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한국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인생 현장 보고서”
강 일 송
오늘은 요즈음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소설 한편을 보려고 합니다.
1982년생인 한 여인의 삶을 통해서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는 이 책은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저자인 조남주(1978~)는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PD수첩”,
“불만제로”, “생방송 오늘아침” 등 시사교양 프로그램 작가로 10년 동안 일했다 합니다.
2011년 장편소설 “귀를 기울이면”으로 문학동네소설상을, 2016년 장편소설 “고마네치를
위하여”로 황산벌 청년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소설의 내용을 전반적으로 한번 보겠습니다.
오늘은 굳이 소설에 대한 평을 쓰지 않고 올려봅니다. 그냥 느껴지는대로
느껴보심이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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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가을
김지영씨는 우리 나이로 서른네 살이다. 3년 전 결혼해 지난해에 딸을 낳았다. 세 살 많은
남편 정대현 씨. 딸 정지원 양과 서울 변두리의 한 대단지 아파트 24평에 전세로 거주한다.
정대현 씨는 IT계열의 중견 기업에 다니고, 김지영 씨는 작은 홍보대행사에 다니다 출산과
동시에 퇴사했다. 정대현 씨는 밤 12시가 다 되어 퇴근하고, 주말에도 하루 정도는 출근
한다. 시댁은 부산이고, 친정 부모님은 식당을 운영하시기 때문에 김지영 씨가 딸의 육아를
전담한다. 정지영 양은 돌이 막 지난 여름부터 단지 내 1층 가정형 어린이집에 오전 시간
동안 다닌다.
김지영 씨의 이상 증세가 처음 감지된 것은 9월 8일이었다. 그날을 기억하는 것은 백로였기
때문이었다. 김지영 씨가 갑자기 베란다로 나가더니, “요 며칠 아침 바람이 쌔하다 싶더니
오늘이 백로였네. 누우런 논에 하아얗게 이슬이 맺혔겠네.”
“당신 뭐야, 꼭 장모님 같아.” “이제 홑잠바 하나씩 들고 다녀, 정서방, 아침저녁으로 쌀쌀해”
그때도 정대현 씨는 아내가 장난을 친다고 생각했다.
추석이 되어 시댁에 갔을 때 일이 터졌다. 세 식구는 다섯 시간 만에 부산에 도착했고
오랜 운전으로 정대현 씨는 잠을 잤다. 김지영 씨는 시어머니와 함께 시장에 다녀오고
곧이어 정대현 씨의 두 살 어린 여동생 정수현 씨의 가족들이 도착했다.
“아이참, 엄마 이제 음식 좀 하지 말라니까. 엄마도 다 늙어 고생이고 지영이도 고생이고.”
순간 어머니의 얼굴에 서운한 기색이 스쳤다. “자기 가족 먹이려고 하는 게 뭐가 고생이야?
며늘아, 너 힘들었니?”
잠깐 김지영 씨의 두 볼에 사르르 홍조가 돌더니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눈빛은 따뜻해졌다.
정대현 씨는 순간 불안했다.
김지영 씨가 대답했다. “아이고 사부인, 사실 우리 지영이가 명절마다 몸살이에요.”
잠시 아무도 숨을 쉬지 않았다. 거대한 빙하 위에 온 가족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대현 씨가
급히 아내의 손을 잡아 끌었지만 김지영 씨는 그 손을 찰싹 쳐 떼 냈다.
“정 서방, 자네도 그래. 매번 명절 연휴 내내 부산에만 있다가 처가에는 엉덩이 한 번 붙였다
그냥 가고.”
“사돈 어른, 외람되지만 제가 한 말씀 올릴게요. 그 집만 가족인가요? 저희도 가족이에요.
그 댁 따님이 집에 오면, 저희 딸은 저희 집으로 보내주셔야죠.”
결국 정대현 씨가 아내의 입을 막아 끌고 나갔다.
“얘가 아파요, 아버지, 엄마 수현아, 진짜야. 내가 나중에 다시 설명할게.”
세 식구는 옷도 안 갈아입고 그대로 차에 올랐다.
서울에 온 정대현 씨는 혼자 정신과에 찾아가 아내의 상태를 말하고 치료 방법을 상의했다.
스스로 증상을 자각하지 못하는 김지영 씨에게는 일단 잠을 못 자고 힘들어 보여 상담을
권하는 거라고 말했다. 김지영 씨는 안 그래도 요즘 기분이 가라앉고 매사에 의욕이 없어
육아우울증인가 싶었다며 오히려 고마워했다.
