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인문 인류

<이토록 황홀한 블랙>

by 해헌 서재

<이토록 황홀한 블랙> 존 하비

--“세속과 신성의 두 얼굴 검은색에 대하여”


강 일 송


오늘은 지적향유의 대상을 블랙, 즉 검은색을 통해서 누리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저자인 존 하비(John Harvey)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엠마누엘

칼리지 종신석학교수이고, 케임브리지대학 문학박사, 소설가이자

비평가입니다. 저서로는 <블랙패션의 문화사>, <시각의 시학>,

<초상화의 주제> 등 다양한 작품이 있습니다.


검은색의 역사는 인간이 공포를 점령해 나간 기록이기도 하고,

신성과 경배의 대상에서 최고의 패션의 자리까지 넘나든 역사

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한번 보시겠습니다.


==============================================


★ 블랙, 인간의 역사가 투영된 가장 광활한 색


“검은색은 색이 아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검은색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했다. 그럼에도 다빈치의 팔레트에는 검은 안료가

있었고 그의 작품 배경은 대부분 검은색으로 채워졌다.

검은색에 열광한 예술가들도 있었는데, 프랑스의 화가 앙리 마티스는

‘검은색은 힘’이라고 표했했고,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는

검은색을 ‘색의 여왕’이라고 했으며,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화가

틴토레토는 ‘색깔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은 검은색’이라고 말했다.

검은색은 색깔 스펙트럼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색깔 스펙트럼은

근본적으로 빛의 파장에 따라 분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검은색은 어떤 물질로 가득 찬 상태일까?, 빈 공간일까?

검은색은 하나의 색일까? 아니면 빛이 존재하지 않는 어둠에

불과할까?


검은색은 비옥한 토양과 타고 남은 재, 세련된 옷과 미망인의 상복,

한밤의 성적인 자극과 죽음, 우울, 슬픔을 동시에 상징한다.

어떠한 색도 이처럼 정반대의 확고한 극단을 동시에 상징하지

못한다.


★ 인간의 공포를 점령해간 역사


검은색은 처음엔 주로 인간의 삶 밖에 존재하는 공포스러운 영역을

표시하는 데 사용되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신념, 예술, 사회적

삶의 구조로 스며들어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검은색의 역사는

인간의 공포를 조금씩 점령해 나간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검은색의 페인트가 있다는 점에서 검은색은 하나의 색깔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빨간 불빛, 하얀 불빛은 있어도 검은 불빛은

없다는 점에서 검은색은 다른 색과 다르다. 다른 불빛은 만들 수

있지만 검은 불빛은 여전히 만들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검은색은 하나의 색깔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한 뛰어난 신경과학자는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미생물은

밝은 곳에서 어둠을 향해 헤엄쳐야 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 다음 진화의 단계에서는 어두운 틈새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어둠을 찾아내는 것이 사방에 도사리고

있는 포식자로부터 몸을 피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안전’을 의미한다.


★ 블랙의 어원


오늘날 우리가 색깔 이름으로 쓰는 단어들 중에는 사물의 형태를

묘사하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 많다. 초록색을 의미하는 ‘green'

은 자라다, 번성하다 의미의 인도유럽어 어근 ‘ghre-'에서

유래했다.


이에 반해 ‘black'은 특정한 색깔을 일컫기보다는 밝음과 어둠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던 말이었다. 번쩍이다, 빛나다, 불에 타다

를 의미하는 인도유럽어 ‘bhleg-'과 ’불에 탄‘을 의미하는

게르만어 ‘blakaz'에서 유래했다. 중세 영어 'blak'은 검댕, 숯,

역청, 까마귀의 색깔을 가리키는 것이 주요한 의미가 되었다.


★ 색의 의미


색깔에 부여하는 가치는 문화에 따라 달라지지만, 주요한 색은

수천 년 이상 다양한 문화에서 비슷한 기능을 하였다.

예를 들면, 하얀색은 상서로움을, 검은색은 나쁜 것을, 빨간색은

생명을 주로 상징했다.

