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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Sep 08. 2016

<옛사람이 건넨 네 글자>

정 민

<옛사람이 건넨 네 글자>  정 민

                 강 일 송

오늘은 큰 울림이 담겨 있는 옛 글을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자인 정민교수(1961~)는 한양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고, 우리나라
대표적인 인문학자 중 한 사람입니다.

저자는 옛 시를 현대어로 옮기는 탁월한 감각이 있으며, 18세기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의 연구에 일가를 이루었습니다.
30여권의 저서가 있으며, “일침”,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
“다산의 재발견”, “한시 미학 산책”, “미쳐야 미친다” 등 많은 베스트
셀러도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캄캄한 세상에서 좌우명이 되고 앞길을 밝혀 줄 옛 글
사자성어 100편을 보여줍니다.
부제로 “생각을 잊은 인생에게” 라고 저자는 우리에게 네 글자의 지혜
를 건네주고 있습니다.

그 중 개인적으로 가슴에 와 닿는 몇 편을 올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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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락상평(苦樂常平)
   -- 고통과 기쁨을 나눠 평형을 유지하기

시도 때도 없이 들끓는 감정 조절이 늘 문제다.  기쁘다가 슬퍼지고 들떴
다가 이내 시무룩해진다.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고 괴로움은 늘 곁을 맴돈다.
만남이 기쁘지만 헤어짐은 안타깝다.  이 모든 감정을 딱 잘라 평균을 내서
늘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유배지의 다산도 이 같은 감정처리에 고심이 많았던 것 같다.
강진병영에 병마우후로 근무하던 이중협은 적막한 다산의 초당으로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한 번씩 떠들썩한 자리를 만들어 놓고 가곤 했다.
3년을 왕래하던 그가 풀 죽은 목소리로 “임기가 차서 곧 서울로 갑니다”
한동안 말이 없던 다산이 붓을 들어 글을 씁니다.

“즐거움은 괴로움에서 나오니 괴로움은 즐거움의 뿌리다. 괴로움은 즐거움에서
나오니 즐거움은 괴로움의 씨앗이다. 통달한 사람은 그 연유를 알아 성하고
쇠함을 헤아려 내 마음이 상황에 반응하는 것을 반대가 되게끔 한다.
그래서 두 가지의 기세를 나누고 줄이게 만든다.  마치 값이 싸면 비싸게
사들이고 비싸면 싸게 내다 파는 한나라 때 경수창의 상평법처럼 해서 늘
일정하게 한다. 이것이 고락에 대처하는 방법이다.“

다산의 말뜻은, 자네 있어 즐거웠고 떠난다니 서운하네.  그러나 그간의 
즐거움으로 오늘의 슬픔을 맞가늠하세나.  일렁임 없이 내 자네를 보내려네.
끝에 한마디를 더 보탰다.

“거센 여울과 잔물결이 섞여 물은 무늬를 이루고, 느린 각성과 빠른
우성이 어우러져 음악은 가락을 이루게 되지. 내 벗은 슬퍼하지 말게나.“

황황하던 마음이 이 한마디에 그만 가라앉는다.


◉ 송무백열(松茂栢悅)
-  벗이 잘되니 나도 기쁘다.

송광사 성보박물관에 “백열록(栢悅錄)”이라는 책이 있다. 
금명 보정(1861-1930)스님이 귀한 글을 필사해 묶은 책인데, 다산, 초의 등의
귀한 글들이 많이 들어 있다.

책 제목인 “백열”의 뜻이 퍽 궁금했다. 찾아보니 육기(260-303)가 “탄서부”에서
“참으로 소나무가 무성하매 잣나무가 기뻐하고, 아! 지초가 불타자 혜초가 탄식
하네“ 라 한 데서 따온 말이었다.

송무백열은 뜻을 같이하는 벗이 잘되는 것을 기뻐해 함께 축하해주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보정스님은 좋은 글을 보고 너무 기뻐 같이 보려고 “백열록”
으로 묶은 것이다. 

지금은 남이 잘되면 눈꼴이 시어서 험담을 하고, 남이 못되면 그것 봐라
하고 고소해한다. 우리는 사람을 너무 아낄 줄 모른다.  남의 경사에 순수하게
기뻐 얼굴이 환해지고, 남의 불행에 내가 안타까워 슬픔을 나누던 그 
도탑고 아름답던 송무백열의 심성은 다 어디로 갔나?


◉ 고구만감(苦口晩甘)
- 첫맛은 쓰고 뒷맛은 달다

이덕리(1725-1797)가 쓴 <동다기(東茶記)>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차에는 고구사니 만감후니 하는 이름이 있다.  또 천하의 단것에 차만
할 것이 없어 감초(甘草)라고도 한다.  차 맛이 쓴 것은 누구나 말한다.
차가 달다는 것은 이를 즐기는 사람의 주장이다.“

감귤은 알맹이가 달아서 감심씨, 즉 속 맛이 단 사람이라 했고, 차는
첫입에 맛이 쓴지라 입이 쓴 선생으로 고구사라 불렀다. 고구사가 차의 
별명으로 된 연유다. 

또 당나라 손초는 말하기를 차를 마시면 단맛이 뒷맛으로 오래 남는다. 
그래서 차를 의인화해 “늦게야 단맛이 나는 제후”라는 의미로 만감후
(晩甘候)라 불렀다.

차의 맛은 쓴가, 아니면 단가?  정답은 ‘첫맛은 입에 쓰고, 뒷맛은 달다’
이다.   입 속의 혀처럼 달게 굴다가 쓰디쓴 뒷맛만 남기고 사라지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사람도 차 맛과 다를 게 없다. 처음에 조금 맛이 쓴 듯해도 겪고 보면
길게 여운이 남는 사람이 좋다.


