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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헌 서재 Aug 01. 2017

<서리맞은 단풍잎, 봄꽃보다 붉어라>

<서리맞은 단풍잎, 봄꽃보다 붉어라>

--“유병례 교수와 함께하는 한시 산책”


                                      강 일 송


오늘은 아름다운 한시(漢詩)의 세계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저자인 유병례교수는 백거이 시 연구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성신여대 인문대학장, 한국중어중문학회 부회장을 역임했습니다.

저서에는 “당시 30수”, “송시 30수”, “그래도 인생은 아름다워라”, “톡톡 시경본색”

등이 있습니다.


저자는 시(詩)란 비범하고도 평범한 휴머니즘의 발현이라고 말합니다. 이 책은 KBS 제1

라디오 <행복한 시니어> 코너에서 방송된 원고를 모아 정리한 책이라 합니다.

그중 몇 수 뽑아서 감상을 더해 보겠습니다.


★ 그윽한 향기 꽃 그림자 온몸 가득하여라


동산의 작은 매화

           임 포(967-1024)


모든 꽃 떨어진 후 홀로 고운 자태 드러내어

작은 동산의 풍광을 모두 차지하였네.

성긴 그림자 비스듬히 밝은 물에 비치고

그윽한 향기 황혼 후 달빛 아래 풍겨온다

하얀 학 앉으려다 먼저 눈길 멈추고

꽃나비 알았다면 넋이 끊어졌으리라.

다행히 나지막이 시 읊조리며 매화에 가까이 할 수 있으니

노래 부르고 술 마시며 감상할 필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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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월야영매

          이 황(1501-1570)


뜨락을 거니노라니 달님은 날 따라오고

매화 곁 돌기를 몇 번이나 하였던가

밤 깊도록 앉아서 일어날 줄 모르니

그윽한 향기 꽃 그림자 온몸 가득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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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중국과 우리나라의 시 두 편을 함께 보았습니다. 송나라 시인 임포(967-1024)는

매처학자(梅妻學者)라 불리는 시인이라 합니다. 말그대로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

으로 삼아 평생 은거하며 지낸 시인입니다.

임포는 중국을 대표하는 매화 매니아이고, 우리나라에는 퇴계 이황이 있지요. 죽는 순간

까지 매화에 물을 주라고 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매화 사랑이 얼마나 지극하였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매화는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꽃이기에 일찍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고, 그 가치는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중국, 일본, 우리나라, 동양 3국의 공통된 교집합

을 찾으라면 매화사랑이라고 이어령교수가 이야기했었습니다.


임포의 시를 보면, 달빛 아래 매화의 그림자는 맑은 시냇물에 비칩니다. 그리고 그윽한

매화의 향기는 은은한 달빛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강한 자극성 있는 향이 아니라 그윽하게

시인에게 다가옵니다. 500년이 훌쩍 지나 도산서원을 밤에 거니는 퇴계도 똑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매화가 핀 달이 비치는 뜨락을 퇴계는 거닐었고, 매화를 수없이 맴돌다보니

그윽한 그 향기와 매화의 그림자가 내 몸에 가득 배이게 됩니다.


이번에는 두보의 시를 한번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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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반독보심화

           두 보(712-770)


강가에 핀 봄꽃 내 마음 마구 흔들어놓아

그 아름다움 말해줄 데 없어 미칠 것 같네

남쪽 마을 술친구 찾아 허겁지겁 달려갔더니

열흘 전 술 마시러 나가고 빈 침상만 홀로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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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배경을 보니, 시성(詩聖)이라 불리는 두보가 40대 후반에 지은 시라고 합니다.

두보가 직장도 없이 정처없이 떠돌다가 친구의 도움으로 사천성 성도에서 직장도 얻고

거처도 마련하여 오랜만에 안정된 생활을 누리게 된 시기에 쓴 시라네요.

생활이 안정되니 마음이 여유롭습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꽃이 비로소 눈에 들어

옵니다. 혼자 강가를 거닐다 만난 봄꽃이 미치도록 아름다워 친구를 찾았으나 이미

그 친구는 봄에 취해 술을 마시러 나가고 없습니다.

그 친구에 그 친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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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 책의 제목을 이루는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 : 803-852)의 “산행”이라는

시를 보겠습니다.


산 행

    두 목(803-852)


저 멀리 차가운 산 비탈길 올랐더니

흰 구름 피어오르는 곳 인가 드문 보이어라.

가던 수레 멈추게 한 건 아름다운 황혼 단풍

서리 맞은 단풍잎, 봄꽃보다 붉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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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중국의 장쩌민(1926~)주석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였을 때, 곱게 물든 단풍잎

을 보고 읊조렸던 시라고 합니다.

시인은 산을 오릅니다. 비탈길을 따라 오르다가 흰 구름이 있고, 인가가 드문드문

보이는 곳에 다다랐고, 거기에서 붉디 붉은 단풍잎을 만납니다. 서리 맞은 단풍잎이

어찌 봄꽃보다 붉겠습니까마는 시인의 눈에 비친 석양이 질 무렵의 단풍잎은 더할

나위없이 붉고 아름다웠나봅니다.

봄꽃이 상징하는 젊음, 청춘보다 황혼의 나이가 더욱 붉고 아름다울 수 있음을 우리

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겠지요.

젊음은 젊은대로의 맛이 있고, 황혼은 황혼대로의 맛이 다릅니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더욱 성숙하고 아름답게 몸과 마음이 익어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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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한 수 더 보겠습니다.


술잔을 들며

         백거이(772-846)


달팽이 뿔 위에서 무엇을 다투는가?

부싯돌 불꽃처럼 짧은 순간 살거늘

풍족한 대로 부족한 대로 즐겁게 살자.

하하 웃지 않으면 그대는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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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거이의 이 시는 돌아가신 현대의 정주영(1915-2001)회장이 서재에 걸어놓고 음미하던

시라고 합니다. 장자에서 달팽이 왼쪽 뿔에 있는 나라가 촉씨이고, 오른쪽에 있는 나라가

만씨인데, 두 나라는 수시로 전쟁을 하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만촉(蠻觸)은 하찮은 것을

가지고 다툰다는 뜻으로 사용한다고 하네요. 우리 인생의 삶을 백거이는 1200년 전에

이렇게 통찰하고 있습니다. 조그만 생명체인 달팽이의 뿔 위에서 서로 싸우고 다투는

우리네 인생, 그것도 부싯돌 번쩍하는 그 짧은 시간밖에 못사는 삶에 무엇이 풍족하고

무엇이 부족할 것이냐고 말합니다.

이 순간을 즐기고 소중하게 생각하며 웃고 살자고 백거이는 시대를 관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한시 몇 편을 통해서 우리의 삶과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을 함께 가져보았습니다.

어떤 긴 산문보다, 짧은 시가 때론 더 강하게 우리를 깨우칩니다.

주위에서 보이는 사소한 일이나 조그마한 사물에서도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감동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도 시적 여운이 함께 하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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