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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Sep 08. 2016

<시(詩)의 문장들> ❷

김이경

<시(詩)의 문장들> ❷   김이경
- 굳은 마음을 말랑하게 하는 시인의 말들

                      강 일 송

오늘은 우리의 굳은 마음을 말랑하게 만든다는 시(詩)의 문장들 두 번째 이야기
를 해보려고 합니다. 
첫 편에서도 나왔지만, 김이경 저자의 시의 문장을 선택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
과 함께 녹여서 풀어나가는 감성은 탁월합니다.

그는 독자로 하여금 세상의 숱한 상처로부터 딱딱해져 있는 마음의 거친 외면을
시의 공감으로 말랑하게 해제시켜 버리게 합니다. 
오늘도 그 몇 편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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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말이지, 사람들이 친절을 베풀면 마음에 저금을 해둬
시바타 도요, <약해지지마>, 지식여행, 2010

평생 고되고 험한 삶을 산 할머니가 아흔 살이 넘어 처음 시를 쓰기 시작했대.
아흔 여덟에 장례비로 모아 둔 돈을 털어 첫 시집을 냈는데 그게 무려 160만
부나 팔렸대.  
백 살이 넘어서도 매일 곱게 화장을 하고, “인생이란 언제라도 지금부터야.
누구에게나 아침은 반드시 찾아온다.“라는 말을 즐겨 한 멋쟁이 할머니
시바타 도요. 
그녀를 보고 알았어.  남들에게 받은 친절과 칭찬은 금세 잊어버리고 남들이
서운하게 한 것만 두고두고 저금하는 내 기억력. 아주 나쁘구나.
그런 못된 기억력으로는 절대 멋쟁이 할머니는 될 수 없겠지.


◉ 내가 모르는 일이 흘러와서 내가 아는 일들로 흘러갈 때까지 잠시
떨고 있는 일
 진은영, <물속에서>,<우리는 매일매일>, 문학과 지성사, 2008

“인생이 뭐야?”라고 누가 물으면 딱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모르는 일이 아는 일이 되어 흘러갈 때까지 떨고 있는 일이야.
그나저나 나는 좀 더 오래 이 물속에서 떨고 있어야 할 모양이다.
아직도 죄다 모르는 일뿐, 도대체 아는 일이 없으니.....


◉ 돌아보면 참 길게도 오만했다. 내 젊음은 하필 그때였단 말인가, 고
김형수, <젊음을 지나와서>,  문학동네, 1995

오래전 청춘을 지난 이들은 말한다. 화무십일홍이라, 열흘 붉은 꽃 없으니
젊음을 낭비하지 말라고.
하지만 기꺼이 오만하고 기꺼이 실패해도 좋을 때가 언제인가.
생애 단 한 번 마음껏 낭비할 수 있는 때가 청춘이 아니던가!
반성은 나중에, 청춘이 다 지난 뒤에 해도 된다. 그때 짐짓 깨달은 얼굴로,
화무십일홍이니 젊음을 낭비하지 마, 하고 잘난 척해도 된다.


◉ 세상은 사랑하기 좋은 곳, 이보다 더 좋은 곳을 나는 알지 못한다.
로버트 프로스트, <자작나무>

열한 살 때 아버지를 잃고 오 년 뒤 어머니마저 세상을 떴다.
갖은 노동을 하며 고학해서 시인으로 이름을 얻고 사랑하는 이와 결혼해
여섯 아이를 낳았으나, 첫아들은 여덟 살에 콜레라로 죽고 둘째 아들은 자살
했다. 그렇게 네 아이를 잃고 평생을 우울증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곁에 남은 것은 정신병원에 간 둘째 딸을 포함해 두 딸뿐.
그러나 시인은 말한다. 
이 세상은 사랑하기 좋은 곳이라고.
삶이 이런데 어찌 엄살을 피우랴.


◉ 이렇게 하루가 오고, 한 달이 가고, 한 해가 오고, 모든 한 살이들이
오고가는 것이거늘, 거기, 물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다시 결가부좌
트는 것이 보이느냐
이문재, <물의 결가부좌>,  동학사, 2007

젊어서 엄마는 귀신이 나오는 무서운 영화를 보고도 캄캄한 지하실로
연탄불을 갈러 가고 징그러운 가물치도 산 채로 끓는 물에 집어넣어서
나를 놀라게 했다.  늙어서 형제들과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도 슬픔에
몸져눕지도 않았기에 나는 엄마가 무정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연못을 두고 “물이 결가부좌를 튼다”라고 표현한 이 놀라운
시를 읽고서야 내가 틀린 걸 알았다.
스물네 살 때 엄마는 엄마의 엄마를 잃었다. 지독한 시집살이에 시달리던
어느 날, 어린애를 들쳐 업고 무작정 산소로 달려간 엄마는 그리운 엄마를
부르며 해가 지도록 울었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울음이 목까지 차오른 날, 엄마는 또 산소로 달려가서
울었다. 엄마, 엄마, 나 어떡해! 묏등에 얼굴을 묻고 얼마나 통곡했을까.
문득 엄마는 깨달았다. 그 뒤로 엄마는 혼자서 견뎠다.
엄마의 무정이, 삶을 뒤흔드는 바람에 맞선 유일한 몸짓 결가부좌였음을
오늘에야 알았다.


