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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Sep 10. 2016

<외식의 품격>

이용재

<외식의 품격>   이용재

                          강 일 송

오늘은 음식 이야기를 한 번 해보겠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음식평론가이자 건축 컬럼니스트인데, 평론가답게 약간 시니컬하고 
까칠한 면이 넘치는 글을 쓰고 있네요.

외식에 관한 근본 있는 교양에세이를 추구하는 그의 글을 
한 번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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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

한식 밥집에서는 이름처럼 밥이 성패를 가른다.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한 상
가득 반찬을 깔더라도 밥이 맛없으면 존재의 의미를 잃는다.
빵도 마찬가지다. 코스 내내 식탁을 지키는 빵이 맛없다면 다른 요리들도 빛이
죽는다. 

‘비움으로 채움’, 건축 바닥에서 받들어 모시는 문구다.  다소 관념적이지만
‘Less is more' 나 ’과유불급‘과도 비슷하다. 
빵도 그렇다.  밀가루보다 부재료가 더 많은 빵은 과유불급의 가짜다.
진짜 빵이라면 밀가루, 효모, 물, 소금의 기본 재료만으로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4대 재료의 비율에 따라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껍데기(crust)는 바삭하며
구수하고, 속살(crumb)은 물의 비율과 발효에 따라 쫄깃함과 부드러움 사이
어디에도 자리할 수 있다.  제대로 발효가 된 깊은 맛을 불어 넣으니 잼이나
버터, 올리브기름도 필요없다. 이런 게 진짜 빵이다.

쌀밥, 콩밥, 심지어는 옥수수밥도 있지만 밀밥은 없다.
알곡이 단단해서다.  밀은 그대로 익혀서 먹을 수가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가 제분이었다.
처음부터 발효로 부풀려 먹지를 못했기에 고대의 빵은 납작빵(flatbread)
였다. 인도의 차파티, 유대인들의 무교병 등이 이에 속한다.
이런 빵들은 역사가 3만 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발효빵은 그보다 훨씬
뒤인 기원전 4천 년부터 먹었다.  다른 음식처럼 발효는 자연에서 우연히
발견했을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밀가루는 희다. 도정과 분리를 통해 곡식의 몸통을 이루는 배젖
만을 가루 내어 만들기 때문이다.  부드럽고 매끈하지만 밀 특유의 향이나
영양소는 당연히 깎여 나간다.  물론 통밀가루도 있다.  
통밀가루는 흰 밀가루보다 까다로워, 일단 유통과 보관이 어렵다.
겨의 기름 성분이 금방 산패해 맛이 떨어진다. 
빵을 만들기도 훨씬 어렵다.  겨의 효소가 효모를 공격하니, 반죽이 잘 부풀
어 오르지 않는다.   밀가루를 미리 불리거나 자연발효종을 쓰는 등 손이
훨씬 많이 간다.

빵의 진정한 핵심은 “발효”이다.
발효의 1차 목적은 밀의 물성(物性) 극복이다.  단단하기 때문에 가루를 
내어 반죽을 만들었지만, 발효시키지 않으면 여전히 딱딱하다.
효모의 전분의 당을 먹고 이를 알코올로 바꾸는데,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를 내뱉는다.  덕분에 반죽이 부풀어 오른다.  빵 특유의 조직은 이런 공기
방울의 흔적이다.

발효할 때 공기에 버틸 만큼 탄성을 지녀야 터지지 않는데, 이를 책임지는
것이 단백질인 글루텐(Gluten)이다.  구운 빵의 쫄깃함이 글루텐에서 나온다.
그래서 밀가루에겐 단백질이 힘이다.
함유량이 높으면 힘이 세다. 이를 강력분이라 부르는데, 빵을 위한 밀가루다.
그 아래로는 중간이라 중력분, 힘이 없어 박력분이며, 각각 다목적용, 
부드러움이 생명인 케이크용이다.

갓 구운 빵이 맛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 헛된 믿음이다.
돌솥밥, 뚝배기 곰탕 등 너무 뜨거워 제 맛을 느낄 수 없는 음식을 생생하다
는 이유로 즐겨 먹는 우리식 문화가 가지를 잘못 친 경우다.
맛이 채 어우러지도 않을뿐더러, 온도가 높아 맛을 제대로 느낄 수도 없다.
따라서 완전히 식힌 뒤, 먹기 전에 다시 살짝 구워야 빵의 참맛을 즐길 수
있다.  통곡식빵이라면 구운 뒤에 아예 하룻밤 정도 묵히면 맛이 더 좋아
진다.


◉ 파스타와 피자

파스타(Pasta)는 이탈리아말로 밀가루 반죽과 물을 이용해서 만드는 이탈리아
의 국수요리이다. 파스타는 또한 면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원래 파스타는 철저히 면의 맛으로 먹는 음식이다. 소스는 오로지 거들 뿐이지,
면을 압도하거나 양을 늘리기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된다.
물냉면은 육수 맛, 비빔냉면은 다대기맛으로 먹는 등, 양념 맛으로 먹는 우리
면 음식과는 다르다.
그래서 “소스는 한 번 끼얹을 정도면 돼, 핵심은 파스타지 소스가 아니니까”
라는 말이 있다.

