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時調)와 공감의 미학>

by 해헌 서재

<시조(時調)와 공감의 미학> 조해숙

강 일 송

오늘은 우리 옛 문학인 시조에 관한 글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저자인 조해숙교수는 서울대학교 국어국문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하시고 2006년부터 서울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후기 시조 한역과 시조사”, “한국의 고전을
읽다”, “한국 시조 감상” 등이 있습니다.


★ 공감이란 무엇인가

* 공감이란 ‘같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다름’이 있음에도
그 다름이 틀림이나 그름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
* 우리의 멋은 다름을 인정하고, 변형을 선호하는 미학이었음.
본래의 것을 천연스럽게 휘게 하고 이지러지게 함으로 놀이와
웃음의 철학이 배여 있음.
* 시조는 나름의 형식이 있기에 조금은 경직된 문학의 장르라는
오해를 사기도 함.
* 시조는 흥진비래(興盡悲來)가 아니라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우리 민족 정서가 포함되어 있으며, 적대감의 형성보다는 이를
풍자하고 해학하면서 풀어나가는 과정을 가지고 이를 통해
행복한 세계관을 구현함.

---> 따라서 시조 정서의 본질은 공감, 동질성의 회복 과정임.

★ 공감 시조의 사례
(1) 사람과 사람 - 유교적 이념시, 애정시, 생활시
(2) 사람과 자연 - 사림파의 은일시, 자연시, 유배시

-- 옛 노래 속에서 공감, 소통의 발견 가능

본문으로 가서
첫 번째 시조를 한번 보겠습니다.

있으렴 부디 간다 아니 가든 못할소냐
무단히 싫더냐 남의 말을 들었느냐
그래도 하도 애닯고나 가는 뜻을 일러라
- 성종(1457-1494), 해동가요

이 시조는 조선 9대 임금 성종과 신하 유호인(1445-1494)의 석별
의 노래입니다. 유호인이 노모 봉양을 이유로 고향 함양으로 가려
하자 임금이 수 차례 만류하다가 친히 주연을 베풀고 술을 권하면서
부른 노래라고 합니다.

얼마나 임금이 신하를 아꼈으면 이토록 간절한 시를 남겼을까요.
처음에 있으렴, 아니 가면 안 되겠느냐 하고 간청을 하고
이유없이 싫더냐, 남이 무슨 다른 말을 하더냐 하였고
이 시의 포인트인 “그래도”는 쿨하게 잘가라가 아니라 아쉬움으로
마지막까지 붙들고 싶은 심정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모든 신하와 왕이 함께 울었다고 하니, 이는 진정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고자 하고, 이미 그것을 얻은 리더의 모습이
성종에게서 보인다 하겠습니다.

두 번째 시를 본다면,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의 손에
자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곧 나거든 나인가도 여기소서
- 홍랑(洪嫏)

선조 6년(1573)에 고죽 최경창(1539-1583)이 함경도에서 북도평사로
재직시 사랑하게 된 관기 홍랑이, 최경창이 다시 서울로 가게 되어
영흥까지 배웅을 한 후 이별하면서 쓴 시라고 합니다.
산버들을 꺾어 님의 손에 쥐어 보내고
잠자는 방의 창밖에 심어두라고 합니다.
다시 돌아가는 님을 자기가 따라 갈 수 있는 곳까지 함께 간 홍랑은
산버들이라도 꺾어 님의 손에 주었는데, 이 산버들을 품에 간직하거나
머리맡에 두라고 하지 않고, 창밖에 심어 두라고 합니다.

이는 두 사람의 현실의 벽을 인식하고 창을 통한 적절한 거리를 확보
하는 것인데, 양쪽에서 열 수 있는 문이 아니라 안에서만 열 수 있는
창을 매개로 함으로서, 진실로 사랑의 주체가 홍랑 자신이 되는
역설을 보여주고 있다합니다.
이후 최경창이 병에 걸렸을 때, 함경도에서 일주일을 걸어와 병구완을
하였고, 최경창이 죽자 3년상을 지내며, 자신의 몸을 해하여 아름답지
않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합니다.
정말 현대의 어느 사랑시나 러브스토리보다 간절하고 지극하며 수준높은
사랑의 전형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마지막 한 수를 더 보자면,

백발에 화냥 노는 년이 젊은 서방 하랴 하고
희게 센 머리에 먹칠하고 태산 준령으로 허위허위 넘어 가려다
때아닌 소나기에
그르사 늙은이의 소망이라 일락배락 하노라
- 청구영언(1728)

주인공은 젊은 서방을 욕망하는 나이 든 여인입니다.
흰 머리에 먹으로 염색을 하고 힘들게 준비하고 갔는데
때 아닌 소나기에 먹물은 하얀 동정을 검게 물들게 하고, 물이 들어야
할 머리는 하얗게 변해 버립니다.
마지막 연에 글렀구나, 하면서 포기를 하는 모습에서 연민과 인간
욕망의 허망함을 알려주는데, 이 시대에는 이러한 일탈에 대한
훈계나 비난보다는 포용적 인식이 있어, 이 시대가 오히려 현대보다
더욱 여유가 있고 관대한 사회가 아니었나 하고 엿볼수 있다고 합니다.

★ 노래란?

- 일상적 소재들의 비일상적 포착이 시적 진술, 그 간절함의 반복
이 일어나는 것이다.
- 유사한 상황을 겪어 갈 타인의 내면을 보편성으로 감당할만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 결국 저자의 노래에 대한 정의는 일상이 문학의 소재가 됨을
이야기하고 있고 자신의 간절한 경험을 통해,
같은 인간으로서 반복하여 겪게 될 타인에게 미리 간접경험을 하게
해준다 합니다. 이를 통해 누군가를 위로하고 견디어 내게 할 수 있는
힘을 시는, 더 나아가 문학은 함유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어떻게 본다면 우리의 시조는 현대의 개념인 시뮬레이션, 시뮬라시옹의
개념이 이미 포함이 되어 있다고도 하겠습니다.

또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우리의 미학이 새로운 것, 신기한 것 보다는
검증된 것, 익숙한 것을 지향하고, 이미 존재하는 것, 보편성과 상투성에
의미를 둔 미학이라는 것입니다.
누군가 겪게 될 인생의 불운, 어려움, 질곡 등을 이미 경험을 하였고
답을 알고 있는 보편성의 범주에 포함시켜 전정 사람을 위하고 사람을
살리려는 따뜻함이 우리 문학에는 들어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인간의 감성을 건드리고, 생각의 틀을 흔들어
새로운 사고의 프레임을 얻는 것이 인문학이라 한다면
우리가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기 쉬운 우리의 옛 시조가
훌륭한 인문학의 본질을 잘 갖춘 분야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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