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 지도 몰라> - 클래식
--“필사해서 갖고 싶은 한국 대표 시(詩)”
강 일 송
오늘은 섬진강시인 김용택(1948~)이 엮은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 지도 몰라”
시리즈의 마지막편을 함께 보려고 합니다.
그는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농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물두 살에 모교인 덕치초등학교
교사가 됩니다. 교사가 되고 38년 동안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시를 썼
다고 합니다.
2008년 퇴직한 후 강연을 하고 글을 쓰며 지내는데, 오늘은 그가 뽑은 우리나라 대표 시인
들의 시 중 몇 편을 골라서 함께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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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주(1917-1948)
창 구 멍
윤 동 주
바람부는 새벽에 장터가시는
우리아빠 뒷자취 보구싶어서
춤을발라 뚫어논 작은창구멍
아롱아롱 아침해 비치웁니다.
눈나리는 저녁에 나무팔러간
우리아빠 오시나 기다리다가
혀끝으로 뚫어논 작은창구멍
살랑살랑 찬바람 날아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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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시인이 뽑은 첫 번째 대표시인은 윤동주 시인입니다. 대표작인 <서시>로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시인이고 영화 “동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만주 간도에서 태어나, 평양, 경성을 거쳐 일본 도쿄, 교토를 지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했지요. 특유의 여린 심성과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 그는 오늘 시에서도
동시에서와 같은 감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장터 가시는 아빠, 나무 팔러간 아빠가 그립고 보고 싶어 뚫어놓은 창구멍은 아롱아롱 햇빛도
들어오고, 살랑살랑 찬바람도 들어옵니다. 보고싶다고 창을 활짝 열고 본 것이 아니라 창호지를
침을 발라 뚫어서 본 것이 훨씬 더 애틋하지요?
아롱아롱, 살랑살랑이란 말도 정겹습니다.
★ 김영랑(1903-1950)
못 오실 님
김 영 랑
못 오실 님이 그리웁기도
흩어진 꽃잎이 슬프랬던가
빈손 쥐고 오신 봄이 그저 다 가시련만
흘러가는 눈물이면 님의 마음 젖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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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시인은 김영랑 시인의 시입니다. 김영랑 시인은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토속적이고 아름다운 시어로 노래한 시인이지요.
이번 시는 “님”에 대한 내용의 시인데, ‘오실 님’이 아니라 하필 ‘못 오실 님’입니다.
못 오실 님은 얼마나 그립고 안타까울까요. 꽃잎도 흩어진 꽃잎만 눈에 들어옵니다.
시인의 슬픔이 흩어진 꽃잎에 그대로 전이가 됩니다. 오신 봄은 좋지만 님을 데리고 와야
더 좋을텐데, 빈손으로 온 봄이 이제 떠나갈 시기까지 되었나봅니다.
내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얼마나 많이 흘렀으면 멀리 있는 님에까지 강물처럼 흘러서
그 마음까지 젖게 할 것이라 했을까요.
★ 김소월(1902-1934)
먼 후 일
김 소 월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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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시는 <진달래꽃>, <엄마야 누나야>로 유명한 김소월 시인의 작품입니다.
시인은 사랑하는 당신을 떠나보냈나 봅니다. 매연마다 잊었노라, 라고 반복을 하지만
이는 절대 잊지 않았고, 잊을 수 없다는 반어적, 강조의 의미이지요.
잊었노라,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라고 점점 잊음에 대해서
강도를 더하다가, 마직막엔 어제 오늘도 아니 잊고 먼 훗날에 잊었노라 라고 그의 마음을
미래에까지 연장을 합니다.
그냥 당신이 그리워 잊을 수 없다 라는 표현보다 얼마나 더 간절하게 잊을 수 없음을
표현하고 있는지, 이는 오직 시(詩)를 통해서만 가능하겠지요?
마지막으로 한 편만 더 보겠습니다.
★ 박용래(1925-1980)
울타리 밖
박 용 래
머리가 마늘쪽같이 생긴 고향의 소녀와
한여름을 알몸으로 사는 고향의 소년과
같이 낯이 설어도 사랑스러운 들길이 있다
그 곁에 아지랑이가 피듯 태양이 타듯
제비가 날 듯 길을 따라 물이 흐르듯 그렇게
그렇게
천연히
울타리 밖에도 화초를 심는 마을이 있다
오래오래 잔광이 부신 마을이 있다
밤이면 더 많이 별이 뜨는 마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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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래 시인은 1955년, 박두진의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에서 등단을 하였다 합니다.
한국적 정서를 담은 아름다운 시를 많이 쓴 그는, 제목부터 정겨운 울타리 밖이라는 시를
남겼습니다. 전반적으로 그립고 정겨운 고향 마을을 시는 표현하고 있네요.
머리가 마늘쪽 같이 단정한 소녀, 하루종일 냇가에서 뛰어 논다고 벗고 살다시피 하는 소년이
있는 고향입니다. 그 곳에는 사랑스러운 들길이 나 있고, 그 들길은 아지랑이가 아른거리듯
제비가 날 듯 물처럼 길이 구비구비 흘러갑니다.
보통 자기 집안에 화초를 심지만, 이 마을은 울타리 밖에도 화초를 심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입니다. 짐작이 가시지요? 이런 마을은 빛이 저물어도 잔광이 오래오래 남습니다.
마음이 따뜻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 오래오래 마음속에 남아 있듯이 말이지요.
게다가 이 마을은 밤에 별이 쏟아지듯 많이 떠 있는 마을이네요.
시인은 ‘시즉화’詩卽畵, ‘화즉시’畵卽詩, 즉, 시가 곧 그림이고 그림이 곧 시라는 것을
이 시를 통해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몇 줄의 시지만 너무나 확연히 이 마을이 마음
속으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지요?
오늘도 시적 감성이 촉촉한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