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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Jul 10. 2017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 지도 몰라>

“김용택의 꼭 한번 필사하고 싶은 시(詩)”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 지도 몰라>

--“김용택의 꼭 한번 필사하고 싶은 시(詩)”


                                 강 일 송


오늘은 섬진강시인 김용택(1948~)이 권하는 따라 쓰기 좋은 시,

몇 편을 함께 보려고 합니다.


그는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농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물두 살에

모교인 덕치초등학교 교사가 됩니다. 교사가 되고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생각이 일어나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그것이

시가 되었다고 합니다.

2008년 퇴직한 후 강연을 하고 글을 쓰며 지내는데, 오늘은

그가 소개하는 시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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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물리학

       김 인 육(1963~)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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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시인이 책의 처음에 뽑아 실은 시입니다.

보통 수십 편의 글 중, 처음에 싣는 글은 작가의 의도를 가장

많이 품고 있든지, 자기 맘에 가장 드는 글이겠지요.


과학과 가장 거리가 멀 것 같은 사랑에서 시인은 또다른

물리적 법칙을 발견합니다.

질량의 크기가 클수록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해서

더 세게 끌어당길 텐데, 사랑에서는 이게 올바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자그마한, 하늘거리는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끌어

당깁니다.

심장소리는 쿵쿵거리고, 마음은 하늘에서 땅까지 진자운동을

합니다.


첫사랑을 참으로 과학적(?) 방법으로, 하지만 가장 잘

문학적으로 표현한 시가 아닌가 합니다.


다음 시를 한번 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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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곽 효 환(1967~)


그날, 텔레비전 앞에서 늦은 저녁을 먹다가

울컥 울음이 터졌다

멈출 수 없어 그냥 두었다

오랫동안 오늘 이전과 이후만 있을 것 같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밤, 다시 견디는 힘을 배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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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 식사를 하면서 TV를 보다가 시인은 울컥 울음이

터집니다. 멈출 수 없을 정도의 슬픈 일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이전과 이후로 삶을 나눌 정도니 대단한 일임에는

분명합니다. 밤새 잠도 못 이룹니다.


누구나 이러한 슬픈 일을 살다보면 겪게 되겠지요.

하지만 그는 그냥 무너지지 않고, 다시 견디는 힘을 배우기로

작정합니다.


오직 다시 일어서기로 마음 먹은 자만이 다시

일어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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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시

    이 정 록(1964~)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내 몸이 너무 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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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짧은 시(詩)지요.

하지만 딱 세 줄의 글로도 이처럼 시는 많은 것을 되새기고

추억하고 느낄 수가 있습니다.


마을이 가까운 곳의 나무는 아이들이 와서 장난치며 올라가기도

하고, 어른들이 기대어 서기도 하며 생채기가 나고 흠집이 잘

날 것입니다.


근데 나의 몸은 너무 성합니다.

몸이 성하면 좋은 일이건만, 성한 몸이 오히려 슬프게 시인은

말하고 있습니다.

즉, 내 몸이 마을에서 너무 먼 것이지요.

마을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고, 즐거운 일, 슬픈 일, 기쁜 일,

아픈 일 들이 모두 생겨납니다.

하지만 시인은 몸이든 마음이든, 홀로 있나봅니다.

내 몸이 성해서 슬픈 역설적인 감정.


시는 참 짧은 글로도 많은 이야기를 건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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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러진 길

     이 준 관(1949~)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 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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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평탄하고 고생 없이 살아온 사람보다 울퉁불퉁한

인생길을 살아온 감자같은 사람이, 흙냄새 나는 사람이

좋다고 합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더 많은 것은 유속이 느리니

물고기가 살기에 더 좋아서일 것이고,

구부러진 길은 산세가 험하기에 구불구불 돌아서 길이

날 수밖에 없으니 깊은 산속일 것이고, 이곳에는 들꽃도

많고 별도 많겠다 싶습니다.


날이 저물면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소리,

들꽃을 반가이 마주할 수 있고, 순박한 감자 캐는

농부를 만날 수 있는 길.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과 이웃을 품고 가는 사람과

함께 하는 길.


시인 뿐아니라 저도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을 만나고

또 동행하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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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김용택 시인의 시선집(詩選集)을 함께 보았고,

나름의 감상을 나누었습니다.

김용택시인은 섬진강가의 초등학교에만 수십 년을 살아서

인지 도시의 냄새보다는 토속의 냄새가 가득합니다.


오늘 하루도 구부러진 길 같은 인생을 살지만,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처럼 살기를 고대해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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