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하는 물리학자의 인생 수필”
<도토리>
--“문학하는 물리학자의 인생 수필”
강 일 송
오늘은 근대 일본의 물리학자이자 문필가인 작가의 수필집에서 한 편을 골라 보았습니다.
과학과 문학의 경계를 넘나든 진정한 학자인 저자는 감성적인 수필을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저자인 데라다 도라히코(1878~1935)는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고등학교 시절 당시 영어교사로
있던 나쓰메 소세키를 만나 문학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으나 물리학에 뜻을 두고 도쿄대학교
물리학과에 진학합니다. 이후 우주 물리학 연구를 위해 베를린 대학교에 유학하고 귀국한
다음 이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문필활동을 함께 하였습니다.
저서로는 “바다 물리학”, “지구 물리학”, “후유히코슈”,“만화경”,“가키노타네”등 여러 수필집
도 있습니다. 하지만, 1935년 전이성 골종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오늘 수필집의 대표작인 “도토리”를 한번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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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토리
벌써 몇 해가 흘렀는지 생각나지 않지만 날짜만은 기억한다. 연말을 코앞에 둔 26일 밤이었
다. 아내는 하녀를 데리고 절을 찾아 집을 나섰다. 10시가 넘어 돌아와서는 소맷자락에서
화과자와 군밤을 꺼내, 내가 노트를 보고 있는 책상 한편에 살짝 올려 두고 화장실에 갔다.
그러더니 잠시 뒤에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나와서는 책상 옆에 앉기가 무섭게 기침을 하며
피를 토했다. 나만 놀란 것은 아니었다. 그때 핏기가 사라진 내 얼굴을 보고 마음이 더
무거웠다고, 훗날 아내가 이야기해 주었다.
병인(病人)에게 차도가 보이지 않는 사이에 해는 속절없이 저물고 말았다. 하지만 정월을
맞았고 온화한 날씨가 이어지자 병자도 조금씩 증상이 좋아졌다. 바람 없는 날에는 햇살
비추는 툇마루에 나와 하염없이 종이학을 접거나 아끼던 인형의 옷을 짓기도 했다. 흐리고
추운 날에는 이부자리에서 곡조를 연주할 정도로 나아졌다.
아내는 당시 임신 중이었고, 다가올 5월에 초산이라는 큰 난관을 앞두고 있었다. 게다가
열아홉 살은 운수가 사납다는 액년이었다. 나는 밤에 책상 앞에 앉아 램프를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아내는 의사의 그때뿐인 위로를 굳게 믿어 정말로 일시적인 기관
출혈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도 어딘가 불안한 마음은
있었는지, 가끔 이렇게 묻곤 했다.
“진짜로 폐병이어도 나을 수 있겠지요?”
또, 어떤 때는
“당신, 날 속이고 있지요? 그렇죠?”
하고 성가시게 물으며 내 낯빛을 읽으려 들었다. 나는 그 애원하는 듯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기가 괴로워,
“바보 같으니, 그럴 일 없다 하면 없는 줄 알아!”
하고 매정하게 답했다. 그래도 이 말로 잠시나마 만족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병은 조금씩 나아졌다. 하지만 의사에게 물어보니 좋다 나쁘다 말도 없이,
“아무래도 임신 중이니까요. 오는 5월이 정말 중요합니다.” 하고 불안한 말을 했다.
바람이 불지 않는 포근한 날, 의사에게 허락을 받았으니 식물원에 데려다 준다고 하자
아내는 매우 기뻐했다. 머리가 엉망이라며 곱게 정리하고 온다고 조금 기다려 달라고
해서 툇마루에 앉아 기다렸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에 빨리 나오라고 다그쳤더니
나잇값도 못하고 엎드려 우는 것이 아닌가. 나더러 너무하다면서. 혼자서 어디든 다녀
오라는 것을 겨우 어르고 달래서 밖으로 나왔다. 정말 좋은 날씨였다.
“마음이 증발해 봄 안개가 될 것 같은 날이구나.”
라고 말하니 한 간쯤 뒤떨어져 힘겨운 듯 따라오던 아내는 “네에.”하고 건성으로 답하고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이때 처음 눈에 띄었는데, 아내의 배 부분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크고 걸음걸이도 어색했다. 온실 안으로 들어가자 활력으로 가득 찬, 습한 열대의 공기가
콧구멍으로 들어와 뇌를 뒤덮었다. 한참을 다니자 아내는 왠지 몸 상태가 안 좋아졌다고
하며 벤치에 앉았다.
“이제 슬슬 집에 갈까?”
그러자 아내는 조금 놀란 듯 내 얼굴을 보며,
“모처럼 나왔으니 조금만 더 있어요. 연못에도 가 봐요.”
하고 말했다. 일리가 있다 싶어 그쪽으로 향했다.
