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과 사유의 힘에 대하여
<다시, 책은 도끼다> 박웅현
-- 관찰과 사유의 힘에 대하여
오늘은 우리 시대 최고의 광고카피라이터이자 인문학자이고 작가인 저자 박웅현(1961-)의 새로운 책을 한 권 보려고 합니다. 그는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사람을 향합니다>, <생각이 에너지다>, <진심이 짓는다> 등등, 수많은 명카피들을 생산해낸 특유의 감수성과 컬러가 확실한 작가입니다.
그동안 “책은 도끼다”, “여덟 단어”,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등의 베스트셀러가 있습니다. 오늘은 책은 도끼다의 후속편으로 나온 <다시, 책은 도끼다>입니다. 그중 “관찰과 사유”에 대한 내용을 한 번 보겠습니다.
우선 시집에서 발견한 한 문장을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새는 울고 꽃은 핀다
중요한 건 그것밖에 없다
정현종 시인이 이야기했죠.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중요한 건 그것뿐입니다.
이것과 비슷한 이야기를 나희덕 시인도 했어요.
바람은 마지막 잎새마저 뜯어 달아난다
그러나 세상에 남겨진 자비에 대하여
나무는 눈물을 흘리며 감사한다
<11월>이라는 시입니다. 정현종 시인과 나희덕 시인 이런 분들을 통해서 ‘아무것도 아닌 일에 주목하는 힘‘을 느낍니다. 그래서 어느 날 저도 노트에 몇 줄 적어놓았습니다.
늘 거기 있는 것을 주목해보아
또 하나 삶의 즐거움을 만드는 것.
그것이 나이 들어가는 것이더라.
잘 익어가자.
늘 거기 있는 것들, 미처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들에 시선을 주어 즐거운 것들을 점점 더 많이 만들어가야겠구나, 그것이 잘 익어가는 것이겠구나 생각합니다.
<곽재구의 포구 기행>을 읽다보면 남도 땅에 가고 싶어집니다. 사실 저는 남도를 좋아해서 강진, 해남, 곡성, 순천, 보성, 벌교, 다산초당 다 돌아다녔어요. 그런데도 책을 보고 나면 ‘아, 이거 내가 놓쳤구나’ 합니다. 이 책은 곽재구 선생이 자신의 지역을 다니면서 쓴 이야기들입니다. 그냥 보면 별 것 없는 풍경입니다. 그런데 시선이 고운 곽재구란 사람이 본 풍경은 다릅니다. ‘이 사람의 시선은 정말 곱구나’라고 느꼈답니다.
시인이 어느 봄날 남도의 반월이라 불리는 반달마을 입구에 핀 도라지 꽃밭을 보고 있었대요, 그때 이역에서 온 듯한 아낙이 멈추어 서서 “꽃이 예쁘오?” 하더랍니다. 그래서 “이쁘오” 했대요. 그런데 사실 그때 시인은 ‘도라지 꽃도 예쁘지만 댁도 참 예쁘오“라고 말할 뻔했답니다. 그리고 아낙이 사라진 뒤 여운이 남은 길을 원고지 삼아 <바닷가 마을>이란 시를 지었대요. 그리고 말합니다.
대저 시란 무엇인가? 마을 입구에 도라지 꽃이 피고 하늘에는 하얀 달이 흐르고
이역에서 온 아낙네가 땀을 내 일하다 잠시 멈춰 서서 꽃이 참 이쁘오! 라고
말하니 그 순간이 바로 시의 순간 아니겠는가?
곽재구 시인의 문장들을 더 건져 올려 보겠습니다.
나란히 누워 서로의 살갗을 부비는 집들, 담장들, 빤히 들여다보이는 이웃들의
꿈, 가난, 숨결들
눈앞에 걸어야 할 길과 만나야 할 시간들이 펼쳐져 있는 사실만으로
여행자는 충분히 행복하다.
새들은 길 위의 내게 음악에 대해서 얘기해준다.
갈매기들은 이쁜 소의 눈을 하고 있다. 그들이 꾸는 꿈의 정갈함 탓이다.
배들의 이름에는 선주들의 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선주들은 자신의 배에 어린 시절 고향 동리의 이름을 새기기도 하고
젊은 날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의 이름이나 술 이름을 적어놓은 로맨티스트도
있다. 먼 이국의 항구 이름을 따오기도 하고...
그 이름들의 의미를 다 모아놓으면 그것이 그대로 한 포구가 지닌
그리움의 실체가 되리라.
짧은 길을 긴 시간을 들여 여행한 사람은 경험상 행복한 사람입니다.
신선이 노닌다는 그 섬의 백사장을 처음 본 순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맑고
넓은 원고지를 생각했다. 햇볕이 충분하지 않았지만 모래들은 빛났고
파도소리들은 푸르렀다.
삶이란 때로 상상력의 허름한 그물보다 훨씬 파릇한 그물을 펼 때가 있다.
