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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Dec 17. 2020

<북유럽 르네상스 플랑드르 미술 이야기>

<북유럽 르네상스 플랑드르 미술 이야기>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 6” 中

                                     해헌(海軒)    

오늘은 미술의 역사를 알기 쉽게 설명을 해놓은 입문서와 같은 책을
보려고 합니다.
저자인 양정무교수는 서울대학교 고고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미술사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이자 한국
예술연구소 소장으로 있습니다.

그는 ‘인문학의 꽃’으로 불리는 미술사를 우리 사회에 알리는 데 관심
이 많다고 합니다. 다양한 대중강연을 하고 있고, 저술활동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은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 4편을 가지고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오늘은 6편인데 플랑드르 미술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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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랑드르 르네상스

플랑드르는 오늘날 벨기에와 네덜란드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지평선을 따라 늪지대와
초목이 한없이 이어지는 낯선 풍경의 땅입니다. 놀랍게도 이 거친 땅에서 600년
전부터 수준 높은 미술이 쏟아져 나옵니다.
이 경이로운 미술 작품들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필적할 정도였고, 결과적으로 또 다른
르네상스의 기준이 됩니다.

미술사학계에서 북유럽 르네상스는 알프스 이북의 르네상스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플랑드르로부터 영국, 프랑스, 독일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지역을 아우르는데,
공교롭게도 이곳은 현대문명이 기틀을 잡은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프란다스의 개>라는 만화영화로 유명한 프란다스가 바로 플랑드르입니다.

★ 북해 교역의 중심, 플랑드르

이탈리아의 경우 지중해로 둘러싸인 이점을 이용해 지중해 무역을 주도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플랑드르 지역의 도시들도 중세 때부터 무역을 통해 부를 쌓았습니다.
플랑드르는 해안선이 북해를 면해 있습니다. 그런데 북해는 플랑드르뿐만 아니라
영국, 독일, 스웨덴 등으로 둘러싸여 있죠. 더 멀리로는 스칸디나비아반도, 러시아,
스페인, 베네치아를 넘어 아시아와도 연결되는 바닷길의 교통요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는 지중해 무역을 통해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진귀한 물건들이 우선 이탈리아로
들어왔어요. 이탈리아 상인들은 이런 귀한 물품을 유럽 전역에 되팔아야 했는데 위쪽에
거대한 알프스 산맥이 버티고 있으니 육로를 통해 북쪽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지중해와 대서양의 바닷길을 따라 크게 돌아서 플랑드르 지방까지 간 겁니다.
여기에 도착한 물품들은 북해와 발트해에 접한 유럽 각국으로 팔려 나갔지요.
이처럼 당시 플랑드르는 남부 유럽과 북부 유럽을 잇는 역할을 하며 중세 이후 눈부신
상업 발전을 이룹니다. 이 같은 경제적 성공은 이 지역 미술의 토대가 되지요.

★ 르네상스와 자본주의

플랑드르의 중심지는 브뤼헤였습니다. 지금은 자그마한 역사의 도시지만 1300년 경에는
인구가 약 5만 명에 이르는 유럽 대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같은 시기 파리는 20만 명이
훌쩍 넘었지만, 브뤼헤는 런던과는 비슷한 규모였습니다.
한창 때는 하루에 들어오는 배만 해도 1500대가 넘었다고 하고 유럽, 아프리카, 아랍에서
출발한 무역선이 몰려들어 늘 활기 가득한 국제도시였습니다.

브뤼헤의 테르 뷔르제 광장은 세계 최초의 증권 거래소가 열린 곳이고, 여기에서 환전,
은행업, 증권 거래부터 아직 도착하지 않은 물건을 팔고 사기로 미리 약정을 맺는 선물
거래까지 오늘날 금융가에서 이루어지는 업무가 역사상 최초로 진행되었던 곳입니다.
이 광장에 가시면 벤치에 앉아 “여기서 현대 금융이 시작되었구나.” 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경제 번영이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의 토대였습니다. 사실 르네상스는 자본주의와
떼놓고 보기 어렵습니다. 자본주의 시작점이 공교롭게도 르네상스 시기와 겹치기도
하고요. 산업혁명 이전에 이미 상업자본주의가 꽃피었는데, 15세기에는 브뤼헤, 16세기
에는 안트베르펜, 17세기에는 암스테르담이 계보를 잇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신교를
믿은 안트베르펜 상인들과 장인들이 탄압을 피해 신교도 지역인 암스테르담으로 이주
하고 상업주의의 주도권은 암스테르담이 쥐게 됩니다.

