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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Jun 26. 2017

<그대를 듣는다>

“운명이 가슴을 두드리는 소리”

<두근두근, 그 설렘과 떨림> 정재찬

“운명이 가슴을 두드리는 소리”

             --<그대를 듣는다>(2017.6.5)中


                                  강 일 송


오늘은 시 에세이집을 한 권 보려고 합니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는 저서로 공대생에게 시적 감수성을

불러 일으켰던 저자는 다시 한번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 작품을

세상에 내어 놓았습니다.


저자인 정재찬교수는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및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습니다. 현재 한양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중이고, 저서로는 “시를 잊은 그대에게”,

“현대시의 이념과 논리”, “문학교육의 사회학을 위하여” 등

여러 권이 있습니다.


오늘은 떨림과 설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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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굽이굽이 들려오던 그 소리, 두근두근


소싯적 간단하게 배웠던 것이 의성어와 의태어였건만, 생각할수록

구별이 만만찮다. 실제로 ‘보글보글’이라는 단어는 의성어로도

의태어로도 쓰일 정도니 말이다.

문제는 감각의 분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그게 어느 기관에서

느껴지는지 헷갈릴 때가 있는데, 내 경우, ‘두근두근’이 그렇다.


머릿속으로야 그것이 의태어임을 모를 리 없건만, ‘두근두근’을

몇 번만 반복해 소리 내어 보면 그새 가슴팍에서 소리가, 내

안에서 가슴을 두드리는 소리가, 인생의 굽이굽이 삶의 고비마다

나를 두드리던 그 소리가 선뜻선뜻 들려오는 것이다.

두근두근은 내 오감을 흔들며 추억을 반추하고 회상하게 하는

단어 하나로 이루어진 마법의 시인 셈이다.


불안 없는 설렘, 설렘 없는 불안은 그런 소리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인생의 장애물은 불안의 원천이자 쾌감의 디딤돌이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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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랑


         고 재 종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번 피우려고

눈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랴


싸그락 싸그락 두드려보았겠지

난분분 난분분 춤추었겠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고 수백 번,


바람 한 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을 위하여

햇솜 같은 마음을 다 퍼부어 준 다음에야

마침내 피워낸 저 황홀 보아라


봄이면 가지는 그 한번 덴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를 터뜨린다


-------------


저 아래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향해 눈송이는 하늘 한복판에서

부터 도움닫기를 한다. 빗나가기 일쑤다. 스치는 정도로는 안 된다.

착지까지 완벽하게 단단하게 붙어야 한다.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고 수백 번의 두근거림을 겪고 나서야

마침내 눈은 눈물 나게 아름다운 눈꽃이 된다. 아. 황홀한

첫사랑이여.


김애란의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2011)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열일곱 살에 자식을 낳고 서른네 살이 된 부모와, 부모가 자신을

낳던 열일곱 살이 되었으나 조로증으로 죽음을 앞둔 아들의 이야기

를 담고 있다.

아이같은 부모(그래도 역시 부모다운 부모)와 어른 같은 자식(

그래도 역시 자식다운 자식)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이야기가

그려진 작품이다.


아들인 아름이가 두근두근함을 처음 느낀 것은 엄마 뱃속에서

탯줄을 통해서였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어두운 공간에서 내 몸은 자꾸 자라났다.

주위에선 쉴 새 없이 쿵,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를 귀가 아닌 온몸으로 들었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두근두근...”

‘두근두근’은 그가 최초로 들은 귀가 아닌 온몸으로 들은 소리였다.

‘떨림’이고 ‘암호’였다.


아름이는 마지막으로 두렵고 떨리는 길을 홀로 건너야 한다.

바로 그 때, 아름이는 아주 오래전 탯줄로 만난 어머니의 두근거림

을 다시 만나게 된다. 이번엔 아버지다. 먼 길 떠나가는 아들을

힘껏 안아 주는 아버지, 가슴께로 펄떡이는 아버지의 심장박동이

아름이에게 전해진 것이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파동 안에 머물렀다. 아주 오래전, 어머니의

뱃속에서 만난 그 런 박자를 다시는 경험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그와 비슷한 느낌의 방법을 비로소 알아낸 기분이었다. 그건 힘껏

누군가를 안아 서로의 박동을 느낄 만큼 심장을 가까이 포개는

것이었다.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나는 아버지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 사랑은 두 개의 심장을 가까이 포개는 것


사랑이란 두 개의 심장을 가까이 포개는 거다. 두근거리며 안았을

때, 안긴 그의 두근거리는 심장이 느껴질 때 우리의 심장은 더

두근거리게 된다.

둘의 가슴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엄청난 파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 파동은 13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블랙홀 한 쌍이 합쳐져

생겨난 중력파와 다름없다.


학교에서 뜀틀 뛰던 아잇적부터, 열일곱 지나 첫사랑하고, 서른

지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부정맥이 두려운 쉰이 넘은 지금까지,

아니 죽는 그 순간까지도 설렘과 떨림, 이 아름다운 두근거림을

나는 잃지 않으련다.


일찍이 베토벤은 교향곡 제5번 c단조 제1악장 첫머리의 동기에

대해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라고 했다지 않은가.

두근거림이란 내 가슴속에서 운명이 두드린 소리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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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시를 잊은 그대에게>라는 책으로 수많은 대중들에게

시적 감흥을 전해주었던 정교수의 새로운 책을 보았습니다.


그는 오늘 인간의 "두근거림, 설렘, 떨림"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흔히 어른과 아이를 구분 지을 때, 설렘이 남아 있는냐를 말하는

사람도 있지요.


첫 번째 인용한 시, 고재종의 "첫 사랑"은 사람들이 가장 설렘과

두근거림을 많이 느끼는 일인 첫사랑에 대한 감정을 아주 멋지게

표현을 했습니다.  수없이 도전하여 나뭇가지에 안착한 후

눈꽃을 피워내는 저 눈,  그리고 그 덴 상처에 봄이면 아름다운

꽃을 다시 피우는 자연의 섭리.


두 번째 이야기는 김애란의 소설이야기였습니다. 이른 나이에

자식을 가진 어린 부모와, 조로증에 걸려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된

아이.  그 사이에는 상상을 초월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습니다.

아이는 생의 시작인 엄마 뱃속에서 들었던 심장소리 "두근거림"을

생의 마지막 순간 아버지와 안고 그 심장소리를 다시 듣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사랑은 두 개의 심장을 가까이 포개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 두근거리고 쿵쿵거리는 소리를 듣고 느끼는 것이라고.

사랑의 소리는 "운명이 가슴을 두드리는"소리와 정확히 같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황지우 시인의 시를 인용하며 마치고자 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는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은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 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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