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헌 서재 Sep 12. 2016

<꽃이 없어서 이것으로 대신합니다>

유선경

<꽃이 없어서 이것으로 대신합니다> 유선경

                          강 일 송

오늘은 사람의 마음을 읽는 공감의 글로 사랑을 받고 있는 한 방송작가의
글을 보려고 합니다. 
1993년부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원고를 쓰고 있는데, 그의 글은 인기가 높습
니다.  섬세한 눈으로 또한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남다른 배려와 
공감의 글을 쓰기에 20년이 훌쩍 넘게 그만의 세계를 구축해 왔겠지요.

<출발 FM과 함께>에서 “문득 묻다”, “그가 말했다” 등의 코너를 진행했고
라디오 문학관, 문화포커스, 세계음악기행, 유열의 음악앨범 등 무수한 프로그램
에서 글을 썼다합니다.

한 번 보겠습니다.

------------------------------------------------------------

◉ 꽃이 없어서 이것으로 대신합니다.

무엇이든 다 주고 싶었고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줄 수 있는 것이 고작 마음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남자들은 사랑하는 여자에게 화려하고 예쁜 꽃을 선물하며 사랑한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도 그러고 싶었습니다. 

사랑하는 그녀에게 꽃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너무 가난해서
꽃을 살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  온 마음을 다해 꽃을 그립니다.  테이블 위에 놓인 화병에는 한 그루
버드나무처럼 가지가 한껏 늘어지고, 가지마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꽃, 빨간
하트들이 가득 피어납니다. 세상에 다시 없을 꽃, 생에 다시 없을 사랑,
남자는 그림 아래에 이런 문구를 적어 넣습니다.

꽃이 없어서 이것을 대신합니다.

그것은 구스타프 클림트가 평생의 연인 에밀리 플뢰게에게 준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하트 나무.  누구보다 화려하고 황홀하고 빛나는 그림을 그린 클림트
였지만 어린 시절은 집에 빵 한 조각 없을 정도로 궁핍했습니다.
두 사람은 결혼하지도 함께 살지도 않았지만, 30여 년 세월을 함께 했습니다.
클림트는 말년이 되면서 마침내 가난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그는 에밀리의 품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평생 클림트로부터 4백여 통의 편지를 받았고, 클림트가 세상을 떠난 후
한 통만 남기고 모두 불에 태웠습니다.  클림트가 보낸 선물 중 마지막 남은
하나는 가난했던 시절 받은 이 가난한 선물이었습니다.

“꽃이 없어서 이것으로 대신합니다.”


◉ 두고 보자니 모두 꽃이더라

고작 잡초 따윈데 뽑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나와 힘겨루기를 하는 것이 
뿌리를 움켜진 땅의 힘인지 뿌리의 힘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잡초라는 말이 걸립니다. 모르면 잡초고 알면 풀이고, 있어야 할 곳에 
있으면 풀이고 없으야 할 곳에 있으면 잡초입니다.

고려대학교 환경생태학부의 강병화 교수는 1984년부터 전국의 산과 들을 다니며
야생 들풀 1천 7백여 종을 모았고, 1991년에 야생자원식물종자은행을 설립했습
니다. 말이 좋아 들풀이지 흔히 말하는 잡초입니다. 
그러나 그는 엄밀한 의미에서 잡초란 없다고 단언합니다.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또한 잡초입니다. 상황에 따라
잡초가 되는 것이지요. 산삼도 원래는 잡초였을 겁니다.“

베어버리자니 풀 아닌 게 없지만
두고 보자니 모두가 꽃이더라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 아니라서 베어버리겠다고 마음먹고 쳐다보면 죄다 잡초로
보이는데, 가만히 두고 보니 거기에서 향기로운 꽃이 피더라는 얘깁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바쁘고 급해서 잡초에서 꽃이 필 때까지 가만히 두고 지켜보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아름다움이 각양각색으로 피어날 기회를 원천
봉쇄하는 것입니다. 