★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의 ‘스타플레이어’ ; 로베르 캉팽, 얀 반 에이크

북유럽 르네상스에서 로베르 캉팽과 얀 반 에이크는 스타플레이어 역할을 했는데, 이들은
이전 시기 그림과는 확연히 다른 놀라운 수준의 사실적인 그림을 그려냈습니다.
로베르 캉팽이 그린 제대화를 보면, 그려진 책은 글씨를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세밀하게
그렸습니다. 얀 반 에이크에 와서는 더욱 정교해지는데 브로치를 장식한 파란 보석과
진주에 어린 빛까지 표현해내고 황금실로 짠 천의 질감까지 나타납니다.

1400년을 중심으로 미술 재료에서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전에는 에그 템페라를
사용했지만, 얀 반 에이크는 최초로 유화로 그렸습니다. 유화, 즉 오일페인팅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용이 되었지요.
유화는 이전의 템페라에 비해서 장점이 많았고, 이런 유화 기법을 이용한 북유럽
회화가 크게 발전하자 이탈리아 화가들도 유화 기법을 배우고 싶어 했습니다.
시칠리아 출신 화가 안토넬로 다 메시나가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유화 기법을
썼다고 나옵니다. 메시나는 플랑드르로 가서 얀 반 에이크를 직접 만나 유화
기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 아르스 노바 (Ars Nova)

1420년대에서 1430년대에 북유럽에서 그려진 그림들을 아르스 노바, 즉 새로운
미술이라고 합니다. 도시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새로운 소비 문화가 만들어졌고
상인과 장인 등 제3신분이 등장해 시민사회가 형성되었습니다. 이 같은 일련의
변화는 ‘새롭고 정확한 미술’이 나오는 데 중요한 시대적 배경이 되었습니다.

또한 미술 재료와 미술 기법이 변화하면서 이 시기에는 얼마나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쓰는지가 좋은 작품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나무를 켜서 얻은 나무판인 패널에 그림을 그리는데 이탈리아는 포플러나무를
사용하여 조직이 무르고 습기에 약하며 잘 휘는 성질 때문에 표면이 울퉁불퉁해지는
경우가 많았고, 북유럽은 오크나무를 썼는데, 이는 단단하고 밀도가 높아 잘 뒤틀
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감에서도 과거에는 에그 템페라를 많이 썼는데, 달걀 노른자와 안료를 섞고
물로 농도를 조절했는데 빨리 마르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르면서 물감
층이 불투명해지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반면 플랑드르에서 개발된 유화는 기름을 섞어서 농도를 조절했고 마르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물감층이 반투명해 빛이 통과를 하였고 여러 번 덧칠해 색감과 명암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게 가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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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양정무 교수의 미술이야기 6권째를 같이 보았습니다. 저자는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다양하고 흥미로운 내용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늘 주제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이후에 북유럽, 특히 플랜더스 지방에서
이어진 르네상스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과거 어릴 때 만화영화로 “프란다스의 개”가 인기가 있었지요. 주인공 넬로와, 할아버지
그리고 파트라슈라는 덩치가 큰 개가 주연이었고, 이때의 프란다스가 오늘 언급할
‘플랜더스, 플랑드르’와 같은 말입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나 플랑드르의 북유럽 르네상스도 그 바탕은 경제적
풍요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르네상스의 중심지인 피렌체를 비롯한 이탈리아
여러 도시들은 지중해 중개무역으로 엄청난 부를 쌓았고 이러한 부가 예술을 뒷받침
하는 역할을 하였지요. 마찬가지로 플랑드르 지방도 동방에서 들여온 귀한 물품들을
지중해를 거쳐 플랑드르로 들어왔고 이후 다시 전 유럽으로 전파가 되었기에 이
지역은 큰 부를 누리게 됩니다.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여기에서 시작되었고, 환전, 은행업, 증권거래, 선물거래
등 현대적인 금융서비스가 이곳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예술은
어느 정도의 재정적 뒷받침이 있고 후원이 있어야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피렌체의 메디치가가 천문학적 후원을 하였기에 한 시기에 엄청난 천재들이 출연했지요.

아르스 노바라 불리는 새로운 미술의 시대는 플랑드르 지방에서 일어났고 이때는
굉장히 정확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이루어졌습니다.
플랑드르 미술의 대가인 얀 반 에이크의 그림들을 보면 너무나 섬세하고 절묘해서 마치
그림찾기 하듯 찾아야 하고 확대해서 보면 그 안에 숨겨진 내용들이 많습니다.

얀 반 에이크가 최초로 유화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유화는 이전의 에그 템페라에 비해
장점이 많았습니다. 이후 오히려 르네상스의 원조격인 이탈리아에서 유화를 배워가게
되지요. 새로운 재료가 새로운 미술을 낳았고 또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어 새로운
사조가 이어가게 됩니다.

플랑드로 미술의 최고 대가 중 한 명인 얀 반 에이크의 대표작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을 함께 올리니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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