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헌 서재 Nov 12. 2016

<순간의 꽃> 고 은

<순간의 꽃> 고 은

                       강 일 송

오늘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 고은(1933~)의 시집을 한 권 보려고
합니다. 우리나라 시인 중 노벨 문학상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그는
1933년 군산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이후 1958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
을 하였고, 시,소설,평론,평전 등 150여 권의 저서가 있습니다.

그의 시집 중 <순간의 꽃>을 보려고 합니다. 이 시집의 특징은 제목 없는
짧은 시들이 연작으로 한 권 내내 이어집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

고은 시인의 가장 많이 알려진 시 중 하나입니다.
정상을 향해 달려갈 때는 목표에 집중하고 과정에 집중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정상에 도달했든 도달하지 못했든, 내려가는 길에는 비로소
발 아래 조그맣게 피어있던 그 꽃이 보입니다.
흔히 성공도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루는 과정에서 이미 보람을
느끼고 성취감을 느끼면서 미리 받는 것이라 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제는 내려갈 때 볼 그 꽃을 올라갈 때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 좋지 않을까요?

===================================================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

이번 시도 위의 시와 맥락은 비슷합니다.
어딘가를 향해 가려고 열심히 노 젓는 순간에는 주위가 보이지 않습니다.
노를 놓쳐버린 그 순간, 어쩔 수 없이 쉼을 가질 때,
비로소 넓은 물이 보입니다.
일상에서도 일부러 한번 노를 멈추어 볼 일입니다.
주위의 사람들과 주위의 나무와 풀도 한번 보고 하늘도 한번
쳐다볼 일입니다.

===================================================

방금 도끼에 쪼개어진 장작
속살에
싸락눈 뿌린다

서로 낯설다

------------------------------------------

참으로 시인의 관찰력은 탁월합니다.
장작이 도끼에 쪼개어지자 한 번도 드러나지 않았던 하얀 속살이
드러납니다. 근데 그 차가운 공기에 더해 싸락눈까지 뿌려집니다.
모든 게 낯섭니다.
나의 숨겨진 마음, 나의 감추어진 욕망도 그러하겠지요.
나뿐 아니라 모두가 그러할 겁니다.

=============================================

소말리아에 가서
너희들의 자본주의를 보아라
너희들의 사회주의를 보아라
주린 아이들의 눈을 보아라

-----------------------------------------

지금도 아프리카의 아이들은 헐벗고 굶주리고 있습니다.
아무런 죄없이 아프리카에 태어났다는 우연 하나로
그 아이들은 주리고 병들고 스러져갑니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모든 이념은 사람 나고 이후의 일입니다.
아프리카 아이들의 주린 눈을 보고 나서 이념을 논할 일입니다.

===============================================

걸어가는 사람이 제일 아름답더라
누구와 만나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제일 아름답더라
솜구름 널린 하늘이더라

----------------------------------------------

사람은 누군가와 동행할 때 가장 든든하고 아름답습니다.
살면서 필연적으로 마주해야 할 어려움, 고난의 시절에
아무 이유 묻지 않고, 따지지 않고, 그냥 손을 잡아주고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 줄 누군가가 있다면 행복할 것입니다.
솜구름 널린 하늘.
솜사탕 같은 구름이 걸린 파란 하늘.
그와 같은 인생일 것입니다.

==========================================

겸허함이여
항구로 돌아오는 배
오만함이여
항구를 떠나는 배

----------------------------------------
항구로 돌아오는 배는 산전수전 다 겪은 배입니다.
오랜 시간 바다를 다니다 보면, 태풍도 만났을 것이고
집채같은 파도와 싸우기도 했을 것입니다.
인간은 고난과 마주하고서야 비로소 숨이 죽습니다.
비로소 겸손해집니다.
하지만 항구를 떠나는 배는 의기양양합니다.
새로운 시작에 의욕이 넘쳐 약간의 건방이 섞인
용기를 자랑합니다.
딱 네 줄 시에 시인은 참으로 많은 것을 담았습니다.

=============================================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흔하디 흔한 것
동시에
최고의 것

가로되 사랑이더라

--------------------------------------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에서도 행복에 대해서 한 권의 글을
풀어 쓴 후, 마지막에 행복의 정의를 내렸는데,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식사를 같이 하는 것“이 곧 행복이라 하였습니다.
시인도 마찬가지 결론을 내립니다. 흔하디 흔한, 같이 앉아서 밥
을 함께 먹는 것, 그것이 바로 최고의 사랑이라고 말입니다.

==============================================

4월 30일
저 서운산 연둣빛을 좀 보아라

이런 날
무슨 사랑이겠는가
무슨 미움이겠는가

---------------------------------------------

4월 30일 쯤이면 신록이 절정일 때일 것입니다.
저도 한 겨울을 지나고 갓 잎을 피워낸 연하고 밝은 녹색의 산을
바라보는 것이 이 시기의 큰 낙입니다.
밝고 맑은 연둣빛의 이파리가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절정의 봄날,
무슨 이념과 사상과 사랑, 미움이 들어올 틈이 있겠습니까.
그냥 봄바람에 몸과 마음을 얹어 놓기만 하면 될 것이지요.

===========================================

오늘은 고은 시집 중 하나를 보고, 마음에 드는 시 몇 편을 골라서
시 감상을 곁들여 보았습니다.
사실, 고은 시인이 노벨문학상을 받으면 어떻고 못받아도 어떻습니까.
이런 위대한 시인이 우리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노래해주고 있는데요.

마지막 시처럼
이런 날
무슨 사랑이겠는가, 무슨 미움이겠는가
덧붙여
무슨 상(賞)이겠는가.~~~~




매거진의 이전글 <흔들릴 때마다 시를 외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