◉ 무덕부귀(無德富貴)
- 갖춘 덕 없는 부귀는 재앙이다.

한나라 때 하간왕 유덕은 귀한 신분이었음에도 높은 인품과 학문으로
모든 이의 존경을 받았다. 그가 죽자 헌왕(獻王“의 시호가 내렸다.
헌(獻)은 총명예지를 갖춘 사람에게 내리는 이름이다.

“덕이 박한데 지위가 높고, 아는 것이 적으면서 꾀하는 것은 크며, 힘이
부족한데 직임이 무거우면 재앙이 미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주역>에 공자의 말씀으로 나온다.

“덕이 있으면서 부귀한 사람은 부귀의 권세를 이용해 세상을 이롭게
하고 덕이 없으면서 부귀한 사람은 부귀의 권세에 올라타 제 몸을 해친다“
송나라 때 호굉(胡宏)이 말했다.

회남자 인간훈(人間訓)의 말은 또 이렇다.
“천하게 세 가지 위태로운 것이 있다.  덕이 부족한데 총애를 많이 입는
것이 첫 번째 위태로움이요,  재주는 낮은데 지위가 높은 것이 두 번째
위태로움이며, 몸소 이룬 공이 없는데 두터운 녹을 받는 것이 세 번째
위태로움이다.“

귀하게 나서 오냐오냐 자라고, 하고 싶은 대로 누리다 보니 교음실도 즉
교만 방자해져서 도리를 벗어나게 되는 것은 고금에 차이가 없다.
쌓은 덕 없이 부귀의 지위에 있는 것은 큰 불행이다.


◉ 가석세월(可惜歲月)
- 문득 돌아보면 곁에 없는 것

이덕무가 <세정석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천지간에 가장 애석한 것은 세월과 정신이다. 세월은 한정이 없지만
정신은 유한하다.  세월을 허비하면 소모된 정신을 다시 수습할 길이 없다.
대저 사람은 어린아이 적을 빼면 성장하여 어른이 되고, 어른이 되어서는
장가를 든다.  장가든 뒤에는 어린 자식들이 주렁주렁 눈앞에 가득하다.
어느새 남의 아비가 되어 잠깐 만에 터럭이 희끗희끗해진다.
마침내 손주를 안게 되자 늙은의 형세를 막을 길이 업다. 그제야 생각해
보노라면, 그 정신의 성쇠가 판연히 달라 마치 아득한 딴 세상의 일처럼
느껴진다. 평생을 돌이켜 보면 아무 이룬 것도 없다. 아무리 한숨을 쉬어
본 들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엊그제 어린아이가 불쑥 자라 어른이 되고 아버지가 되고 할아버지가 된다.
사람의 한평생이 실로 눈 깜빡할 사이다. 

“어찌 지내는가?” “그저 소일이나 하지 뭐”
일상에서 흔히 주고받는 얘기다.  소일(消日)은 날을 소비한다는 말이다.
아까운 시간을 그저 시간을 죽이고 날을 소비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어찌보면 참 슬픈 말이다. 그러는 사이 세월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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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을 네 글자의 성찰”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지금 막막하고 앞이 안보이면 뒤를 돌아보아야 한다고 선현들은 이야기
하였습니다. 과거의 옛 글에 이미 답이 나와 있는 것이지요.

인간이 세월이 흘러 많이 변한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과거의 인간과
지금의 인간은 크게 변한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글은 아직도 유효한 것이겠습니다.

100편의 사자성어 중 5편 정도를 골라봤습니다.
“고락상평”에서는 중용을 이야기하고 있네요.  슬픔과 기쁨, 즐거움과 
괴로움이 닥칠 때 일희일비 말고, 나누어 중용을 취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쉽지 않은 것이 인간의 감정이지요. 그렇지만 마음을 숯돌에 갈 듯이
열심히 닦다 보면 그 경지에 이르겠지요?

“송무백열”에서는 벗이 잘 되었을 때 진심으로 같이 기뻐한다는 내용입니다.
인간이란 본시 시기와 질투가 본능에 깊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나보다 잘 되거나 나은 것을 보질 못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친구란 마음으로
기뻐해 줄 수 있어야겠지요.

세 번째의 “고구만감”은 인간의 맛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품성을 맛으로 표현한다면, 처음에 달고 맛있어 보이지만 결국은
자기 이익만 차리는 사람들이 대다수라 보입니다.  반대로 진정 귀한 사람은
처음엔 쓰지만 나중에 단 맛이 오래가는 법입니다.
하지만 조금 비껴서 보자면, 처음에도 달고 뒤에도 단 것은 불가능할까요?
너무 달지는 않고 은근한 맛이 처음부터 끝까지 오래가는 사람이 가장 보석
같은 사람이 아닐까 생각을 해 봅니다.

네 번째 “무덕부귀”는 덕이 없는 사람의 부귀가 재앙이라고 이야기하네요.
쌓은 덕이 없이 부를 누리거나, 높은 직위를 누리는 것이 본인에게 해가
된다고 하는데, 달리 생각해 본다면, 덕이 없는 사람이 부가 없거나 낮은
지위에 있다고 더 나아질 것 같아 보이진 않습니다.
결국 핵심은 덕의 유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다섯 번째의 “가석세월”은 세월의 덧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기였는데, 금방 어른이 되고, 자식을 낳고 손자를 보면서 문득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는 것이 인생이라고 합니다.
문득 거울을 보면 마음의 나이와 실제 모습의 간극을 흔히 느끼게 됩니다.

오늘은 시간을 뛰어 넘어 지혜로운 선인들의 말씀을 들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은 긴 시간을 두고 살아남아
후대까지 전해진 옛 말씀에 이미 녹아 있다고 보입니다.

오늘 하루도 평안하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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