왜 내게는 별다른 재능이 없는 거지? 왜 신선한 일들이 생기지 않는 거지?
왜 나는 특별한 인연을 맺지 못하는 거야?  푸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건 자신의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들은 잡초처럼 무조건 베어내고 다른
사람들이 꽃이라 부르는 것들만 기르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닐까요?
그러나 “지켜봄”이 얼마나 큰 기적을 일으키는지 한 번이라도 경험한다면 자신의
눈이 얼마나 부정확한지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뜰 것입니다. 
한두 번 보면 알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을 나는 믿지 않습니다.
“봄”보다 “기다림”의 힘을 믿습니다.
기다림과 인내야말로 재능과 인연이 꽃을 피울 수 있는 가장 필요한 환경입니다.


◉ 잊지 말아요 당신도 우주의 먼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대화의 미덕이 아무리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데 있다고 해도 생각이 오로지
“나”에게만 사로잡힌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육체적으로 피곤하고 정신적으로
허무합니다. 
내가 소중한 것이 아니라 나를 소중하게 만드는 것들이 소중한데, 나를 앞세우는 
동안 그것들을 놓칠 수 있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합니다.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나”라는 것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잊지 말아요
수억 년 전 별이 폭발해 세상의 모든 걸 만들었어요
당신도 만물처럼 우주의 먼지가 이루어진 걸
잊지 말아요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 한 집시가 말한 대사입니다.
우리가 발로 밟고 있는 흙은 지구의 표면을 덮고 있던 바위가 수억 년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부서지고 또 부서져 생긴 가루입니다.
마음이 어지럽거나 슬플 때 흙을 밟으며 걸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차분해지는데
거기엔 수억 년의 세월동안 부서지고, 부서지고 또 부서진 것들이 주는 위로와
담담함이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생을 단 한 줄로 압축한다면 “먼지에서 먼지로”

강은교 시인의 시 <사랑밥>에서 배워봅니다.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자기 자랑, 자기 상처, 자기 연민으로부터 등을 돌리면 그곳에 가장 큰 하늘이
있습니다. 언제나 내 등 뒤에 있었던 다른 세상.
돌아서면 새로운 세상과 만날 수 있습니다. 

------------------------------------------------------------------------------

오늘은 오랜 시간 방송작가로 많은 글들을 써온 작가의 말을 들어보았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말이 있다."  "시간이 지나도 마음에
남는 말 한마디가 있다" 고 이야기하며 자신의 말을 합니다.

말은 가장 따뜻한 위로와 용기가 되기도 하지만 칼보다 더 날카롭게 마음을
베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을 그린 구스타프 클림트도 지독히도 가난한 시절이
있었나봅니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꽃을 선물할 돈이 없어서 그림을 그렸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 그림에 그는 그의 절절한 사랑을 그려 넣었습니다.
세상의 어떤 꽃보다도 더 아름다운 마음의 꽃을 넣은 것이지요.

그리고 세상에 잡초는 없다고 합니다.  필요에 의해서 있을 자리에 있으면
풀이고 있을 자리가 아닌데 있으면 잡초라고 불릴 뿐이지요.
잡초인줄 알았지만 무던히 기다려보니 아름답기 그지없는 꽃이 피었다는
이야기는 사람에게서도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도 기회가 닿으면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맺을 사람들인 것이지요.
기다림과 인내만이 이들을 꽃피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마지막 글에서는 인생이란 "먼지에서 먼지로" 가는 짧은 여행이라고 합니다.
인생은 사실 무척이나 짧습니다.  하루살이가 하루를 살고 떠나가는 것이랑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인류의 장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본다면 말이지요.
짧지만 짧지 않은, 귀하고 소중한 나만의 역사를 만들고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무슨 위인이 되라는 말은 아니구요, 
하루하루를 나만의 색깔로 페이지를 채워나가다 보면 그렇게 어느덧 되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