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릴 때마다 시를 외웠다> 문길섭
강 일 송
오늘은 시집 한 권을 보려고 합니다.
저자는 시를 너무나 사랑해서 시낭송을 늘 즐기는데 무려 천 편의 시를
외우고 있다 합니다. 혼자서 외우다가 이를 권하는 운동까지 발전하여
시암송국민운동본부를 2006년 세우고 휴대용 시선집도 보급하고 있다고
하네요.
오늘 그가 모은 시의 모음 중 몇 편 골라서 나름의 감상을 곁들여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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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마을을 지나며
김 남 주(1946-1994)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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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대지>를 써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받은 세계적인 작가
펄 벅(1892-1973)은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중국에서 살았던 기억으로 대지
를 썼다고 합니다. 펄 벅 여사는 한국에 왔을 때, 가을 녘 시골집 마당의
감나무 끝에 달린 감 몇 개를 보고 “따기 힘들어 그냥 두는 거냐”라고
물었답니다. 같이 동행한 사람이 “까치밥이라 해서 겨울새들을 위해 남겨
둔 것“이라고 설명하자 여사는 ”바로 그거에요. 제가 한국에서 보고자 하는
것은 고적이나 왕릉이 아니었어요. 이것만으로도 나는 한국에 잘 왔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합니다.
김남주 시인은 이러한 감성을 시로서 잘 표현했습니다.
펄 벅 여사가 감탄했던 우리의 정서, 여유의 정(情)이 이 각박한 사회에서
되살아나서 우리 사회가 살 맛 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늘 하나 들어갈 곳 없는 우리의 마음이 까치밥으로 인해 더 풍성해졌으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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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건너기
강 만(1943~)
우리 동네
길 오른쪽에는 희망 산부인과
길 왼쪽에는 행복장례식장이 있다
그 길을 건너가는데 사람들은
한평생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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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길 하나 건너는 것이군요.
멀고 넓은 길도 아닙니다. 조그마한 신작로 하나 건너면
한 삶이 끝이 납니다.
우리는 그 길 하나를 두고 오래도록,
슬퍼하고 기뻐하고, 분노하고, 행복해하고, 아쉬워하고
살아왔군요.
시인이 지은 산부인과와 장례식장의 이름에 우리 인생의
포인트가 있습니다. 희망 산부인과 , 행복 장례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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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람
박 찬(1948-2007)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생각이 무슨 솔굉이처럼 뭉쳐
팍팍한 사람 말고
새참 무렵
또랑에 휘휘 손 씻고
쉰내 나는 보리밥 한 사발
찬물에 말아 나눌
낯모를 순한 사람
그런 사람 하나쯤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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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은 사람을 찾는다는 시입니다.
시인이 만나고 싶은 사람은
팍팍하지 않은 사람이네요.
인생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을 보면,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이 조금의 여유도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보다는 허허 해서
내가 좀 실수를 하고 잘못해도
그럴 수 있어, 라고 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시인도 제 마음과 한 마음일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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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행
신 달 자(1943~)
던지지 마라
박살난다
그것도 잘 주무르면
옥이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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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결혼한 지 9년 만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24년간
수발하다가 10여년 전에 떠나보냈다고 합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합니다. "지난 50년을 되돌아보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다. 잘했다기보다는 수고했다고, 포기
하지 않고 여기까지 잘 왔다고.“
불행이 옥이 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시인의 긴 세월이었습니다. 24년간 중풍 환자를 돌본 그 힘들고
고달팠던 세월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받아들이기에 달렸다고는 하지만
불행까지도 그것을 가슴에 품어서 옥으로 바꾸어 낼 수
있는 그 마음의 깊이는 어디까지일까요?
지금의 불행을 옥으로 만들어 볼 엄두라도 시작해보는 것은
다 이 시(詩) 덕분입니다.
시의 힘은 크고 때론 놀랍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