꽤 많은 바닷가를 지나온 적이 있지만 파도소리가 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나는
느낌을 받은 것은 처음입니다.
콩들은 밥으로 떡으로 갈 것이고 콩깍지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언저리로
갈 것이다.
살아있음이란 내게 햇살을 등에 얹고 흙냄새를 맡으며 터벅터벅 걷는
일입니다.
이 글을 보고 저는 '나이가 한 살 더 든다는 건, 봄을 한 번 더 본다는 것'이라고 썼습니다. 삼십이 되면 달라질 것이다. 오십이 되면 어떤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없어요. 똑같아요. 살아보니 말이에요. 곽재구 시인의 글에는 이렇게 삶이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 것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문장들이 참 많아요.
다음은 김사인 시인의 시를 좀 보려고 합니다. 김사인 선생이 자신의 시 읽는 방법을 쓴 글이 있는데 그중 가장 좋았던 문장이 다음 문장입니다.
사랑이 투입되지 않으면 시는 읽힐 수 없다. 마치 전기를 투입하지 않으면
음반을 들을 수 없는 것처럼.
사랑을 투입해야 시가 읽힙니다. 나를 일으켜 세워서 그 상황 속에 나를 집어넣을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게 사랑의 투입입니다.
오늘은 박웅현의 '다시 책은 도끼다'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그는 수많은 멋진 광고 문구들을 생산해냈습니다. 감성으로 입혀진 그의 광고 문구들은 여타 글들과는 확실히 차별화됩니다.
차별화된 문구를 만드는 사람은 스스로가 차별화되었기에 가능했을 겁니다. 그의 책을 보면, 그는 독서로, 깊은 사유로 자기만의 감성의 세계를 구축하였고 이것은 온전히 그의 창작물에서 드러납니다. 오늘은 그중 시읽기를 통한 관찰과 사유의 장을 같이 보았습니다.
곽재구 시인과 김사인 시인의 글을 그는 참 좋아합니다.저도 개인적으로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를 좋아해서 자주 읽고 또 소리내어 낭독도 했었습니다.
먼저 그는 정현종 시인의 글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새는 울고 꽃은 핀다
중요한 건 그것밖에 없다
새는 울고 꽃은 핍니다. 자연의 흐름이지요. 이 자연의 흐름에 인간은 개입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을 수용하는 것이 삶입니다.
곽재구 시인도 말합니다.
살아있음이란 내게 햇살을 등에 얹고 흙냄새를 맡으며 터벅터벅 걷는
일입니다.
시인은 인생을 특별히 포장하지 않습니다. 꾸미지도 않습니다. 그냥 햇살을 등에 얹고 땅의 냄새를 맡으며 걸어가는 것이 인생인데, 소풍가는 아이처럼 날아갈 듯이 걷는 것이 아니라, '터벅터벅' 걷는 것이라 합니다. 천상병 시인은 누구보다 힘들고 어려운 인생을 살았지만 이 세상을 떠날 때 '소풍' 한 번 잘 다녀간다고, 이 세상이 참 아름다웠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세상이지만 바라보는 시각과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른 것이 당연하지요. 하지만 두 사람 다 밑바탕에는 삶에 대한 애정이 녹아 있는 것이 닮았습니다.
박웅현은 또 다르게 이야기합니다. '나이가 한 살 더 든다는 건, 봄을 한 번 더 본다는 것'이라고 말이지요. 곽재구 시인의 바라봄과 일치합니다. 삼십이 되어도 오십이 되어도 똑같다 합니다. 그래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통찰을 얻었겠지요.
어촌 마을을 찾아 간 곽재구 시인은 마을의 풍경을 보고 이렇게 썼습니다. '나란히 누워 서로의 살갗을 부비는 집들, 담장들, 빤히 들여다보이는 이웃들의 꿈, 가난, 숨결들' 집들은 나란히 살갗을 서로 부비며 함께 누워 있습니다. 산토리니 섬의 파란 지붕에 하얀 벽을 가진 멋진 집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함께 가난을 나누고, 숨결을 나누며 정겹게 함께 있음을 시인은 바라봅니다.
김사인 시인은 시를 읽을 때, 사랑을 투입하라고 합니다. 마치 전기 콘센트를 꽂아 전기가 흘러야 음반을 들을 수 있는 것처럼. 건조한 감성으로는 시가 읽히질 않겠지요. 그 사람 입장에서, 공감하고 이해할 때 비로소 시는 살아서 가슴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이제는 박웅현이 왜 그렇게 감수성이 뛰어난 명카피들을 만들어 냈는지 어느 정도 감이 오시지요? 인문학적 성찰과 문학적 감성을 스스로 끊임없이 갈고 닦고, 세상과 공명이 되어 온 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의 말처럼, 평범하고 늘 반복되는 일상에 새로운 시선을 주어, 즐거움을 만들어 내는, 그렇게 잘 익어가는 하루를 만들어 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