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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Apr 05. 2017

<민족주의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흐름을 꿰뚫는 세계사 독해”(2)

<민족주의, 내셔널리즘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 “흐름을 꿰뚫는 세계사 독해”(2) 中

                               강 일 송

오늘은 지난번에 이어서 세계사 독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역사는 과거를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비추어 보는
거울로 역할을 한다고 하지요.
단순한 사건이나 기록이 아니라 전체적인 세계사의 흐름을 이해
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저자는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저자인 사토 마사루(1960~)는 도시샤(同志社)대학교에서 신학
연구과를 마치고 외무상에 근무하다가 지금은 집필활동에 전념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서로 “국가의 덫”, “자멸하는 제국”, “국가론”, “종교개혁이야기”
등의 다수의 책을 썼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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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 서유럽과 동유럽의 차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중세 유럽에서는 교회와 사회가 일체화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중세 유럽인에게는 근대인과 같은 민족의식
은 존재하지 않았다. 중세 유럽인에게 인간은 곧 기독교인이었다.

물론 국가나 정치 기구는 존재했다. 서유럽에서는 비교적 이른 단계
에서 국가라는 단위가 성립하기 시작했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1337년부터 1453년 사이에 벌어진 100년 전쟁
이후 중앙집권화가 진행되었다. 100년 전쟁은 두 나라 사이의 영토
전쟁으로, 영국왕은 프랑스 남서부의 기옌 지방을 갖고 있었다.

프랑스는 이 땅을 빼앗고 싶어 했고, 오히려 영국은 프랑스 북부의
모직물 지대인 플랑드르 지방을 탐내고 있었다. 결국 프랑스 왕위
계승 문제로 부딪친 두 나라는 전쟁을 하였고 잔다르크의 활약으로
거의 모든 국토에서 영국군을 프랑스는 물리쳤다.
이때부터 프랑스는 국가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한편 이베리아 반도에서도 기독교도가 이슬람교를 축출하는 레콩키
스타(국토회복운동)와 함께 1143년 포르투갈왕국, 1479년 스페인왕국
이 성립하며 국가 정비가 되었다.

그러나 중,동유럽을 포함한 15세기의 신성로마제국(독일)은 서유럽과
달리 혼돈 상태였다. 신성로마제국은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동부,
스위스, 오스트리아, 체코 등 상당히 넓은 지역을 아울렀으나 그
실태는 이름뿐인 국가였다. 황제는 있으나 권력이 없었고 수백이나
되는 영방국가로 나뉘어져 있었다.

★ 30년 전쟁의 두 가지 측면

합스부르크 가문이 유럽의 주도권을 장악했던 시대에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이전에 보헤미아의 종교개혁가인 얀 후스에
의한 체코 종교개혁이 있긴 했다.
16세기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황이 면죄부를 판매하자 독일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수이자 수도사인 루터는 면죄부를 사는 행위를
비판하고 성서를 기반으로 한 신앙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이후 유럽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나뉘어 내전과 전쟁으로 돌입
했다. 그 정점에 선 전쟁이 신성로마제국을 무대로 1618년에 시작된
30년 전쟁이다.
이 전쟁은 합스부르크령인 보헤미아 지방의 프로테스탄트가 가톨릭을
강요하는 합스부르크 가문에 대해 반란을 일으킨 데서 시작되었다.
스페인은 당연히 합스부르크를 지원했고, 프로테스탄트 국가였던
덴마크와 스웨덴은 프로테스탄트를 지원하면서 격화되었다.
하지만 합스부르크와 대립하던 프랑스 부르봉왕조는 가톨릭국가였음
에도 프로테스탄트를 지원했다.

가톨릭 대 프로테스탄트라는 종교전쟁, 합스부르크가와 부르봉가의
대립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진 국제전쟁으로 비화된 이 전쟁은
1648년 종전 처리를 위해 독일 북서부의 베스트팔렌 지방에서
회의가 열렸고 여기서 베스트팔렌 조약이 탄생했다.

★ 베스트팔렌 조약의 의의

베스트팔렌 조약을 통해 프로테스탄트의 일파인 칼뱅파의 신앙이
인정받았으며, 더불어 유럽의 주권국가 체제가 확립되었다.
종교전쟁은 종결되었고, 신성로마제국 내의 영방국가를 포함해
각각의 국가가 내정권과 외교권을 가지는 주권국가로서 인정
받은 것이다.

이 조약은 ‘주권국가에 의해 구성되는 유럽’이라는 세계의 질서를
창출하고,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긴 대립에 종지부를 찍음으로써
중세와 근대를 가르는 명실상부한 기준점이 되었다.

★ 나폴레옹 전쟁과 내셔널리즘의 성장

중세부터 근대 초기까지 민족 문제와 내셔널리즘이 존재하지 않는다.
군주의 지휘 아래 중앙집권화가 진행되었지만 영토 내에 거주하는
주민의 국가에 대한 귀속의식은 희박했다.
다시 말해 베스트팔렌 조약에 의해 주권국가 시스템이 성립하기는
하였으나, ‘국민’ 혹은 ‘민족’이라는 의미의 근대적인 “네이션, nation'
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근대적인 네이션은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탄생했다.
엉토 내에 거주하는 주민이 국가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가지며 동시에
주민 스스로 병사가 되어 국가를 지키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에 의해 국가의 주권이 국토가 아닌 국민에게 있다는
원칙이 수립되었다.
이처럼 국민과 국가가 하나가 된 국가를 “국민국가, nation state"
라고 한다.

이러한 국민국가와 자유에 대한 이념은 나폴레옹전쟁에 의해 유럽
전역으로 수출되기 시작했다.
유럽의 여러 국가는 프랑스 국민군의 위력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목격했다. 독일은 여전히 다수의 영방국가로 분립된 상태였다.
그런 가운데 철학자인 피히테는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연설을 통해 독일 민족의 일체화를 주장했다.

독일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나폴레옹에게 정복당한 국가들에서
는 민족의식과 국민의식의 각성을 촉구하는 내셔널리즘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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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민족주의, 내셔널리즘에 대한 이야기를 유럽 역사를 통해
알아보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민족이라는 개념이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민족의식, 민족국가의
개념이 생긴 것은 근대라고 합니다.
중세에는 인간은 곧 기독교인이었다 하지요.

백년 전쟁 이후로 프랑스는 국가의 틀을 갖추게 되고, 스페인과
포르투갈도 중앙집권화에 의한 국가를 형성하여, 서유럽은 대체로
이른 시기에 자리를 잡으나 신성로마제국 등의 동유럽은 오랜
기간 분립된 작은 국가로 존재합니다.

이후 종교개혁으로 촉발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전쟁으로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고 이로 인해 비로소 근대의 장이
활짝 펼쳐지게 됩니다.  주권에 대한 의식은 생겼지만 아직
국민, 민족에 대한 의식은 생겨나지 않았다가, 프랑스 혁명
이후 비로소, 국민과 국민국가에 대한 개념이 탄생합니다.

나폴레옹에 의해 유럽으로 국민의식, 민족의식은 전파되었고
자기 나라를 침범했음에도 베토벤은 "영웅 교향곡"을 작곡했고,
헤겔은 절대정신(시대정신)을 보았다고 말했지요.

오늘은 중세부터 프랑스혁명이후 나폴레옹까지 유럽에서
민족의식, 내셔널리즘이 어떻게 형성이 되고 자라왔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역사는 하나의 사건 사건으로 보면 분리된 객체처럼 여겨지
지만 연속의 흐름으로 꿰뚫어 본다면 맥락이 있고 숨은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오는 오후, 건강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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