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빅 퀘스천" 중
<인간은 왜 유명해지고 싶어 하는가> 김대식
김대식의 “빅 퀘스천” 中
강 일 송
오늘은 뇌과학자인 카이스트의 김대식교수의 “빅 퀘스천”중 한 가지 내용을
보려고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유명해지는 것을 바라고, 이미 유명해진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저자는 기원전 356년의 한 방화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당대의 최대 건축물이었던 아르테미스 신전은 103미터가 넘는 길이에 18미터
높이의 초대형 건축물이었습니다. 대리석으로 지어진 첫 그리스 신전이기도
하였고, 처음으로 인간에게 고의적으로 ‘살해’된 건물이었습니다.
에페소스의 청년이 신전에 불을 지른 것입니다. 시민들에게 방화범은
말합니다. 돈도, 권력도, 증오도 아니었다고, 다만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남기고 싶었다고, 다른 인간들처럼 세상의 기억에서 잊혀지기 싫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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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유명해지고 싶은 것일까?
원시시대에, 인간은 단단한 피부나 공격할 날카로운 이빨이 없었기에
집단생활을 통해 서로 협력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집단에는 계급이 있고, 계급이 높을수록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최고 권력자는 가장 좋은 것을 먹고 원하는 여성들과 자식을
가질 수 있다. 나머지 구성원들은 최고 권력자의 행동을 잘 파악해야 한다.
그가 웃으면 안심해도 되지만 화를 내면 바로 긴장해야 한다. 마음에 안 들면
내 숨통을 끊을 수도, 나를 집단 밖으로 몰아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락한 동굴이나 마을에서 쫓겨난 인간이 며칠이나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리스인들은 그래서 사형보다 오스트라키스모스(ostrakismos), 즉 도편추방
을 더 두려워했다.
인간 사회는 유명인가 무명인으로 나뉜다. 힘, 노력, 재능, 운 덕분에 내 행동
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내가 관심 주는 사람보다 더 많다면, 나는 공동체의
주인공이며 사회적 강자이다.
“커서 뭐가 되고 싶어?”라는 질문에 대부분 아이들이 “유명해지고 싶어요”
라고 대답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유명해지고 싶다”라는 희망은 사실 “살아남고 싶다”라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기 때문이다.
힘이 있는 사람은 대개 유명하다. 하지만 유명하다고 항상 힘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아르테미스 신전 방화범은 사형을 당했고, 비틀즈 멤버 존 레논을
살해한 마크 채프먼은 여전히 감옥 안에 있다.
유명 연예인에 집착하는 것이 우리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될까?
유명인의 사생활을 모른다고 공동체에서 추방될 리 없고, 아이돌에게 집착
한다고 명예와 부가 내게 오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다른 해석을 해봐야 한다.
우리가 유명인에게 집착하는 것은 그들을 통해 세상과 나의 삶이 설명되기
때문이다.
세상은 언제나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갑자기 숲에서 나타난 맹수에 가족이 끌려가고, 하늘에서 쏟아진 비에 온
세상이 바다로 변하기도 한다. 어제까지 뛰어다니던 아이가 피를 토하고
쓰러져 더 이상 숨을 쉬지 않고, 먹을 것이 풍성하던 세상이 꽁꽁 얼어버려
굶어죽기도 한다.
불확실함은 우리를 두렵게 한다.
최초의 인간에게 우주는 카오스였다. 원인과 이유가 없는 ‘참을 수 없는
무질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 획기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석기시대의 아인슈
타인이라고 할까. 만약, 너, 나 우리들 이외에 다른 존재가 존재한다면?
천둥은 아버지 같은 하늘신의 노여움이라면? 바람은 세상 끝에 사는 거인들
의 거친 숨소리라면?
이해할 수 없었던 자연 현상 하나하나에 보이지는 않지만 익숙한 존재들을
연결시키는 순간 무질서의 카오스(chaos)는 질서의 코스모스(cosmos)로
변한다. 천둥은 이해할 수 없지만 아버지의 노여움은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
이다. 하지만 왜 하늘신은 노하는 것이고 바다신은 무엇 때문에 태풍을
만드는 것일까?
