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인간다움을 말하다” 中
<인생-기다림과 희망의 변주곡> 송용구
- “인문학, 인간다움을 말하다” 中
강 일 송
오늘은 지난 번 아놀드 토인비와 헤르만 헤세의 “불의의 도전
에 맞서는 인간의 응전“ 이라는 주제의 글에 이어서 ”인문학,
인간다움을 말하다”의 책을 한번 더 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알베르트 카뮈와 사뮈엘 베케트의 협주로 이루어진
작품과도 같은 글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지난 번 소개한 적 있는 송용구(1965~)교수는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독일 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95년 월간 <시문학>에 ‘등나무꽃’ 등으로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문학평론가, 번역가로 활동 중입니다. 현재 고려대학교 독일어권
문화연구소 교수로 재직 중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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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복의 순환궤도를 돌고 있는 인간의 역사
사뮈엘 베케트(1906-1989), 외젠 이오네스코(1909-1994), 막스
프리쉬(1911-1991) 등은 세계 연극사에서 한 획을 그었던 작가
들입니다.
이들은 부조리극(不條理劇)을 대표하는 작가들인데, 이 대작가들이
표현한 작품들에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전쟁, 학살, 지배, 억압, 수탈, 착취 등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
까지 그치지 않고 있으니까요.
강대국은 세계 지배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휴머니즘을 가장한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약소국을 침공하거나 지배하는 것을 반복
하고 있습니다.
물론 군대를 동원하여 무력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만행의 빈도수는
줄어들고 있습니다만 미국의 진보적 사상가 에드워드 사이드(1935-
2003)가 비판한 것처럼 동양의 문명과 문화는 서양의 그것에 비해
열등하다는 ‘오리엔탈리즘’식의 서구 중심적 세계관을 토대로 하여
약소국을 문화적 식민지로 만들고 ‘문화지배’를 통해 정치와 경제
양 방면의 이득을 취하려는 현상이 더 뚜렷해집니다.
반복의 궤도를 돌고 있는 현상입니다.
개별 국가 안을 들여다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권력을 장악한 1인이 독재체제를 구축하는 현상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지식인이 권력자에게 정치적 명분과
이데올로기를 만들어주고 그 대가를 받는 비뚤어진 ‘공생’의
관계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습니다.
★ 희곡 “고도(Godot)를 기다리며”
오늘 우리가 만나는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1948년에 집필을 시작하여 1952년 파리에서 출간하였고, 이는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이자 부조리극의 모델로 평가받고 있습
니다.
작품의 작중 인물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끊임없이
고도를 기다립니다. 고도라는 미지의 존재가 오기만을 둘은
하염없이 50년 동안 기다려옵니다.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고 있다는 프리쉬와 뒤렌
마트의 세계관을 베케트의 희곡에서 또다시 읽게 됩니다.
이러한 역사의 반복과 기다림 속에서 느낄 수밖에 없는 허망
과 절망을 애써 떨쳐버리고 꼿꼿이 서서 ‘고도’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희망과 의지! 우리가 캐내야 할 ‘인간다움’의 보석이
그 속에 깃들어 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는 고도는 누구일까요?
이상적 세계를 상징하는 존재일 것이고, 사회의 모순과 난제들을
해결해줄 수 있는 신적 존재일 수도 있고, 미래의 유토피아일
수도 있습니다. 이성의 빛을 깨워줄 완전한 현자(賢者)가 고도
일지도 모릅니다.
좀처럼 인터뷰를 하지 않은 작가인 베케트는 1969년 노벨문학상
을 수상했음에도 시상식에 가지 않았고, 이와 관련된 일체의
인터뷰를 거부했습니다.
우연히 연극 연출을 맡은 알랭 슈나이더가 옆에 앉은 베케트
에게 고도가 누구인지 물어보았는데, 베케트는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겁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문학작품은 다층(多層)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체험의 산물이기
때문에 단 하나의 측면만으로 규정될 수는 없습니다. 베케트의
대답에서 문학은 다양한 해석이 공존하는 ‘의식의 열린 세계’
임을 이해하게 됩니다.