국물이 흥건한 파스타가 한국에서 대세인 이유는 우리의 국수 문화와 혼동하기
때문이다. 그 혼동 사이에서 태어난 돌연변이가 바로 코리안 파스타다.
짜장면, 칼국수, 메밀소바, 비빔국수 등, 우리는 부드러운 목 넘김을 기본으로
기분 좋을 정도의 씹는 맛, 또는 쫄깃함이 방점을 찍는다.
그래서 대부분 국물 위주고, 비벼먹는 종류라도 양념장이 최대한 국물에 가깝게
물기가 자작자작하며 촉촉하다. 

피자도 마찬가지다.
발효시킨 밀가루 반죽이니 피자도 결국 빵이다.
본래 피자는 진짜 단순하다.  반죽, 토마토, 모차렐라 치즈와 소금의 기본 재료에
바질 잎과 올리브기름 정도를 고명으로 얹는 게 전부다.
하지만 반죽의 발효상태, 소스나 치즈의 양, 오븐의 온도 등 어느 하나만 틀어져도
생기는 결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오늘날 피자는 곧 고명이다. 양과 가짓수가 갈수록 늘어만 간다. 고명의 
틈바구니 속에서 반죽은 점점 설자리를 잃는다.
반죽은 곧 발효가 중요한데, 발효가 뒷전으로 밀렸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발효는 시간을 먹고 맛을 자아내는 과정이다.
하지만 대량생산을 해야 하는 기업입장에서 너무 시간이 길어 수지가 안 맞는다.
결국 맛을 포기하고 모양을 잡는다.  어차피 대부분은 맛도 모른다.

★ 나는 “탑셰프”니 하는 요리 전문 리얼리티 쇼를 즐겨 본다.
요리 세계에서 일가를 이룬 셰프며 평론가들이 출연해 젊은 셰프들의 솜씨를
평가한다.  가장 먼저 평가하는 것이 완성도다.

음식마다 기준이 존재한다. 수프는 불지 않고는 입에 넣을 수 없을 정도로 뜨거
우면 안 된다.  뚝배기에 펄펄 끓는 육개장처럼 ‘어 시원하다’하며 입천정의 허물
이 벗어지도록 넘기는 음식이 아니다.
한편 튀김은 재료를 보호하기 위한 조리방식이므로 겉은 바삭하되 속은 부드러
워야 한다. 
그 단계를 넘어서야 취향을 논할 수 있다. 여기서부터는 진짜 주관적인 영역으로
접어든다.  

나는 바로 이 완성도와 취향의 사이에 정확하게 경계선을 그으려고 이 책을 
썼다.  우리를 슬프게 만드는 맛없는 음식의 그 “맛없음”은 결국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의미다. 

무엇이 문제일까, 결국 기준이 없는 게 문제다. 하지만 분명 기준은 존재한다.
관심을 기울이지 않거나 아예 부정하는 것이 진짜 문제다.
음식에 대한 이해를 늘리고, 우리의 생활수준보다 낮은, 먹고 마시는 데 대한
기본을 올려서 우리의 음식에 대한 마인드가 상향 평준화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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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음식에 대한 교양서적을 한 번 보았습니다.

요즘 인기 있는 직업이 셰프이고, 방송도 요리방송이 대세입니다.
온통 채널만 돌리면 먹방이 나옵니다. 
하지만 저자의 말을 들어본다면, 기본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음식이
너무나 많다고 합니다.

어디까지가 완성도와 취향의 경계인지를 알려주겠다고 이 책을 썼다고 
말하네요.
한편으로는 자기 입맛에 맞고 맛있으면 다된 것 아닌가.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자는 상세히 설명과 함께 조목조목 따져 줍니다.

어느 문화 영역이든, 외부에서 새로운 것이 들어오면 그 나라에 문화에 맞추어
저절로 동화되고 알맞게 변형이 됨을 자주 보게 됩니다.
종교도 원래 있던 기축 신앙에 맞추어 자리를 잡게 되고, 옷도 마찬가지이고
모든 공산품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에 차가 들어올 때는, 그 나라 기준의 딱딱하고 단단한 차체의 감성보다는
우리나라에 맞게 부드럽고 충격완화를 더 중요하게 세팅되어 오고, 차량음을 하
나의 중요한 자동차 특징의 일부로 여기는 문화도 한국에 오면 소음을 철저히
막는 쪽으로 바꿉니다.

마찬가지로 음식도 위의 글에 나왔듯이 한국에 오면 파스타가 국물이 흥건해
집니다. 이는 기호에 맞추어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변화일 것 같지만 저자는
원래 그 음식이 가진 기본을 무시하였기에 잘못 되었다 합니다.

어디까지가 기본이고 취향인지 그 경계를 나누는 것이 쉬워 보이지는 않네요.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밀가루의 분류나, 빵을 맛있게 먹는 방법, 파스타에
대한 내용 등 기초지식이 상승하여, 저자의 말대로 상향평준화가 된 느낌이 
드니 저자의  의도는 제대로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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