사용하는 비율이 급격히 높아지죠.
치매라는 병은 환자의 기억 속에서 가족과 주변 사람의 이름을 가장 먼저 지워버립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입술에서 내 이름이 지워지는 것만큼 슬픈 일도 없다.
세월은 우리를 에워싼 모든 것을 허물어뜨린다. 삶의 유한성 앞에서 인간은 늘 무력하다.
살아가는 일은 서서히 사라지는 일이기도 하다.

세상살이를 하면서 마음에 새겨지는 온갖 감정의 무늬가 우리의 손끝을 뚫고 나와
문장으로 태어난다. 그렇다. 삶에서 글이 솟아난다. 어쩌면 우리는 저마다의 삶을
연필처럼 움켜쥐고 글을 쓰는지도 모른다.

★ 글의 품격

나는 문장을 쓰고 매만지는 과정에서 말에 언품(言品)이 있듯 글에는 문격(文格)이
있음을 깨닫는다. 사전을 찾아보면 ‘격,格’은 ‘주위 환경이나 형편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분수나 품위’다. 세상 모든 것에는 나름의 격이 있다.
격은 혼자서 인위적으로 쌓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삶의 흐름과 관계 속에서
자연스레 다듬어지는 것이다.

문장도 매한가지다. 품격 있는 문장은 제 깊이와 크기를 함부로 뽐내지 않는다.
그저 흐르는 세월에 실려 글을 읽는 사람의 삶 속으로 퍼져나가거나 돌고 돌아
글을 쓴 사람의 삶으로 다시 배어들면서 스스로 깊어지고 또 넓어진다.

깊이 있는 문장은 그윽한 문향(文香)을 풍긴다. 그 향기는 쉬 흩어지지 않는다.
책을 덮는 순간 눈앞의 활자는 사라지지만, 은은한 문장의 향기는 독자의 머리와
가슴으로 스며들어 그곳에서 나름의 생을 이어간다.
지친 어깨를 토닥이고 상처를 어루만지는 꽃으로 피어난다.

★ 마음 – 생각과 감정이 싹트는 곳

평소 나는 ‘좌우봉원, 左右逢源’이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문장을 매만진다.
이는 “주변에서 맞닥뜨리는 사물과 현상을 헤아리면 근원과 만나게 된다.”
는 뜻인데, 일상의 모든 것이 배움의 원천이라는 의미로도 풀이할 수 있다.

난 글쓰기에 관한 질문에 휩싸일 때면 몇 초간 숨을 들이마신 뒤 슬며시 입을
연다. “잘 쓰는 것보다 잘 느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마음을 들여다보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나의 책들인 <언어의 온도>, <말의 품격>, <한때 소중했던 것들>은 모두 내
마음의 밑바닥에서 태어났다. 글을 쓰는 일은 마음의 상태를 살피고 기록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돌아보면 내 마음과 정면으로 마주할 때 글쓰기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고,
스스로 내면을 향해 걸어 들어갈 즈음 작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언제나 길은 바깥이 아니라 안쪽에, 마음속에 있었다.

나는 인간의 마음이 강가에 뒹구는 조약돌 같다고 생각한다. 낮 동안 햇살에
달궈진 조약돌은 저녁 어스름이 내려도 따듯함을 유지한다.
마음도 매한가지가 아닐는지. 아무리 현실이 팍팍해도, 무언가에 혹은 누군가에
의해 슬며시 데워진 마음은 한동안 온기를 지닌다.
어쩌면 우린 마음이 따듯해질 때 생겨나는 휘황한 힘으로 삶을 이어가는 게
아닐까.

마음은 한없이 원초적이고 예민하다. 거기엔 삶의 희로애락이 촘촘히 각인된다.
밝은 무늬만 새겨질 리 없다. 슬픔과 좌절처럼 어두운 문양까지 고르게 새겨진다.
그러므로 삶을 온전히 글로 옮기려면, 마음에 울려퍼지는 희망과 환희뿐
아니라 울음과 함께 터져 나오는 통곡과 절규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상대의 미소만이 아니라 눈물까지 살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 습관 – 내면의 리듬

나는 ‘초저녁의 작가’다. 내게 아침과 오후는 생각을 축적하는 시간이고
어두워질 무렵은 문장을 표출하는 시간이다.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책상으로 다이빙하듯 뛰어드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모두 잠든 시간에 원고지에 파묻히는 이른바 올빼미족도 있겠지만, 난 서녘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면 그제야 원고 작업에 돌입한다.