★ 1982년 ~ 1994년
김지영 씨는 1982년 4월 1일, 서울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공무원
이었고 어머니는 주부였다. 위로 두 살 많은 언니가 있고, 5년 후 남동생이 태어났다.
열 평 남짓 방 두 개의 단독주택에 할머니와 부모님, 삼 남매, 이렇게 여섯 식구가 살았다.
김지영 씨의 어머니는 국민학교를 마치고 열 다섯 되던 해에 서울로 올라왔다. 10대였던
어머니와 이모가 먹지도 자지도 못하면서 공장에서 번 돈으로 큰외삼촌은 의사, 작은
외삼촌은 경찰, 막내 외삼촌은 교사가 되었다. 하지만 어머니와 이모를 지원해 주는
가족은 없었다. 이렇게 일가족을, 나아가 한국 경제를 일으킨 어머니는 결혼 후에 집안
마저 일으켰다.
“죽집도 내가 하자고 했고, 아파트도 내가 샀어. 애들은 지들이 알아서 잘 큰 거고, 당신
인생 이 정도면 성공하면 맞는데 그거 다 당신 공 아니니까 나랑 애들한테 잘하셔.
술 냄새 나니까 오늘은 거실에서 자고.”
어느 날 술을 한 잔 거나하게 하고 들어오신 아버지한테 김지영 씨의 어머니가 한 말이다.
★ 2016년 (정신과 의사의 말)
김지영 씨는 일주일에 두 번, 45분씩 상담을 받고 있는데, 증상이 나타나는 빈도는 줄었
지만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나는 당장의 우울감과 불면증에 도움을 주기 위해
김지영 씨에게 항우울제와 수면제를 처방했다.
처음 정대현 씨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책에서만 보던 해리장애인가 싶었는데, 직접
만나보니 산후 우울증에서 육아우울증으로 이어진 매우 전형적인 사례로 보였다.
하지만 상담이 이어질수록 이에 대한 확신이 옅어졌다.
그렇다고 진단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고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하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평범한 40대 남자였다면 끝내 알지 못했을 것이다. 대학 동기이자 나보다 공부도
잘하고, 욕심도 많던 안과 전문의 아내가 교수를 포기하고, 페이닥터가 되었다.
결국 일을 그만두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특히 아이가 있는
여자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사실 출산과 육아의 주체가 아닌 남자
들은 나 같은 특별한 경험이나 계기가 없는 한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시부모님은 지방에 계시고 친정 부모님은 미국에 계시는 아내는 어린이집과 시시때때로
바뀌는 시터 이모들에게 번갈아 아이를 맡기며 하루하루 말 그대로 버텨 냈다.
드디어 초등학생이 된 아이는 학원을 다녀오면 엄마의 퇴근을 기다렸다.
어느 날 아내가 학교에 불려 갔다. 아이가 같은 반 친구의 손등에 연필심을 꽂은
것이다.
수업 시간에 자꾸 돌아다닌다고 했다. 자기 국에 침을 뱉으며 먹는다고 했다. 친구들의
정강이를 걷어차고, 선생님에게 욕을 한다고 했다. 아내는 큰 충격을 받았다.
담임은 아이가 ADHD인 것 같다고 했고, 결국 아내는 일을 쉬기로 했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들과 송년회를 하고 꽤 늦게 집에 들어갔는데 아내가 식탁에
앉아 뭔가 열심히 쓰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문제집을 푸는 거였다. 초등학생용
수학 문제집. “애 숙제를 왜 당신이 하고 있어?”
“그냥 내가 좋아서 푸는 거야. 요즘 수학은 우리 때와는 달라. 완전 어렵고, 완전
재밌어.”
솔직히 잠도 안 자고 풀 정도로 너무 재밌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는 대충 그렇다고
말하고 먼저 들어가 잤다.
돌이켜 보니, 아내는 수학영재였다. 학창 시절 내내 온갖 수학경시대회를 휩쓸었고,
고등학교 3년동안 열두 번의 중간,기말고사 모두 수학 만점이었으며 학력고사에서는
안타깝게도 한 문제 틀렸다고 했다. 그런 사람이 왜 초등 수학 문제집을 그렇게 풀어
대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내는 여전히 초등 수학 문제집 풀고 있고, 나는 아내가 그보다 더 재밌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그거밖에 할 게 없어서가 아니라 그게 꼭
하고 싶어서 하는 일, 김지영 씨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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