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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Sep 06. 2016

<2016 신춘문예 당선시>

<2016 신춘문예 당선시>

                  강 일 송

오늘은 2016년에 당선된 신춘문예 당선작을 모은 시집을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춘문예(新春文藝)란 문학 지망생들이 각 신문사에서 시행하는 신춘문예 공모에
작품을 투고하고 권위 있는 심사위원들이 심사하여 당선작을 뽑는데, 상금보다는
당선된 사람이 문단에서 신인문학가로 인정을 해주는 데 더 큰 의의가 있다고
합니다.

1925년 동아일보에서 최초로 시행을 하였고, 그 이후 많은 신문사에서 시행을 
하고 있는데, 매년 1월 1일에 뽑게 됩니다. 
오늘은 올 해 신춘문예 당선작 중 개인적으로 2편 정도를 선택해 소개를 해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볼 작품은 시조작품으로 서울신문의 당선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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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위의 구두

        유 순 덕(1967~)

밤늦도록 소슬바람 별자리가 휘고 있다
모래폭풍 부는 방이 공중으로 떠올라도
심 닳은 연필을 쥐고 청년은 잠이 든다

도시 계곡 빌딩 숲을 또 감는 회리바람
도마뱀 꼬리 같은 추잉검만 질겅대고
수십 번 눈물로 심은 비정규직 이력서

윤기 나게 닦은 구두 구름 위에 올려놓고
조간신문 행간에서 술빵 냄새 맡는 아침
환청의 발걸음 소리 꽃멀미에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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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는 오래된 전통의 시의 양식입니다.
시조만의 정형화된 틀이 있지만, 흔히 시조는 형식에 “갇힌”게 아니라
형식을 “갖춘” 시라고 합니다.  운율이 있고 나름의 운치가 있습니다.

시인은 이 시조에서 수십 번 이력서를 써도 취직이 되지 않는 청년의 비애를 
다루고 있네요. 
요즘 “열정페이”라는 말로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지불하지 않는 세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드높습니다.

이 시에서 수십 번 이력서를 쓴 게 정규직도 아니고 비정규직 이력서라 합니다.
하늘엔 얼마나 바람이 소슬한지 별자리가 휘어질 정도입니다.
이력서를 눈물로 쓰고 있는 방안은 모래폭풍이 불고 있습니다.
이력서를 하도 많이 써서 연필의 심은 다 닳았고 쓰다가 청년은 곤하여 절로 잠이 듭니다.

도시의 빌딩 숲은 계곡처럼 스산하고 행여 합격하면 출근하려고 윤기나게
닦은 구두는 먼지라도 묻을까 구름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신문의 제대로 된 의미는 행간에 있다 하지요.  그 행간에서 향기로운 빵냄새
가 아니라 술빵냄새가 진동합니다.
잘 닦은 구두를 신고 출근하는 환각에 발걸음소리까지 들립니다.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일까요?
386세대는 대학 시절, 중간고사, 기말고사 다 거부하고 공부를 학부내내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졸업만 하면 대기업이니 공기업이니 떡떡 붙었었지요.
지금은 화려한 스펙에, 초중고 때는 수많은 과외에, 선행학습에, 봉사활동에
온갖 노력을 기울여도 취직이 벼랑끝입니다.

시를 비롯한 문학작품은 그 시대를 가장 잘 반영합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엣지 있는 작품으로 보입니다.

다음 시 한편 더 보겠습니다.
경향신문 당선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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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가 있는 골목
-  李箱에게    
             변 희 수(1963~)

아오?
의자에게는 자세가 있소
자세가 있다는 건 기억해 둘 만한 일이오
의자는 오늘도 무엇인가 줄기차게 기다리오
기다리면서도 기다리는 티를 내지 않소
오직 자세를 보여 줄 뿐이오
어떤 기다림에도 무릎 꿇지 않소

의자는 책상처럼 편견이 없어 참 좋소
의자와는 좀 통할 것 같소
기다리는 자세로 떠나보내는 자세로
대화는 자세만으로도 충분하오
의자 곁을 빙빙 돌기만 하는 사람과는
대화하기 힘드오 그런 사람들은 조금 불행하오
자세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는 사람들이오

의자는 필요한 것이오,
그런 질문들은 참 난해하오
의자를 옮겨 앉는다 해도 해결되진 않소
책상 위에는 여전히 기다리는 백지가 있소
기다리지 않는 질문들이 있소
다행히 의자에게는 의지가 있소
대화할 자세로 기다리고 있는
저 의자들은 참 의젓하오

의자는 이해할 줄 아오
한 줄씩 삐걱거리는 대화를 구겨진 백지를 
기다리지 않는 기다림을 이해하오
이해하지 못할 의지들을 이해하오
의자는 의자지만 참 의지가 되오
의자는 그냥 의자가 아닌 듯싶소
의자는 그냥 기다릴 뿐이오
그것으로 족하다 하오

밤이오
의자에게 또 빚지고 있소
의자 깊숙이 엉덩이를 밀어 넣소
따뜻하게 남아 있는 의자의 체온
의자가 없는 풍경은 삭막하오 못 견딜 것 같소
의자는 기다리고 있소
아직도 기다리오 계속 기다리오
기다리기만 하오

여기 한 의자가 있소
의자에 앉아서
보이지 않는 골목을 보고 있소
두렵진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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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부제처럼 이상(李箱) 시인에 바치는 시입니다.
“거울 속에는 소리가 없소/ 저렇게까지 조용한 세상은 참 없을 것이오”
라는 이상의 “거울”이라는 시의 말투를 차용해 쓴 시라고 합니다.

의자는 기다림의 미덕이 넘친다고 시인은 이야기합니다.
또한 자세가 딱 잡혀 있는데, 어떤 기다림에도 무릎 꿇지 않는 
강인한 의지가 의자에게는 있다고 합니다.

의자의 의지,  두 말은 비슷한 꼴입니다.
의자는 의젓하다고 합니다.  이 두 말도 비슷한 꼴을 가지고 있지요?
시에서는 이런 게 가능합니다.

의자는 또한 한없이 받아주는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피곤한 사람은 곧잘 빈 의자를 찾기 마련입니다.
최백호의 노래가 생각 나네요.
“서있는 사람은 오시오, 나는 빈 의자”

빈 의자는 품이 넓습니다. 힘들고 지친 사람을 차별 없이 안아 줄, 
큰 품과 오지랖이 넓습니다.

삶을 살면서, 의자처럼 품이 넓고, 오래 기다리게 해도 지치지 않고
언제든 품어 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인생은 항상 역지사지 인지라, 먼저 내가 의자처럼 되어 보아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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