이것이 나만의 리듬이라면 리듬이다.
본래 음악용어인 ‘리듬’은 ‘율동’ 혹은 ‘절주,節奏’로 번역하곤 하는데, 단어의
본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움직이다’, ‘흐르다’라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
‘리트모스,rhythmos’와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고유한 리듬을 타며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건, 세월의 흐름 속에서
자기만의 방식과 박자로 적절히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이 지닌 내면의 리듬은 습관의 형태로 표출된다. 습관은 특정 행위를
되풀이하면서 저절로 익힌 행동 방식이다. <습관의 힘>의 저자 찰스 두히그에
따르면 우리가 일상에서 취하는 행동의 40%가 습관에 의해 결정된다.
운동 선수들이 초조할 때 마음을 추스르는 ‘루틴,routine’도 일종의 규칙적인
습관이다. 육체의 움직임에 자신만의 리듬을 얹음으로써 자신감을 얻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얻는 것이다.

산다는 건 반복의 연속이다. 도돌이표처럼 거듭되는 일상을, 그리고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는 일을 부단히 되풀이하면서 우린 세월 속을 헤맨다.
그러고 보면 글쓰기는 인생과 닮았다. 지난한 반복의 과정을 견딜 때 글과 삶은
깊어지고 단단해지니 말이다.
중국 송나라 때 문인 구양수는 글 잘 짓는 방법으로 ‘삼다,三多’를 꼽았다.
그 유명한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다.

<논어> ‘학이’편에 보면 “본립도생,本立道生”이라는 글귀가 실려있다.
“기본이 바로 서면 나아갈 길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는 것이다.
어느 분야건 밑바탕을 탄탄히 다져야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고, 나아가
더 넓은 길로 향할 수 있다.

글쓰는 노하우도 기술보다 습관에 가깝다. 때론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내 습관이 글을 쓰는 건지도 모른다. 습관이 스스로 미끄러지고 번지면서
내 삶의 여백을 진하게 물들이는지도 모를 일이다.

========================================================


오늘은 <언어의 온도>, <말의 품격> 등으로 독자들의 관심을 많이 받은 이기주
작가의 새로운 책 <글의 품격>을 함께 보았습니다.
언어의 온도, 말의 품격, 글의 품격 등 제목은 다 다르지만 그 줄기를 관통하고
있는 흐름은 익히 느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의 글은 일단 따뜻합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도
늘 글에 배어져 있지요. 또한 쓸모를 다해 버려졌거나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다고 합니다.
오늘 책에서도 드러나는 그의 글들은 그의 말처럼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느새
어루만져주고 있음을 알게 합니다.

글의 바탕은 삶이라고 합니다. 지극히 당연하겠지요. 우리가 사는 삶에서 생각이
나오고 감정이 나오고 이것이 글로 나타나는 것이니까요.
여기서 더 나아가 그는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이 나를 쓰는 것이 아닐까
라고도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그 사람의 말은 곧 그 사람 자체라고 하고, 말과 글은 서로 변화되어 나타날 수
있는 관계이지요.

그의 책들에서는 “격,格”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격’은 사전상 의미로
‘주위 환경이나 형편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분수나 품위’라고 합니다.
한 개인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느끼는 방식에 따라 ‘격’이나 ‘품’은 결정이 될
것이고, 격은 혼자서 쌓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또한 삶을 살아
감으로써 생겨난다고 하지요.

사람은 말을 함으로써 그 자신을 드러내고, 말에서 향기가 날 수도 있고 악취가
풍길 수도 있습니다. 문장도 그 글을 쓴 사람의 격과 품을 그대로 드러내지요.
즉, 글에서 향기와 악취가 다 날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렇다고 한다면 평소에 우리의 생각과 말과 글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그러한 격에
맞는 사고를 하고 행동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저자가 좋아하는 말 중 “좌우봉원”이 있고, “본립도생”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좌우봉원은 주변에서 맞닥뜨리는 사물과 현상을 헤아리면 근원과 만나게 된다는
말이었고, 본립도생은 기본이 바로 서면 나아갈 길이 저절로 생겨난다 는 말이
었습니다.
참으로 지혜롭고 통찰이 깃든 말이라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마주하는 모든 환경, 모든 사물, 모든 사람은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우리의 본보기가 되고 스승이 됩니다. 즉, 도(道)가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기본이 충실하다면 모든 일이 스스로 풀리게 되는데, 여기서
더 진행하여 “나아갈 길”이 저절로 생긴다고 하지요.

우리가 사는 일상은 늘 반복되기도 하고, 늘 새로운 사건들이 생겨나는 장(場)이 되기도
합니다. 글쓰기의 기본도 습관처럼 늘 가까이 하는 것이듯, 우리의 삶에서도 모든
성장이나 성과는 마음의 리듬, 습관에서 생겨날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평온한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