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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과 사랑의 대화>

by 해헌 서재

<영원과 사랑의 대화> 김형석

--“100세를 목전에 둔 1세대 철학자의 대표작”


강 일 송


오늘은 우리나라 에세이 역사에서 처음으로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100세를 목전에

둔 노학자 김형석(1920~)교수님의 글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교수님은 평안북도에서 태어나 평양숭실학교를 거쳐, 일본 조치대학교 철학과를 졸업

했습니다. 서울중앙중고등학교의 교사와 교감으로 일하였고, 1954년부터 연세대학교

철학교 교수로 31년간 있으면서 한국 철학계의 기초를 다지고 후학을 양성했습니다.


오늘 저서는 1961년 쓴 “영원과 사랑의 대화”의 편집판으로 당시 60만 부 판매를 올리며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던 책입니다.

그중 2편 정도를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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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명과의 대결


“네가 걸어가는 것을 보면 꼭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걸으셨단다.”라는

말을 어머니에게서 자주 듣는다. 할아버지는 내가 두 살이나 세 살 났을 때 세상을 떠나

셨다. 나는 할아버지를 본 기억도 없다. 그런데 내 걸음이 할아버지를 닮았다니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걸음만 닮았겠는가, 내 성격도 부모를 닮았을 것이며, 취미, 품성은 모두

내가 이 세상에 오기 전에 이미 결정적으로 주어진 것들이었다.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숙명적인 일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 한국에 태어났다는 것도 하나의 운명적인 사실이다. 내가 이 시대를 택한

것도 아니며 한국에 나기를 원한 바도 없었다. 이것은 하나의 우연이며 불가사의한 일이다.

그러나 이미 내가 주어진 뒤, 내 삶이 던져진 뒤에는 이 누구도 모르는 우연이 절대적인

필연성과 운명적인 결정성을 지니고 나에게 나타난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절대적인 것이

며, 우리들의 생존성은 무엇보다도 고귀한 것으로 변한다.

정히 인간은 우연에서 절대, 무에서 유, 공허에서 실재를 얻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나로 하여금 나 되게 한 이러한 과거를 운명적인 것이라 불러본다.


그러나 이렇게 운명적인 조건이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다 해도 우리들의 자유는 또 어디까지

나 자유다. 비록 주어진 운명이 동일하고 환경적 조건이 같다고 해도 노력과 수고의 결과에

따라 제각기 다른 삶의 결과와 성과를 가져오는 것이 인생이다.

자유와 노력의 필요는 여기에 있다. 운명이 절대적인 것같이 자유도 또 절대적인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운명적인 것들을 두려워 말자. 그것들 때문에 약해지지도 말며 스스로의 무능

과 환경을 슬퍼하지도 말자. 오직 우리에게는 과감한 혁신, 신념, 꾸준한 노력이 있을 뿐이다.

운명을 타개하고 개척하여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보자.


★ 무엇이 의미 있는 삶인가


사람은 왜 사는 것일까?

나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같은 질문을 던져 보았다.


내가 아는 한 목사가 있었다. 딸들은 몇이 있었으나 아들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 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 때, 전신의 피곤과 더불어 이름 모를 병을 앓기 시작했다. 몇 차례 의사의

면밀한 진단을 받은 결과, 놀랍게도 백혈병으로 나타났다. 부모는 절망에 가까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얼마 후 아들은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한쪽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으나 병세는 호전

되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와 의사는 아이에게 계속 좋아지고 있다는 말로 위로를 거듭할

뿐이었다. 그러나 운명의 날은 다가오고 있었고, 드디어 아버지는 아들을 품 안에 꼭 껴

안고는 진실을 알려주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품에 몸을 기댄 채 흐느껴 울기 시작했고,

아버지도 어머니도 함께 울었다. 며칠 뒤 아들은 눈을 감았다.

몇 달 뒤 나는 그 목사를 만났다. 검었던 머리에 눈에 띌 정도로 백발이 섞여 있었다.

그 소년은 생명이 싱싱해야 할 나이에 왜 세상을 떠나야 하는 것일까. 그 부모는 왜 그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일까.


톨스토이가 소개해준 동양의 우화가 생각난다. 어떤 사람이 들길을 가다가 사자를 만났다.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도망을 치다가 빈 우물로 뛰어들었다. 마침 우물에 걸쳐 있는 나뭇

가지를 붙들었다. 우물 위를 보니 사자가 으르렁거리고 있었고 아래를 보니 큰 구렁이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나뭇가지를 쳐다보니 설상가상으로 두 마리의 쥐가

교대해가면서 나뭇가지를 갉고 있었다.

