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을 팝니다>

by 해헌 서재

<느낌을 팝니다>

--“사회학자의 오롯한 일인 생활법을 쓴 에세이”


강 일 송


오늘은 에세이집을 하나 보려고 합니다.

저자인 우에노 지즈코(1948~)는 교토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했으며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여성학, 젠더 연구의 개척자였고, 현재 도쿄대학교 대학원 인문사회계

연구과 명예교수로 있습니다.

1994년 “근대 가족의 성립과 종언”으로 산토리학예상을 받았고 다양한 베스트셀러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의 에세이중 한 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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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비꽃 향수


어머니를 떠나보낸 후 경대에 향수 몇 병이 남았다. ‘샤넬 넘버5’ 사이에서 풀 냄새가 은은한

제비꽃 향수를 발견했다. 어머니는 제비꽃 색을 좋아했다. 그리고 제비꽃 색이 잘 어울리기

도 했다. 나는 어머니가 향수 중에서도 특히 풀 냄새가 나는 제비꽃 향수를 좋아했다는 것을

떠올리며 향수병을 주머니에 챙겼다.


생전의 어머니와 나는 결코 사이좋은 모녀가 아니었다.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녀간

대립을 반복하며, 나는 한결같이 ‘절대로 엄마처럼 안 살 거야’ 라고 생각했고, 어머니는

당신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딸이 멀어져가는 것을 원망했다. 한 많은 어머니의 인생은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생활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어머니를 나는

싫어했다.


그래도 내 삶의 근거를 부여해준 한 쌍의 남녀는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내 앞에

벽처럼 서 있었다.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그것은 벽이었다. 부모를 잃은 친구가

말하길 “부모를 여읜다는 것은 죽음과 자신 사이에 놓여 있던 가로막이 없어지고 허허벌판

에 내던져지는 느낌”이라고 했는데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내 안의 감정이 미처 정리되기 전에 어머니는 내 곁을 떠났다. 나는 마치 황야에 홀로

남겨진 아이처럼 죽은 자를 향해 우는소리를 뱉을 수밖에 없었다. 죽은 자는 쉽게 나를

놓아주지 않았고, 나는 풀리지 않은 감정을 정리하느라 반년 동안이나 대화를 되풀이해야

했다. ‘어머니, 당신은 죽어서까지 나를 옥죄는군요.’ 나는 한때 이렇게 생각도 했는데

그러면서도 죽은 자의 모습은 조금씩 변해갔다.


혼자 남겨진 고령의 아버지는 내가 친정에 갈 때 마다 어머니와의 추억담을 이야기하곤 하셨다.

그것도 가까운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십 년 전 신혼 시절을 자세하게 설명하셨는데

당연히 그 추억 속에 자식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내가 절대로 공유할 수 없는 추억을

무척이나 행복한 얼굴로 말하는 늙은 아버지는 당신들이 얼마나 사이좋은 부부였는가를

되뇌며 나에게 동의를 구한다.

그때마다 나는 가슴이 저렸다. 아이의 눈에 결코 사이좋은 부부로 비치지 않았던 이

남녀는 혹시 내가 모르는 곳에서 깊은 상호 의존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과거의 미화가 아니다.

“우리 부부는 참 사이가 좋았지.”라며 동의를 구하는 아버지에게 간단히 고개를 끄덕여줄

수는 없지만, 먼 곳을 바라보며 짓는 아버지의 행복한 표정에 나는 희미한 미소로 대답

하며 어쩌면 어머니는 정말로 행복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투병생활이 길었던 어머니는 의사인 아버지에게 그녀의 마지막을 맡겼고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당신 손으로 보내겠다고 고집했는데, 당신이 의사가 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라는 말씀까지 하셨다. 고령의 아버지가 매일 밤 어머니를 보살

피다가 같이 쓰러지게 될 것을 걱정한 자식들이 여러 차례 입원을 건의했지만, 그때마다

아버지는 “너희들은 어머니와 나를 떼어놓을 작정이냐”며 완강하게 거부하셨고 너희들은

아직 부부라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고도 말씀하셨다.


이내 자식들은 의료 과실로 어머니가 죽음을 앞당기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은 어머니의

운명이라 체념하게 되었고, 어머니 본인도 그 운명을 받아들인 듯이 보였다. 두 분의

관계는 행복이나 불행이라는 개념을 넘어선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자식이라도

제삼자인 내가 그들을 ‘행복’했다거나 ‘불행’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관계 당사자 중 한 명이 행복하다고 말할 때 그것을 부정할 수 있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어쩌면 어머니는 행복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내 안에는 곧 용서하는 감각

그리고 용서받는 감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반년 후 봄이 찾아왔고, 나는 어머니의

유물인 제비꽃 향수를 몸에 뿌리기 시작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향수는 사용하면 없어진다.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 향수의 운명이다.

뿌릴 때마다 조금씩 줄어드는 제비꽃 향수에 위기감을 느낀 나는 같은 향수를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한 자연식품 가게에서 제비꽃에서 직접 추출했다는

향수를 발견한 적이 있는데 역시 어머니의 것과 같은 것은 아니었다.


‘곧 사라져 없어질 것이다.’ 이 사실을 곱씹으면서 나는 어머니가 남긴 제비꽃 향수를

쓰고 있다. 나에게 삶을 부여해준 근거의 일부를 잃은 후, 솔직히 말해 나는 커다란

짐을 어깨에서 내린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다. 죽음과 나 사이의 가로막이 없어진

황량한 들판에는 또한 거칠 것 없는 자유로움이 있다.


결국 나는 어머니의 인생을 책임질 수 없었다. 라는 당연한 사실을 떠올리며(그 반대

역시 성립한다.) 나와 깊은 인연을 맺었던 한 여인의 삶이 막을 내린 후, 나는

보랏빛 향기 속에서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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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사회학자이자 교수인 여작가의 글을 한번 보았습니다.

저자는 사회학자이자 수필가로 담담하고 차분하게 글을 써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어머니와 그리 사이가 살갑지 않았던 딸이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가 좋아하던 제비꽃 향수를 매개로 비로소 어머니와 감정적

화해를 하게 됩니다.


부모가 돌아가시는 것이 " 죽음과 자신 사이에 놓여 있던 가로막이 없어지고 허허

벌판에 내던져지는 느낌" 이라는 표현이 기가 막히다는 생각입니다.

나에게 인생을 부여해 준 부모님이지만 정서적, 감정적으로 항상 일치할 수는

없는 바이고, 때로는 반목하면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오늘 작가도 또한 미처

감정을 추스릴 새없이 떠나버린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 제비꽃 향수를 지니게

되고, 드디어 그 향수를 몸에 뿌리는 행위로 어머니와 비로소 감정의

응어리를 풀게 됩니다.


오늘 부모와 자녀 사이, 그리고 부부사이, 삶의 시작과 끝 등, 다양한 인생의

주제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차분히 한번 읽어보시고 각자 떠오르는 심상을 느끼고 음미하시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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