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안>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by 해헌 서재

<불 안>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강 일 송

오늘은 알랭드 보통(Alain de Botton, 1969~)의 책을 한번 보려고 합니다.
이전에 그의 저서인 <여행의 기술>에서 한번 저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드린
적이 있었지요. 스위스 출신으로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 수석
졸업을 하였고, 방대한 지식과 유려한 필력으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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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사회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은 태어날 때 얻는 신분이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누구냐”는 것이었다.

◉ 지위
- 사회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위치, 세상의 눈으로 본 사람의 가치나 중요성
- 과거에는 사냥꾼, 투사, 유서깊은 가문, 사제, 기사, 다산하는 여자 등
높은 지위를 부여받는 집단이 바뀌어 왔고, 근대에 와서
“경제적 성취”와 관련하여 지위가 부여되기 시작함.

◉ 지위로 인한 불안
- 사회에서 제시한 성공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할 위험에 처했으며,
그 결과 존중을 받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인해 유발.
- 지위를 결정하는 요인들이 계속 바뀌면서 불안을 촉발하는 요인들도
바뀌어 간다.
- 우리가 사다리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가 우리의 자아상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 어떤 가문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고정되는 사회가 아니라면, 지위는
우리의 “성취”에 달려있다.

◉ 우리의 “에고”나 “자아상”은 너무나 취약해서, 바람이 든 풍선과
같다. 늘 외부의 “사랑과 관심”이라는 헬륨을 넣어 주어야 부풀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도 터지기 일쑤다.

◉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이다.
그렇다고 불안을 극복하고 욕망을 채우려는 노력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고, 적어도 우리의 목표들이 약속하는 수준의
불안해소와 평안에 이를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 우리는 어떤 것을 소유하면 지속적인 만족이 보장될 것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하지만 정상에 오르면 곧 불안과 욕망이 뒤엉키는 새로운
저지대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드물다.

◉ 16세기 미국 인디언사회에 대한 보고서에 의하면, 그들은 공동체 생활을
하였고, 소박하지만 심리적으로 보람된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유럽인이 도착하고 나서 불과 수십 년만에 엄청난 변화를 겪는데,
이제 중요한 것은 지혜나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무기,
장신구, 술의 소유였다.
처음 유럽의 상인들은 인디언 내부의 욕망을 길러내려고 애를 썼다.
체로키 부족은 유럽인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사슴을 125만 마리나
잡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많은 것들을 아무리
사고 모아도 인디언이 더 행복해진 것 같지 않다.
자살과 알코올 중독은 늘었으며 공동체는 분열되었고, 유럽의 물자를
놓고 자기들끼리 싸움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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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문학, 철학, 역사 등을 아우르는 박학다식한 저자답게 현대인의
불안에 대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예를 곁들이며 풀어 나가고 있습니다.

사실 불안이란 현대인만의 문제는 아니었고, 생존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생명체란 불안이라는 기제를 적절히 이용하여 생존율을 높일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미국 인디언의 예를 보듯이, 현대의 자본주의, 경제우선의
사회 시스템이 인간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것은 확실하여 보입니다.

저자는 불안의 해법으로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 등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철학, 종교, 예술 등의 힘을 빌려 불안을 극복하는 방식은 전통적인
처방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라는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 것,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예술
작품을 통하여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다.“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하지만 좀 더 근원적으로 들어가면 불안감은 인간의 불완전성에
기인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불가항력적인 무소불위의 자연이 고대인들은 두려웠을 것이고
현대인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Uncertainty)에
항상 마주하게 됩니다.
자연에 대한 두려움은 현대에 들어서 많이 사라졌지만, 사회의
불확실성은 갈수록 커져만 가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어느 저명한 세계적인 경제학자도 1년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해야 하는 인간은
한없이 불안합니다.

1845년 월든호수 옆 통나무집에 살면서, 외적으로는 소박하
고 가난하지만 내적으로는 풍요롭고자 했던 데이빗 소로우가
시대를 앞서서 참으로 현명한게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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