이제 길손에게 남은 것은 죽음뿐이다. 남은 것은 얼마의 시간뿐이었다. 그때였다. 머리를 드니

벌이 나는 소리가 들리고 자기 옆 가지에 꿀벌들이 꿀을 치고 있었다. 길손은 머리를 들어

혀를 내밀고 벌들이 모아놓은 꿀을 핥아먹기로 했다. 죽음은 오더라도 꿀은 먹어야

하겠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 삶이 그런 것이다. 어차피 죽음은 찾아오기 마련이나 그때까지 벌꿀을 따 먹으면서

삶을 연장해가는 인생일 따름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겪어야 하는 인생의

운명이다. 만일 인간에게 죽음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마 지구는 늙어서 거동할 수

없는 노인들로 가득 찰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문제는 무엇인가. 태어나기 이전의 문제를 묻거나 죽음 뒤의 결과를

따지는 것은 어리석은 질문이 된다. 그것은 불필요한 인생의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문제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계속적인 내 인격의 완성이 필요하다.

인간은 결국 자기 인격의 성장만큼의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인격 이상의 삶을 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릇의 크기만큼 물건을 담을 수 있다는 이치와 마찬가지이다.

아리스토텔레스나 괴테가 ‘인격이 최고의 행복이다.’라고 말한 데는 이유가 있다.


둘째는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높여가는 일이다. 공자의 기본정신은 무엇인가.

결국 어떻게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육성해가는가 함이다.


셋째로 중요한 것은 삶에 대한 공감과 동참성이다. 석가의 고귀한 정신은,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고뇌와 비참을 언제나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그 해결을 얻으려고 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값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이 ‘삶에의 동참’이다. 이웃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며 다른 사람의 슬픔과 고통을 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정신적 자세인 것이다.


끝으로 한 가지만 더 추가하기로 하자. 인간이 가장 귀하게 사는 길은 무엇인가. 때로는

나 자신의 것과 자신을 양보하거나 희생하더라도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삶이다. 따져보면 역사와 사회의 영원한 건설은 그런 정신과 뜻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인류의 구원이 있다고 믿었고 이를 실천하였다.


왜 살아야 하는가.


만일 지금까지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면 그래도 우리는 삶의 가치와 의미를 스스로

창조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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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나라 철학계의 원로이고, 에세이에 있어서도 첫 베스트셀러를 기록했

던 연세대학의 김형석교수님의 글을 보았습니다.

교수님은 얼마전 "백세를 살아보니"라는 책을 내셨고, 오늘 책은 무려 56년 전에

이미 최고의 판매수를 올리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책을 리메이크해서 낸 책

입니다.


첫 번째 글은 운명(運命)에 관한 글이었습니다.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 할아버

지의 발걸음과 자신이 닮았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저자는 사유의 나래를

펼쳐갑니다. 비단 발걸음 뿐만 아니라 성격, 기호, 입맛, 취미, 품성 등 모든 것이

이미 유전자를 통해 전해져 왔을 것이고 이는 바꿀 수 없이 주어진 운명, 숙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는 또한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자유도 함께 주어졌는데 이

자유를 통해서, 운명이나 숙명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저자

는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글은 의미있는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역시 철학 교수님답게 아리스토텔레스, 괴테, 공자, 석가, 예수 등 옛 성현들을 다

동원해서 인간의 삶의 의미를 풀어냅니다.

아들을 백혈병에 잃은 목사 이야기, 톨스토이가 소개한 동양의 우화이야기는

인생의 고단함과 고통을 절실하게 드러내줍니다. 머리가 하얗게 셀 정도로 자식

을 잃은 고통은 크고, 사자를 피해서 들어간 우물에는 구렁이가 입을 벌리고 있으

며, 잡은 나뭇가지는 쥐들이 갉는 상황은 인간이 삶을 살면서 만나게 되는 갖은

힘든 상황을 말해주지요. 그래도 눈앞의 꿀을 먹듯이,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알면서도 하루하루를 꿀을 먹듯이 살아나갑니다.


그런 삶을 의미있게 해주는 4가지를 말해주는데, 자기 인격의 크기만큼 인생을

살아갈 수 있으므로 내 인격의 성장을 도모하라고 하고, 둘째는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구축하라고 합니다. 세번째는 타인의 고통과 어려움을 자기의 일처럼

공감하고 동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고, 마지막으로 이기주의를 벗어나

타인을 위해서 스스로를 양보하고 희생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인간의

덕목이라고 말합니다.


철학을 전공한 노교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등대와도 같이

느껴집니다.


오늘 하루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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