이것은 인간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 공통적이라 할 수 있다.

많은 문화에서 하얀색은 모유 또는 정액을 가르킨다. 빨간색은

피를 가리키고, 검은색은 그을음, 숯, 석탄, 눈동자, 머리카락

등을 가리킨다.


검은색은 또한 거의 모든 문화에서 불행, 불모, 증오, 죽음 등과

같이 온갖 나쁜 것을 상징하는 색깔로 여겨져왔다.

하지만 동양, 서양, 아프리카에서 죽음은 검기도 하고, 하얗기도

하다. 서양의 상복은 오랫동안 검은색이었지만 동양에서는

흰색이 많았다.


종교에서 본다면, 고대의 사제들은 대개 하얀 옷을 입었다.

반면 이슬람교 시아파와 유대교는 최근까지 검은 옷만 입었

으며, 기독교는 검은색을 폭넓게 사용하는 것 같지만, 이를

폭넓은 하얀색의 사용으로 보완한다. 예수는 대개 하얀 옷을

입고 있으며 교황 역시 하얀 옷을 입는다.


현세로 눈을 돌리면 하얀색과 검은색은 오늘날 사회계급을

상징하는 색깔이다. 러시아의 관료들은 ‘흰색’을 입었고, 그래서

‘하얀 차르’라는 이름이 생기기도 했다.

19세기의 멋쟁이들은 검은 옷을 입었지만, 하얀 옷을 입는

멋쟁이들도 있었다.


하얀색은 눈을 멀게 하는 빛의 색이다. 예수가 형상을 바꾸었을

때 그의 의복은 ‘빛과 같이 희어졌고’, ‘새하얗고 눈부시게

빛이 났고’, ‘희어져 광채가 났다.’

무덤에서 돌이 굴려낸 뒤 그 위에 앉은 천사의 얼굴은

‘번개처럼 빛났고, 옷은 눈 같이 희었다.’

하얀색이 투명할 때, 그것은 양털이며 눈이자 번개이며 잔상을

남기며 눈을 멀게 하는 전기불꽃이다.


하지만 검은색의 힘도 이에 못지 않다. 기독교 우주론에서 신은

번쩍이는 빛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동시에 숭고한 어둠의

심장 한 가운데 존재하기 때문이다.


================================================


오늘은 검은색이라는 하나의 색을 통해 이 세상의 역사와 문화를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익히 알다시피, 색은 힘이 아주 강합니다. 주는 메세지도 분명하고

명료합니다. 이는 색에 아주 오랜 세월동안 인간에게 경험과 함께

각인된 이미지와 감정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붉은 피를 보면, 열정과 희생, 고통, 등을 떠올리게

될 것이고, 초록색을 보면 푸른 나무와 숲이 상상되니 싱싱함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반면 오늘 다룬 검은색은 어두움을 상징하여

두려움, 악, 죽음 등이 연상되기 쉬운데, 현대에 오면서 문화의 발달

과 변천에 의해 이런 이미지도 많이 바뀌게 됩니다.


이를 저자는 인간이 공포를 점령해 나간 역사라고 표현합니다.

현대에 검은색은 세련됨과 권위, 고급스러움 등을 의미하게 되지요.

자동차를 보아도 금방 알수가 있습니다. 고급 대형차는 어김없이

검은색이지요.


화가들도 검은색을 칭송한 화가가 많았네요. 그리고 신경과학자가

이야기한 과거 미생물들이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어두운 곳으로

숨는 과정을 통해 검은색이 안전을 의미한다고 하는 시각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오늘 저자는 검은색이라는 창을 통해서 우리 세계의 문화와 역사를

조명해 보았습니다. 비단 검은색이 아니라, 흰색이나 빨간색을

가지고도 이처럼 많은 문화적 코드를 읽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상당히 새로운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게 해준 저자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우리가 아는 것은 정말 아주 보잘것 없는 일부분

에 지나지 않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고 겸허함이 모든 학문의

기본자세가 아닐까 하고 되새겨 봅니다.


감사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