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문학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요한 볼프강 괴테 (1749-1832)가 한 유명한 말이다. 그는 독일 문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 렸으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같은 베스트셀러에서 <파우스트> 같은 대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도 폭넓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1808년 나폴레옹(1769-1821)이 괴테를 만나 다음과 같은 묘한 말을 남겼다. “여기도 사람이 있군.” 나폴레옹이 괴테를 자신에 버금가는 인물로 인정하여 남긴 최상의 찬사였다.
괴테는 174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서 태어났다. 왕실 고문관인 아버지와 시장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괴테의 아버지는 문학에 대하여 무척 흥미를 가져 아들인 요한이 글을 잘 썼으면 했다. 작문학교에서 괴테가 교사에게 높은 점수를 받으면 아버지는 이를 무척 기뻐했다고 한다.
★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풍족한 환경에서 자란 괴테는 자신의 꿈을 향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6세의 나이에 라이프치히 대학교에 입학하여 법학과를 졸업해 22살 때 변호사 사무소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법학보다는 글쓰기를 좋아하여 24세 때 문학에 발을 내밀고 다음해인 1774년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하나로 유럽에 유명세를 떨쳤다.
★ “하늘엔 별이 있어 아름답고, 대지에는 꽃이 피어 아름답지만 인간에게는 사랑이 있어 아름답다.”
괴테는 무수한 여인들과 사귀면서 사랑에 대한 많은 글을 남겼다. 괴테는 자신이 사귀었던 연인을 자신의 작품에 등장시키는 것으로도 유명 한데, 그 대표주자가 <파우스트>의 그레트헨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샤를 롯테였다. 그레트헨은 괴테가 십대 때 첫 눈에 반한 첫사랑의 대상이었고, 샤를 롯테는 괴테의 친구 아내였다.
★ 독일의 국민 시인 실러와의 교류
1794년 괴테는 프리드리히 실러(1759-1805)와 만났다. 그들의 만남은 독일 문학사상 중요한 사건이었다. 직관적인 괴테와 이념적, 분석적인 실러는 상호 이해하며 실러가 별세하는 1805년까지 친교를 이어갔다. 두 사람 사이에 교환된 서한은 독일 고전주의 문학의 가장 귀중한 자료로 남아있다. 괴테가 실러와 교제하는 동안 저술한 주요작품에는 교양소설 <빌헬름 마이스터 의 수업시대>와 <서사시 <헤르만 도로테아>가 있다. 또한 실러의 깊은 이해에 용기를 얻어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파우스트>를 재착수하였다.
<파우스트>는 2부작으로 이루어진 괴테의 희곡이다. 1부에서는 게르만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하여 파우스트 박사가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아 여러 가지 일들을 겪는 과정들이 담겼고, 2부에서는 서구문명 전통인 그리스적인 요소들을 이용하여 인간의 구원의 문제를 폭넓게 탐구하였다. 이 작품은 괴테가 60년에 걸쳐 완성한 필생의 대작이자 세계 문학 사상 최대 걸작 중 하나다.
★ “괴로움이 남기고 간 것을 맛보라! 고난도 지나고 나면 감미롭다.”
괴테는 만 82세까지 장수했지만 아들과 아내 모두를 먼저 여의었기 때문에 이를 늘 서글퍼했다. 10살 아래인 후배 실러와도 친구처럼 지냈는데 실러 에게 새해 연하장을 쓰던 괴테는 실수로 새로운 해를 마지막 해라고 잘못 써서 기겁하고 다시 연하장을 썼다. 하지만 괴테는 뭔가 느낌이 안 좋다며 실러를 걱정했고 예상대로 실러는 그해에 사망했다. 괴테는 실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 어쩐지 예감이 안 좋았어.” 괴테는 슬피 말하고는 조용히 서재로 들어가 홀로 울며 실러의 명복을 빌었다. 1832년 3월 22일, 그는 자신의 안락의자에서 눈을 감았다. 임종 당시 그의 곁을 지킨 식구는 과부가 된 며느리인 옷틸리에 폰 괴테와 손주들이었다. 괴테는 재산을 그녀에게 모두 물려주고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좀 더 빛을...... 좀 더 빛을....”
오늘은 셰익스피어, 소크라테스에 이어 괴테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보았습니다. 저자는 괴테의 명언과 함께 그의 인생을 전반적으로 알려주었습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고는 인생의 참맛을 모른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라는 말은 흔히 듣는 이야기인데 괴테가 한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괴테는 훌륭한 엘리트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고 평생을 풍족하게 산 복이 많은 인물입니다. 16세의 나이에 대학에 입학해 법학과를 졸업하고 불과 22세에 변호사 사무실까지 열었으니까요. 거기다가 프랑스가 침입했을 때 프랑스 대장이었던 백작에게서 프랑스어와 문학을 배우고, 이후에 평화로운 시기에도 평생 교류를 계속하였다고 하지요.
또한 문학에 뛰어나 작문 실력이 아버지를 기쁘게 할 정도였고, 법학에서 문학 으로 전향을 한 후 출간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전 유럽에서 화제가 됩니다. 그는 젊어서부터 만년까지 여성들이 늘 함께 하였는데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인들이 실제 자신이 만난 연인들이라고 합니다. 그의 인생에 등장하는 인물로 나폴레옹이 있는데, 나폴레옹은 괴테를 만나고는 “여기도 사람이 있군.”하면 최상의 찬사를 보냅니다. 또한 주둔군이 괴테의 집은 오히려 지켜 보호해 주고 괴테를 존중해 주었다고 하지요.
그렇게 복이 많은 괴테도 아들과 아내 모두를 먼저 여의게 되고, 독일의 국민 시인인 실러와의 교제도 실러의 죽음으로 끝을 맺게 됩니다.
괴테의 삶을 보면 좋은 집안에서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태어나고 사회 운도 좋아서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을 이어왔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는 슬픔도 겪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임종 때 한 말은 “좀 더 빛을... 좀 더 빛을...” 이었는데 결국 그렇게 장수하고 평생 많은 혜택과 세상의 복을 누린 천하의 괴테도 죽음 앞에서는 초라해지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힘든 여건에 있는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에 오늘 수백 년 전에 다녀간 현자인 괴테의 이야기를 통해 위안이 조금이나마 되었으면 합니다.
“괴로움이 남기고 간 것을 맛보라! 고난도 지나고 나면 감미롭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도 결국은 지나갈 것이고, 이런 어려움이 결국은 더 큰 복이 될지, 어려움 그 자체로 막을 내릴 지는 스스로의 태도에 달려 있음을 되새겨 보고, 모두 힘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