★ 부조리에 반항하는 인간의 기다림
명작 ‘이방인’의 알베르 카뮈(1913-1960)도 부조리에 대한 세계관
이 뚜렷한 작가입니다. 세계를 움직이는 근본적 원리를 인간의
이성으로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세계 자체를 인간의 힘으로
개혁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이는 역사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과 같습니다.
하이데거가 인간을 ‘지금 이곳’에 ‘내던져진 존재’라고 규정하였
듯이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중인물인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도
부조리의 세계 속에 내던져진 사람들입니다.
베케트와 더불어 ‘부조리 문학’의 대표적 작가로 손꼽히는 카뮈가
‘시지프스’라는 신화적 인물을 내세워 부조리에 대한 ‘반항’을
시도합니다. 그는 “나는 반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데카르트의 명언을 패러디하여 말했습니다.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실존의 조건은 ‘반항하는 것’뿐이
라고 카뮈는 강조합니다.
‘부조리’에 갇혀 있다고 해도 이 부조리가 개선되기를 끊임없이
기다리고 희망하는 존재가 인간이니깐요.
밀어 올려도 끊임없이 굴러 내려오는 바윗돌을 산꼭대기에 우뚝
멈추게 될 날이 오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그날’을 기다리는
시지프스,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행위를 반복하는 블라디
미르와 에스트라공의 기다림 속에서 이러한 희망이 심장처럼
살아 꿈틀대는 것은 아닐까요?
부조리라는 한계상황의 격랑을 넘어서기 위하여 다시금 ‘이성’
의 닻을 올리고 ‘의지’의 돛을 펼쳐 한계 저 너머에 있는
‘고도’의 해안에 닿을 때까지 기다림의 항해를 멈추지 않는
존재, 그가 진정한 ‘인간“이라 믿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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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인문학, 인간다움을 말하다” 라는 책의 다른 내용을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지난번이 헤르만 헤세와 아놀드 토인비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오늘은 사무엘 베케트와 알베르트 카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두 작가의 공통점은 이 세상은 "부조리"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전쟁, 학살, 억압, 수탈, 착취" 등의 역사는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강대국은 약소국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침략하고 이용합니다.
서양은 동양을 한 단계 아래의 미개한 세계로 치부하고 문화적
식민지로 삼으려고 합니다.
개별 국가에서도 권력자는 지식인들을
이용하여 정치적 명분과 이데올로기를 얻습니다.
이러한 절망적이고 불행한 역사의 반복은 과연 멈출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고뇌를 베케트는 "고도"라는 미지의 대상을 기다리는
것으로 대응합니다. 카뮈는 그리스 신화의 시지프스를 통해
이러한 부조리한 세상의 구도를 바꾸려고 시도합니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어떻게 본다면 이 세상에 인간은 내 던져진
존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내 던져진 곳, 이 세상은
그나마 공평하지 않고 공정하지도 않은 부조리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에 인간은 순응하고 절망의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고도를 기다
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처럼 희망을 버리지 않고 버틸것인가,
아니면 끊임없이 굴러 내려오는 바윗돌을 산으로 멈출 때까지
영원히 밀어 올릴 것인가.
여기에 대해 저자는 인간은 모름지기 이러한 부조리하고 불공평하고
불공정한 세상에 대해 '이성'의 닻을 올리고 ‘의지’의 돛을 펼쳐
한계 저 너머에 있는 ‘고도’의 해안에 닿을 때까지 기다림의
항해를 멈추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한 이가 진정한 ‘인간“이라 불릴 수 있다 합니다.
저자의 말처럼 현실에서 보이지 않는 희망을 쫓아 끊임없이
기다리고 항해를 멈추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정 역사는 이러한 움직임을 가진 이들에 의해 발전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힘을 기르는 것이 또한 이 책에서 말하는 인문학의
역할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