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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Nov 18. 2016

<단골과 유행, 르시클라주>

“에세이 인문학” 중

<단골과 유행, 르시클라주> 박상준
-- “에세이 인문학” 중

                           강 일 송

오늘은 포항공대 인문학부 교수인 박상준교수의 인문학 에세이
중 한 편을 보려고 합니다.
박상준(1965~)교수는 서울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국문학과를
전공하였고,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2002년부터 문학평론
을 시작했고, 2003년 이래 포항공과대학교 인문사회학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저서로는 “꿈꾸는 리더의 인문학”, “소설의 숲에서 문학을 생각하다.”
,“호모 메모리스”, “문학의 숲, 그 경계의 바리에서” 등 수십 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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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식을 자주 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저녁 식사 즈음에서 아내의 일이 있고, 나는 음식 만드는 데 소질도
의향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찾는 식당은 몇 군데
안 된다. 먹고자 하는 음식에 따라 찾아가는 단골집이 정해져 있는
까닭이다.

매식 품목마다 단골집을 정해 두다시피 하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제일 중요한 점은, 이러한 방식이야말로 내가 나 자신의 삶의
양식(style)을 갖추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른 여러 사회생활의 양상들과 마찬가지로, 음식 문화 또한 사람을
규정한다.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가 그 사람의 특성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내가 즐기는 것은, 대체로 중간 가격에 주방장이 직접
정성껏 준비한 질박한 음식들이다. 식당으로 치자면, 조용하게 먹을
수 있는 깨끗한 곳, 이것이 유일한 기준이다.
또한 ‘단골손님’으로서 식사를 한다는 사실을 나는 중시한다.

‘나의 단골 문화’는 두 가지에 저항한다. 유행과 르시클라주가 그것
이다. 이러한 저항의 바탕에는 삶의 양식에 대한 지향이 있다.
한때 와인이 유행한 적이 있다. 얼마 전에는 그 자리를 사케가 차지
하더니, 근래에는 하우스 맥주가 유행인 듯 싶다. 이러한 흐름과는
무관하게 나는 항상 소주를 사랑한다.

커피도 그렇다. 나는 하루에 다섯 잔 내외를 커피를 마시지만, 전국에
퍼져 있는 커피 전문점들에는 거의 가 본 적이 없고 그런 곳에서 파는
메뉴를 구별할 줄도 모른다. 사무실에서 원두로 내린 아메리카노나
에스프레소만을 마실 뿐, 브랜드나 메뉴를 소비하지는 않는 셈이다.

이렇게 나는 유행과 거리를 둔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태 차원에서
남들과 같게 행동하면서 귀속감을 느끼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타인들과의 소통을 지향하되 타인과의 동질감을 희구하지는 않는다.
내 취향은 나만의 것이고, 그러한 나의 취향이 나를 나로 존속하게
해 준다고 믿는 까닭이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려는 것을 놔두지 않는 것, 유행이란 그런 것이다.
일찍이 분석되었듯이, 유행은, 동일한 외양을 통해 내적으로 하나로
결집되고 외적으로는 다른 계층들과 구별되려는 사회계층의 특징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렇게 모든 유행은 계급유행이다.
(게오르그 짐멜, “돈의 철학”)

우리 시대의 유행이란 자신의 실체를 가리고 상위 계층을 욕망하게
하는 측면이 한층 강해졌다는 점도 강조해 두자. “짝퉁 명품”의
유행이나 성형 열풍 등이 좋은 예가 된다. 이러한 유행들은 ‘현재의
나 자신’을 ‘소망하는 나’로 덮어 씌우게 부추기는데, 이 모든 과정이
소비를 키우려는 자본의 욕망에 따른 것임은 물론이다.
그 결과로 개성을 살린답시고 유행을 따르면 따를수록 개성이 사라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전개된다.

자신만의 단골을 유지하는 것은 이렇게, 자본의 욕망과 함께 하는
유행과 거리를 두며 삶의 양식을 추구하는 일이 된다.
이에 대한 개인 차원의 새로운 양식의 추구가 단골 문화라 할 수
있다.

동일한 맥락에서 나는, 사회의 도처에서 행해지는 ‘진보도 발전도 아닌
의미 없는 변화’들에도 저항한다. 스스로를 자신에 맞춰 재교육(르시클라주,
recyclage)시키라고 강제하면서 그렇게 적응하지 않는 사람들을 도태시키는
현대 사회의 조직 원칙, 소비문화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흐름에 맞서서
내가 유지할 수 있는 만큼은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식생활에 있어서 단골 문화를 지키려는 것은, 나 자신을 끊임없이 개조
하라는 르시클라주 명령에 맞서서 구매자로서의 소비자로 전락하지
않고, 전통적인 이용자로 남고자 하는 노력이다. 유행에 휘말려 자본의
놀이에 소진되지 않고, 삶의 양식을 회복하려는 힘겨운 노력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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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특이하게도 유명 공대에서 인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그의 소개글을 보면, 어릴 때부터 문학 소년에 꼬마 철학자였다고 합니다.
오늘 글에서 그런 면모가 잘 드러나는데요, 그는 단골 식당을 정해서 다니는 사실
하나만으로 다양한 철학적인 담론을 이어갑니다.

그는 말합니다. 음식 문화도 다른 문화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규정한다고.
식당을 정해서 찾아갈 때, 유명한 식당이나 프랜차이즈 식당 등을 찾질 않고,
주인장이 직접 음식을 해서 나오고 깔끔한 내부를 가진, 질박한 음식이 나오는
식당을 단골로 정해서 다닌다고 합니다.

유행의 정의도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것을 그냥 놔두지 않는 것” 으로 정하고
그 뒤에 존재하는 “자본의 욕망”에 저항하고 거부합니다.
“현재의 나”를 “소망하는 나”로 대체하려는 인간의 본성에 거부할 때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개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이지요.
“짝퉁 명품”과 “성형 열풍”이 모두 이러한 것을 반영한다고 합니다.

“르시클라주, recyclage”란 시대가 그 흐름에 맞추어 스스로를 재교육하라고
강제하면서 그것을 못하는 사람을 도태시키는 현대사회의 원칙을 말합니다.
결국, 현대의 자본주의와 유행이 끊임없이 대중들에게 요구하는 소비 행태의
유도를 “르시클라주”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르시클라주에 소극적 대항과 거부의 표시로 단골 식당을 찾는 단골
문화를 옹호합니다.

오늘은 인문학부 교수의 단골 식당 찾기를 통한 현대인의 욕망과 유행의 본질에
대한 고찰을 해보았습니다.
삶의 방식을 스스로 정하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끌려 다니는 현대인의
삶을 한번 되돌아보는 좋은 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성을 찾고자 유행을 찾지만 오히려 더 개성을 잃게 되는 역설.
오늘 그 역설 앞에서 스스로가 더욱 자기답게 설 수 있는 삶의 양식이 저자의
단골 식당 찾기 말고 나한테는 또 무엇이 있을지 고민해 보는 하루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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