내리막길로 접어들자 대학생 두어 명이 새된 목소리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어쨌다느니
하는 얘기를 하며 올라오고 있었다. 연못의 작은 정자에는 서른 즈음의 여인이 사내
아이와 작은 여자 아이와 놀고 있었는데, “우리 아이도 저런 여자애였으면 좋겠어요.”
아내가 평소 하지 않던 말을 했다. 다시 출구를 향해 내려가는데
“어머 도토리가!”
뒤에서 아내가 별안간 큰 목소리를 내며 길섶의 낙엽 속으로 들어갔다. 정말로
도토리가 낙엽에 섞여, 얼어붙은 흙바닥 위를 굴러다니고 있었다. 아내는 그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열심히 줍기 시작했다.
“이제 대강하는 게 어때, 바보 같잖아.”
재촉하듯 말해 보았지만 좀처럼 그만둘 것 같지 않아서 화장실에 갔다. 돌아와 보니
아직도 줍고 있었다. “대체, 그렇게 주워서 어쩌려고.” 하고 물으니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그래도 줍는 게 재밌잖아요.” 하고 답했다. 이제 그만할 줄 알았더니
“당신 손수건도 빌려줘요”하고, 결국 내 손수건에까지 도토리 몇 홉을 채우고는, 혼자서
좋아라 하며 말했다.
“이제 됐어요. 가요.”
도토리를 주우며 기뻐하던 아내는 이제 없다. 묏자리에는 이끼꽃이 몇 번인가 폈다.
산에는 도토리가 떨어지고, 직박구리 우는 소리에 낙엽이 진다. 2월에 새해 들어 여섯
살이 된, 아내가 두고 간 딸을 데리고 그 식물원에 놀러 가서 예전처럼 도토리를 줍게
했다. 이런 사소한 것까지 유전이 되는 건지, 아이는 매우 재미있어 했다.
대여섯 개를 주울 때마다 숨을 헐떡이며 내 옆으로 달려와, 손수건을 펼쳐 놓은 내 모자
속에 던져 넣었다. 점점 늘어나는 도토리를 들여다보며 볼을 붉히고 기쁨에 녹을 듯한
얼굴을 내비친다. 아내의 옛 모습이 그 천진난만한 얼굴 한편에 나타남을 엿보며,
엷어져 가는 예전 기억을 떠올렸다.
“아빠, 커다란 도토리, 여기도, 여기도, 여기도, 여기도, 다 커다란 도토리.”
하고 흙이 잔뜩 묻은 작은 손가락으로 모자 속에 켜켜이 쌓인 도토리 머리를 하나씩
쿡쿡 찌른다.
“큰 도토리, 작은 도토리, 모두 똑똑한 도토리 친구들.”
하며 엉터리 노래를 부르더니 다시 도토리를 줍기 시작한다. 나는 그 허물없는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먼저 간 아내의 단점과 장점, 도토리를 좋아하는 것도 종이학을 잘 접는
것도 전부 물려받아도 상관없지만 처음과 끝이 비참했던 제 어미의 운명만큼은 절대
이 아이에게 되풀이시키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절실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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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저명한 물리학자이자 수필가인 근대의 한 작가 글을 보았습니다.
저자는 일본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일본 문학의 기초를 닦았다고 하는 나쓰메
소세키한테 배우는 기회를 갖게 되고, 결국 물리학자의 길을 걸으면서 문학을
함께 하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게 됩니다.
오늘 이야기를 살펴보면, 저자는 아홉수의 열아홉 된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데,
그 아내는 불운하게도 폐병이 걸립니다. 병원을 다니지만 처음에는 호전되는
기미가 보여 함께 식물원을 다녀오기도 하고 외출도 합니다만 결국은 세상을
딸아이를 남긴 채 떠나고 맙니다.
몸이 불편하지만 날씨가 너무 좋은 날, 남편을 따라 나선 여인은 문득 길가에서
도토리를 발견하고, 이제껏 가장 밝고 기쁜 모습으로 도토리를 주워 모읍니다.
이 장면에서 6-7년이 훌쩍 넘어서 아내는 떠나고, 여섯 살 된 딸아이와 예전의
식물원을 찾은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아이는 엄마와 너무도 똑같이, 도토리를 줍는 것을 재밌어하고, 볼이 빨개지도록
주워 다니면서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아빠는 예전의 기억이 떠오르며
"데쟈뷰" 현상을 마주합니다.
사소한 것까지 닮는 유전의 이치를 깨달으며, 다른 것은 몰라도 엄마의 불운했던
운명만은 제발 닮지 말라고 기원하면서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한 편의 드라마이고 연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작가에게도 인생은 어느 연속극 못지 않은 삶의 굴곡과 여운이 남는 감동
적인 드라마입니다. 핏줄은 질겨서 기억도 못하는 엄마의 성격이나 기호를
그대로 닮아갑니다.
잔잔하게 쓰여진 담담한 필체지만 애잔한 감정의 흐름이 그 아래에 진하게 흐르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편안한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