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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Jan 25. 2017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강 일 송


오늘은 장편소설을 한 권 보려고 합니다.


지식인들이 가장 읽고 싶어 하고 추천하는 도서에 꼽히는 “그리스인

조르바”는 그리스의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의 작품입니다.

그는 크레타섬에서 태어났고, 터키 지배하의 기독교인 박해 사건과

독립전쟁을 겪었으며, 파리로 가서 베르그송과 니체를 접하였다

합니다.

두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지명되었으나 수상하지는 못하였고, 톨스

토이, 도스토예프스키에 비견될 만큼 위대한 작가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의 작품 중 대표작인 “그리스인 조르바”를 보려는데, 먼저

내용을 좀 본다면,


주인공인 화자, “나”는 지식인이고 책을 많이 읽는 30대인데,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에서 60대 중반의 거침없는 노인, 조르바를 만나게 됩

니다. 재산이 꽤 있던 “나”는 크레타섬의 갈탄광을 빌려 사업을 시작

하게 되고, 다양한 인생 경험이 있던 조르바와 동업관계를 맺으며

조르바는 탄광사업을 총괄하게 됩니다.

크레타섬에서 갈탄광 사업을 하면서 둘은 급속히 가까워지고, 조르바는

사업주인 '나'를 “두목”이라고 부릅니다.

책을 좋아하는 젊은 지식인과, 배운 것은 없으나 온갖 인생의 역경과

다양한 경험을 한 자유인 조르바는 우정을 쌓으며 지냅니다.

하지만 그들이 함께 추구했던 광산사업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둘은 크레타섬을 떠나 각자의 삶을

살아가다가, 조르바가 사망했다는 편지를 주인공은 받게 됩니다.

그의 분신처럼 여겼던 산투르 악기를 ‘나’에게 남긴다는 유언과 함께.


카잔차키스는 실존 인물인 “기오르고스 조르바”를 만나 탄광사업을 한

적이 있었고, 이 소설을 쓸 시기가 작품 중 조르바의 나이인 65세였다고

합니다. 결국 조르바는 자신을 대입한, 자신이 추구하고자 한 이상형의

인간이었던 것입니다.


조르바는 작품 중에서, 세상 어느 것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인으로 나옵

니다. 배운 것은 없지만 누구보다 지혜롭고 자연을 잘 알며, 자유분방한

인간의 표상입니다. 책을 좋아하고 지식을 추구하는 주인공 ‘나’와

대척점에 있는 인간형이지만, 둘은 진실한 우정을 나누고, ‘나’는 조르바

를 통해서 삶의 자유와 해방감을 얻게 됩니다.


시골의사로 유명한 박경철의 "문명의 배꼽, 그리스"를 보면 서두에

젊은 날, 그를 인문의 세계로 인도한 작가가 카잔차키스였고 그리스를

기행하면서 쓴 이 책도 결국 카잔차키스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카잔차키스가 극 중 조르바의 입을 통해 이야기한 명언들을 나름대로

정리하면서 갈무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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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

이었다.  그는 살아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원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母胎)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 산투르 악기를 다룰 줄 알면서 나는 전혀 딴사람이 되었어요. 기분이

좋지 않을 때나 빈털터리가 될 때는 산투르를 칩니다. 그러면 기운이

생기지요.  산투르를 칠 때는 당신이 말을 걸어도 좋습니다만, 내게

들리지는 않아요. 들린다고 해도 대답을 못 해요. 해봐야 소용없어요.

안되니까....


* 내가 젊었을 때는 피가 뜨거웠어요.  도무지 왜 라든지 어째서 같은

걸 생각해 볼 수가 없었으니까요.  사물을 제대로 보고 생각하려면

나남없이 나이 먹어 분별이 좀 생기고 이빨도 좀 빠져야 합니다.

사람이란 젊을 동안은 아주 야수 같은가 봐요. 그래요. 두목, 사람

잡아먹는 야수 말이오!


* 이 세상은 수수께끼, 인간이란 야만스러운 짐승에 지나지 않아요.

야수이면서도, 신이기도 하지요.


* 육체에는 영혼이란 게 있습니다. 그걸 가엾게 여겨야지요. 두목,

육체에는 먹을 걸 좀 줘요, 뭘 좀 먹이셔야지, 아시겠어요?

육체란 짐을 진 짐승과 같아요. 육체를 먹이지 않으면 언젠가는

길바닥에다 영혼을 팽개치고 말 거라고요.


* 그는 남자나, 꽃핀 나무, 냉수 한 컵을 보고도 똑같이 놀라며 자신

에게 묻는다. 조르바는 모든 사물을 매일 처음 보는 듯이 대하는

것이다.


* 나는 조르바의 말을 들으면, 세상이 다시 태초의 신선한 활기를

되찾고 있는 기분을 느낀다.  지겨운 일상사가 우리가 하나님의 손길

을 떠나던 최초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었다.  물, 여자, 별, 빵이 신비르

러운 원시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태초의 회오리바람이 다시 한 번

대기를 휘젓는 것이었다.


* 두목, 나는 오직 조르바만 믿어요.  조르바가 딴 것들보다 나아서가

아니요. 나을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요.  조르바 역시 다른 놈들과

마찬가지로 짐승이오.  그러나 내가 조르바를 믿는 건, 내가 아는 것

중에서 아직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조르바뿐이기 때문이오.

나머지는 모두 허깨비들이오.


* 조르바는 학교 문앞에도 가보지 못했고, 그 머리는 지식의 세례를

받은 적이 없다. 하지만 그는 만고풍상을 겪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 마음은 열려 있고 가슴은 원시적인 배짱으로 고스란히 잔뜩 부풀

어 있다. 우리가 복잡하고 난해하다고 하는 문제를 조르바는 칼로 자르

듯,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자르듯이 풀어낸다.

우리들  교육받은 자들이 오히려 공중을 나는 새들처럼 골이 빈 것

들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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