◉ 나보다 일찍 죽어요, 조금만 일찍      당신이 집으로 오는 길을 
혼자 와야 하지 않도록
라이너 쿤체, <당부, 그대 발치에> 열음사, 2005

지금은 사라진 베를린 장벽이 있던 때 이야기다. 
동베를린에 살던 라이너 쿤체는 시인이고 문학 박사였지만 정부의 탄압 때문
에 자물쇠공 보조로 일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는 끊임없이 시를 썼고
어느 날 그의 시가 서독 라디오에서 방송되었다. 
얼마 후 체코슬로바키아의 의사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왔다. 
체코슬로바키아, 서독, 동독을 거쳐 3개월 만에 도착한 편지. 그때부터 두 사람은
400통에 달하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웠다.
어느 날 시인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달라고 부탁했다.
두 사람 다 전화가 없었기에 편지로 약속한 날 시인은 친구의 집에서 전화를
기다렸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깊은 새벽, 벨이 울렸다.
“당신인가요?”
“그래요”
“나와 결혼해 주겠습니까?”
얼굴도 모르는 남자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여자에게 전화로 한 청혼.
여자가 대답했다.
“네, 그럴게요”
그렇게 맺어진 두 사람은 지금 아름다운 도나우 강가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다. 서로 나보다 조금만 일찍 죽으라고, 혼자 외롭지 말라고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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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시의 멋진 몇 문장을 함께 보았습니다.
좋은 시는 공감을 가져다 주네요.

시바타 도요 할머니의 시집은 저도 한 번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타인의 친절을 나의 저금통에 저금을 한다는 할머니. 
저는 거꾸로 평소에 내 주위 사람들 가슴에 있는 저금통장에 내가 친절과
선의를 베풀어 저금한다고 생각을 해왔답니다.  그게 많으면, 그 사람이 
나를 볼 때, 나의 어지간한 잘못과 실수도 너그럽게 볼 수 있거든요.

“내가 모르는 일이 흘러와서 내가 아는 일들로 흘러갈 때까지 잠시
떨고 있는 일“ 이게 인생이라 말합니다. 모르는 일이 아는 일로 바뀔 때까지
그 잠시가 인생이군요. 근데 그 잠시를 “떨고” 있어야 한다니.

그 다음 시에서 나오는 약간 오만해도, 조금 낭비해도 좋을 “청춘”은
사실 이러한 “잠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세상은 사랑하기 좋은 곳, 이보다 더 좋은 곳을 알지 못한다.”
이 말은 가장 여유있게 살고, 남들이 보기에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 하는 말이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이 세상의 고통과 슬픔은 다 가진 사람이었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그렇게 고통을 준 세상을 사랑하기 좋은 곳이라
말합니다. 
이전에 소개했던, “잇사”의 시가 떠오릅니다.

이 세상은
지옥 위에서 하는
꽃구경이어라
     - 잇 사 -

잇사는 쉰 세 살에 첫 아들을 얻지만 아이는 한 달 만에 죽습니다.
그다음에 태어난 딸은 천연두로 1년밖에 살지 못합니다.
두 번째 아들도 몇 달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이듬해 세 번째 아들을 낳던 아내는 세상을 떠나고, 아이도 숨을 
곧 거둡니다.   이 기간에 잇사는 뇌졸중으로 몸에 마비가 찾아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꽃구경이라 합니다.

다음 시의 결가부좌 튼 엄마의 인생이야기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애를 낳아 키우지만, 일찍 하늘나라로 간 엄마는
그립기만 합니다. 혹독한 시집살이에, 세상은 힘들기만 합니다.
울고 울고 또 울던 젊은 엄마는 견디고 견뎌서 강해집니다.

마지막 시를 보시지요.
요즘은 휴대전화, 문자, 페이스북, 카카오톡까지 지구 반대편이라도 금방
실시간으로 연결이 됩니다.  하지만 분단된 독일에 살던 시인은 3개월 
걸려서 사랑하는 사람과 편지를 주고 받습니다. 무려 400통이나.
그리고 기적같이 만나서 살아갑니다.
그런 그들이니.
서로 나보다 조금만 일찍 죽으라고, 혼자 외롭지 말라고 기원을 합니다.

아~~~
시는 참으로 힘이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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