해답은 하나뿐이었다. 신들에게 인간과 동일한 동기를 부여하면 된다.
제우스는 예쁜 여자만 보면 정신 못 차리는 늙은이고, 포세이돈은 큰형에게
기죽어 사는 만년 둘째다. 올림푸스의 신들이야말로 막장드라마에 출연한
연예인 같은 존재였고, 그들에 대한 소문과 관심을 통해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만의 코스모스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만물의 원인을 설명하는 방식은 다양했다. 그런 점에서 고대 이집트
왕 아크나톤(Akhnaton)은 어쩌면 인류 최고의 혁신자였는지 모른다.
그는 선포한다. 우주에는 단 하나의 신만 존재한다고. 뱀, 늑대, 사람을 닮은
수백, 수천의 신들이 아닌 태양신 ‘아톤’ 하나뿐이며, 만물의 모든 원인이
바로 그 유일신에게 있다고. 자신의 이름을 아톤의 종, 아크나톤으로 바꾼
그는 우주의 모든 질서를 단 하나의 존재만으로 설명하려 했다.
단 하나의 존재를 통해 만물의 질서를 받아들이기에는 인간의 두려움이
너무나 컸던 탓일까? 아크나톤의 기억은 이집트 역사에서 지워지게 된다.
양자우주론과 진화론이 만물의 원리를 설명할 수 있다고 해도, 인간에게는
커다란 질물 하나가 남아 있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현대 과학이 제시하는 코스모스식 질서는 대부분 사람들이 느끼는 내면의
카오스에 아무런 답을 줄 수 없는 듯하다.
하지만 배경인물에 불과한 우리와 달리 유명인은 사회의 강자이며 공동체
의 주연급 인물이지 않은가? 어쩌면 그들의 삶을 통해 내 삶의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이 불안한 내 맘의 코스모스가 되어 줄 수 있지 않을
까? 결국 우리는 인생의 주인공 같아 보이는 타인의 삶을 통해 아무리
노력해도 여전히 하찮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삶을 설명하려 하는지도
모른다.
방화범을 처형한 에페소스 관리들은 결정한다.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고 신전에
불을 지른 그의 이름을 인류의 기억에서 영원히 지워야 한다고.
하지만 역사의 아이러니는, 에페소스 관료 그 누구의 이름도 우리는 모르지만
방화범의 이름은 잘 알려져 있다. 헤로스트라투스(Herostra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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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김대식 교수의 “빅 퀘스천” 중 왜 인간은 유명해지려고 하는가, 에 대한
고찰을 같이 보았습니다.
김교수는 그에 대한 의문의 고리를 원시 시대까지 거슬러 갑니다.
과학적인 지식의 부재로 인해, 원시인들의 삶은 너무나 불안하고 위협 투성이
입니다. 맹수가 나타나 가족을 끌고 가버리고, 잘 뛰어놀던 귀여운 아이가 갑자기
아프면서 세상을 떠나기도 합니다. 태풍이 몰아닥치고 천둥 번개가 치면 세상이
끝날 것처럼 두렵습니다.
이런 카오스적인 불안한 세상을 완전한 질서가 지배하는 코스모스로 변화시킨
것은 의인화된 신들의 등장입니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처럼 인간과 비슷하게
연애하고 싸우는 철없는 신들도 있고, 태양의 신 아톤처럼 전지전능한 유일신도
있습니다. 비로소 인간들은 안도합니다. 자연의 무서운 재해는 신들의 노여움
때문이고 그를 해소하기 위해 희생제물을 바치고 신을 위한 의식을 행합니다.
유명해지면 사회적 강자가 되어 카오스적인 불안감이 해소되어 사람들이 그들을
따르고 집착한다는 김교수의 주장은 사실 과잉해석된 측면이 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원시인들이 느꼈던 카오스적 불안감은 비록 과학적으로 현대인들이 자연
의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하더라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음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은 과학이 다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또한 인생의 주인공 같아 보이는 유명인의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을 설명하려
해도 여전히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인간의 뿌리 깊은 카오스적 불안감, 그리고 이것에 대한 해답을 찾는 인류의
기나긴 여정. 이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지는
하루가 되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