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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Nov 10. 2016

<흔들릴 때마다 시를 외웠다>

<흔들릴 때마다 시를 외웠다>  문길섭    


               강 일 송    


오늘은 시집 한 권을 보려고 합니다.    


저자는 시를 너무나 사랑해서 시낭송을 늘 즐기는데 무려 천 편의 시를

외우고 있다 합니다. 혼자서 외우다가 이를 권하는 운동까지 발전하여

시암송국민운동본부를 2006년 세우고 휴대용 시선집도 보급하고 있다고

하네요.    


오늘 그가 모은 시의 모음 중 몇 편 골라서 나름의 감상을 곁들여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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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마을을 지나며    


          김 남 주(1946-1994)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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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대지>를 써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받은 세계적인 작가

펄 벅(1892-1973)은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중국에서 살았던 기억으로 대지

를 썼다고 합니다.  펄 벅 여사는 한국에 왔을 때, 가을 녘 시골집 마당의

감나무 끝에 달린 감 몇 개를 보고 “따기 힘들어 그냥 두는 거냐”라고

물었답니다. 같이 동행한 사람이 “까치밥이라 해서 겨울새들을 위해 남겨

둔 것“이라고 설명하자 여사는 ”바로 그거에요. 제가 한국에서 보고자 하는

것은 고적이나 왕릉이 아니었어요. 이것만으로도 나는 한국에 잘 왔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합니다.    


김남주 시인은 이러한 감성을 시로서 잘 표현했습니다.

펄 벅 여사가 감탄했던 우리의 정서, 여유의 정(情)이 이 각박한 사회에서

되살아나서 우리 사회가 살 맛 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늘 하나 들어갈 곳 없는 우리의 마음이 까치밥으로 인해 더 풍성해졌으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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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건너기    


      강 만(1943~)    


우리 동네

길 오른쪽에는 희망 산부인과

길 왼쪽에는 행복장례식장이 있다    

그 길을 건너가는데 사람들은 

한평생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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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길 하나 건너는 것이군요.

멀고 넓은 길도 아닙니다. 조그마한 신작로 하나 건너면

한 삶이 끝이 납니다.

우리는 그 길 하나를 두고 오래도록, 

슬퍼하고 기뻐하고, 분노하고, 행복해하고, 아쉬워하고

살아왔군요.    

시인이 지은 산부인과와 장례식장의 이름에 우리 인생의

포인트가 있습니다. 희망 산부인과 , 행복 장례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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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람     


     박 찬(1948-2007)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생각이 무슨 솔굉이처럼 뭉쳐

팍팍한 사람 말고

새참 무렵

또랑에 휘휘 손 씻고

쉰내 나는 보리밥 한 사발

찬물에 말아 나눌

낯모를 순한 사람    

그런 사람 하나쯤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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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은 사람을 찾는다는 시입니다.

시인이 만나고 싶은 사람은

팍팍하지 않은 사람이네요.

인생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을 보면,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이 조금의 여유도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보다는 허허 해서

내가 좀 실수를 하고 잘못해도 

그럴 수 있어, 라고 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시인도 제 마음과 한 마음일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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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행     


    신 달 자(1943~)    


던지지 마라

박살난다

그것도 잘 주무르면

옥이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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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결혼한 지 9년 만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24년간

수발하다가 10여년 전에 떠나보냈다고 합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합니다. "지난 50년을 되돌아보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다. 잘했다기보다는 수고했다고, 포기

하지 않고 여기까지 잘 왔다고.“  

  

불행이 옥이 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시인의 긴 세월이었습니다.  24년간 중풍 환자를 돌본 그 힘들고

고달팠던 세월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받아들이기에 달렸다고는 하지만

불행까지도 그것을 가슴에 품어서 옥으로 바꾸어 낼 수

있는 그 마음의 깊이는 어디까지일까요?  

  

지금의 불행을 옥으로 만들어 볼 엄두라도 시작해보는 것은

다 이 시(詩) 덕분입니다.

시의 힘은 크고 때론 놀랍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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