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원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이석원
-- 이석원 산문집
강 일 송
오늘은 산문집 하나를 보려고 합니다.
저자인 이석원(1971~)은 산문집 <보통의 존재>,2009, 와 장편소설 <실내
인간>,2013, 을 발간한 적이 있는 작가입니다.
그의 글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솔직하다고 합니다. 아주 일상의 보편적인
소재를 가지고 탁월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그의 글은 따뜻합니다.
오늘은 그의 산문집 구석구석에 작가의 감성이 담긴 짧은 글들을 모아서
공감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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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온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굳이 복습하지 않고
다가올 빛나는 순간들을 애써 점치지 않으며
그저 오늘을 삽니다.
◉ 마음
홀씨처럼 둥둥 떠다니다
예기치 못한 곳에 떨어져 피어나는 것.
누군가 물을 주면
이윽고 꽃이 되고 나무가 되어
그렇게 뿌리내려 가는 것.
◉ 친밀감
좋아하는 것보단
싫어하는 게 비슷할 때
더욱 강하게 드는 것
◉ 당신의 인생은 대체로 공평했습니까?
나는 거의 매일 일기를 쓴다. 어른이 되어서도 십오년쯤 되었다.
어제는 심심해서 한 오륙년전의 일기 이년 치를 읽었다.
읽다보니 그 이년 동안
내게 수많은 크고 작은 행운과 불행이 있었는데
불행이 단지 불행으로 끝나지 않고
뜻밖의 행운과 즐거움을 가져다 준 것이
무려 열한 번이었다.
낯선 곳에서 길을 잃어 짜증을 내며 헤매다
보석 같은 찻집을 알게 되었을 때,
파티 같은 건 체질에 맞지 않는다며 사양하다
억지로 끌려 나간 자리에서 새 친구를 사귀게 되었을 때,
생일마다 찾는 부산의 한 호텔에 방이 없어
하는 수 없이 묵게 된 다른 곳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해운대의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별다른 이유 없이 꺼려하던 어떤 사람과 인터뷰를 하느라
어쩔 수 없이 대면하고선 그 사람이 베풀어진 호의로
무려 석 달 치의 생활비를 벌게 되었을 때...
이년 동안, 언뜻 불행인 줄만 알았던 그 열하루는
실은 내게 행운의 날이었던 것이다.
게임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님을...
◉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은 세계와 세계가 만나는 일.
그래서 나는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의 세계가 넓길 바란다.
내가 들여다볼 곳이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눌 수 있는 것들이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니 상대의 입장에서 내가 품은 세계는
면적이 얼마나 되는지도 한 번쯤 생각을 해봐야 한다.
◉ 서점
평생을 드나들었어도
나를 알아보는 이 하나 없고
나 또한 얼굴을 익히고 있는 사람 하나 없는 곳,
그래서
내가 누구든 상관없이 맘 편히 찾을 수 있는 곳.
만원 안짝이면 원하는 것을 하나쯤 손에 넣을 수 있고
누구도 다급하게 이 책 좀 사라고 소매를 잡아끌거나
막판 떨이 70% 세일이라며 확성기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치지 않아 좋은 곳.
나는 오늘도 서점엘 간다.
일이 있어도 가고 없어도 간다.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도 가고
책을 사기 위해서도 가고
그냥 야채김밥이 먹고 싶어서도 간다.
나는 서점에 간다.
◉ 운 명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얘기가 안 끊어진대요.“
그럼, 내가 평생 읽을 책 같은 사람을 만나면 되는 건가?
◉ 케이크가 맛있는 신사동 어느 카페에서
다 먹고 계산을 하는데 종업원이
“저, 발레 하셨죠?” 하고 물어서 순간 당황한 이유는
그날 내가 몸에 딱 붙는 바지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단지 발렛 파킹을 했냐고 물어본 것뿐인데
난 혼자 무슨 생각을 한 걸까.
◉ 난 갈수록 사랑을 모르겠어. 어딘가 고장난 걸까.
고장 아니야, 하면 할수록 더 모르게 될 걸.
◉ 제발... 모든 걸 다 안다는 듯한 그런 표정 좀 짓지 말라고.
정말 그런 것 같아서 두려워지잖아.
◉ 내가 어울리는 사람들의 질은
100% 내가 결정한 것
누구 탓을 할 필요가 없다.
그게 마음에 안 들면 좀 더 열심히 살아 보든가
◉ 인간은 결국엔 혼자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혼자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의 질이 결정된다고 봤을 때
책의 가장 위대하고도 현실적인 효용은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람들과 있을 때 못지않게
때로는 그보다 더욱 풍요로운 순간으로
만들어준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쉽게 말해
바로 이런 순간에
책을 읽어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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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글을 보자면, 따뜻한 감성과 번뜩이는 재치가 함께 버무러진 글이라
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의 프로필도 1971년 서울 출생 외에는 밝히질 않고, 그것이 전부라고
합니다. 더 내세울 것도 더 알릴 것도 없고, 오로지 자기 글로서 이야기하고
싶다는 것이겠지요.
'마음'이란 글이 참 마음에 듭니다.
홀씨처럼 떠다니다가 예기치 않은 곳에 떨어져, 누군가가 물을 주면 비로소
꽃이 되고 나무가 되어 피어난다고 하지요.
작가는 오랫동안 일기를 써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 일기를 들여다 보다가
느낀 소감이 공감이 됩니다.
당시에 불행이라고 여겼던 에피소드들을 모아서 다시 그 뒤의 일까지 연결
해보니 전혀 예상과 달랐던 것이지요.
길을 잃었는데 보석같은 찻집을 발견합니다. 억지로 간 파티에서 좋은 친구를
얻습니다. 예약이 안 되어 어쩔수 없이 간 숙소에서 전혀 새로운 풍경을 봅니다.
싫어하던 사람과의 인터뷰로 인해 무려 석달치의 생활비를 벌기도 합니다.
불행의 얼굴로 온 일들이 사실은 행운이었던 셈이지요.
그러니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지금 나한테 좋지 않은 일이 왔다면
도대체 얼마나 좋은 일이 오려고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고 오히려
거꾸로 기대를 한번 해볼까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은 세계와 세계가 만나는 일이라 합니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에서도 말하지요.
"사람이 온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의 과거와 현재, 그의 미래가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저자는 나한테 오는 그 사람의 세계가 넓길 바라고, 그러기에 나의 세계의
면적이 넓은지도 살펴보자고 합니다.
작가답게 저자는 서점을 좋아하고 자주 가나봅니다. 일이 있어도 가고 없어도
가고 그냥 야채김밥 한 줄을 먹으러도 간답니다. 그러니 책이 일상화되어
있는 것이지요.
마지막 글에서 책은 혼자 있는 시간에 읽으라고 합니다. 혼자 보내는 시간에서
삶의 질이 결정이 되는데, 책 읽는 일이 가장 적격이라고 하네요.
내가 살고 있는 사람들의 질은 100% 내가 결정한다고 합니다.
그 말은 역으로 사람들과의 만남은 유유상종이기에, 나의 질을 높이면
다 해결이 되겠지요.
좋은 생각 많이 하고, 책 많이 보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